속도의 차이는 거리보다 잔인하다

[06화] 연남동에서 건네받은 명함 한 장, 그리고 멈춰 있는 나의 시간

by 김선일

Chapter 06. 400km


제주도에서 돌아온 뒤, 약속했던 주말이 다가왔다.


함덕의 식당 앞에서 그녀를 기다렸던 때보다 훨씬 더 떨렸다. 만나기 전날 밤, 나는 지도 앱을 켜놓고 연남동의 골목길을 전부 외웠다. 복잡한 서울 한복판에서 길을 헤매며 어설픈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다. 그녀가 스치듯 좋아한다고 말했던 영화관의 좋은 자리도 미리 예매해 두었다. 모든 것이 완벽한 준비였다.


하지만 서울에서 다시 마주한 그녀는, 내가 알던 제주의 그녀와 조금 달랐다.


제주도의 짠내 섞인 밤바람 대신, 서울의 건조한 도시 공기가 우리를 감쌌다. 여행지에서의 편안한 옷차림이 아닌, 세련된 옷을 입고 나타난 그녀. 그 모습이 너무 예뻐서, 동시에 나와는 아예 다른 세상 사람 같아서 묘한 이질감이 들었다.


"오빠, 이거 받아."


자리에 마주 앉았을 때, 그녀가 가방에서 작은 종이 한 장을 꺼내 내밀었다. 빳빳한 명함이었다.


"나 이번에 학교에서 창업 대회 나갔었잖아. 그때 잠깐 교내에서 장사하면서 만든 거야."


명함에는 그녀의 이름 세 글자와 함께 번듯한 직함이 적혀 있었다. 자신의 아이템으로 대회를 준비하고, 사람들을 상대로 장사까지 해본 그녀의 이야기. 그 이야기를 하는 그녀의 눈은 제주도의 밤바다보다 훨씬 더 반짝이고 있었다.


그녀의 세상은 이미 자신만의 이름과 궤적을 만들며 치열하게 굴러가고 있었다. 반면, 전역 후 나의 세상은 여전히 멈춰 있었다. 내 손바닥 위에 놓인 작은 직사각형의 종이가 유난히 무겁게 느껴졌다.

나란히 경의선 숲길을 걷고 있었지만, 우리의 속도는 확연히 달랐다.


미리 외워둔 길을 따라 걷고, 예매해 둔 영화를 보며 우리는 함께 웃었다. 하지만 연남동의 그 예쁜 풍경 속에서, 나는 처음으로 알 수 없는 불안감을 느꼈다.


'이 행복이... 과연 계속될 수 있을까?'


400km. 제주와 서울의 물리적인 거리만큼이나, 우리의 현실도 아득히 떨어져 있는 것만 같았다. 우리는 마주 보며 웃고 있었지만, 내 웃음 끝에는 씁쓸한 뒷맛이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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