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시장 골목길

내안에 사계(봄)

by 염상규

오랜만에 동네 시장 골목을 걸었다.
햇살은 부드럽게 내리쬐고, 바람은 살짝 흔들리며 내 얼굴을 스쳐간다.
길가에는 봄기운을 머금은 꽃들이 살짝 고개를 내밀고 있었고, 작은 나무 상자 위에는 갓 따온 채소들이 산처럼 쌓여 있었다.
초록빛 빨간빛 푸르른 빛깔들이 눈앞에서 반짝이며 나를 반겼다.
골목을 걷다보면 코끝을 간질이는 냄새가 여기저기서 손짓을 한다.
김이 모락모락 피어올라 바람에 흩날리며 시장 구석구석을 가득 채운다.
정신없이 구경하다 보면 그곳에서만 시간이 잠시 멈춘 듯 하다.
장사꾼들의 구수한 목소리, 손님을 부르는 친근한 억양, 서로 주고받는 작은 농담과 웃음까지, 모든 것이 시장의 공기 속에서 살아 숨 쉬고 있었다.
걷는 동안 어린 시절의 기억이 조용히 떠올랐다.
초등학교 시절, 어머니는 종종 내 손에 돈을 쥐어 주시며 심부름을 보내곤 하셨다.
나는 그 돈을 손에 꼭 쥐고 골목으로 달려가곤 했다.
점포 앞에서 국수가게 주인 아주머니와 눈이 마주치면 언제나 넉넉하게 담아 건네며, “조심히 가~” 하고 웃으셨다.
그 순간은 단순한 거래가 아니었다.
서로의 하루를 나누고, 마음을 나누는 따뜻한 인사였다.
장바구니를 들고 달리던 내 발걸음은 가볍고 즐거웠다.
남은 잔돈으로 호빵을 사 먹던 작은 행복.
길가에서 친구를 만나 잠깐 뛰어놀던 즐거움, 그리고 집으로 돌아오며 느낀 안도감과 따스함.
그 모든 기억이 오늘 시장 골목의 생기 속에서 되살아나는 듯했다.
지금의 시장은 예전과 비교하면 많이 달라졌다.
단정하게 정리되어 있고, 비나 눈이 내려도 혼잡하지 않게 천정은 돔 형식으로 설치되어 있으며, 입구부터 끝나는 지점까지 정리가 잘 되어있다.
그러나 그곳을 방문하는 사람들이나 상인들의 표정과 목소리는 그대로였다.
누군가는 아이 손을 잡고 장을 보고, 어느 가게에서는 주인이 덤을 얹으며 웃음을 나누고 있다.
그 모습을 바라보니 세월이 잠시 멈춘 듯했고, 어린 시절의 내가 지금 이 골목을 함께 걷고 있다.
오늘 시장골목에서 내 유년시절을 마주했다.
오래도록 마음 한켠에 남아 있던 깨달음을 다시 느겼다.
세월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것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정, 따뜻한 마음과 소소한 배려라는 것이다.
물건의 값은 달라질 수 있지만, 사람의 마음이 만들어내는 온기는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장바구니 속에는 채소와 두부, 계란 같은 소소한 물건이 담겼지만, 내 마음속에는 웃음과 추억, 어린 시절의 설렘이 가득 담겼다.
골목길 사이사이를 걷는 동안 알게된 것이, 행복은 거창한 것이 아니라, 이렇게 오래된 골목길 속에서 사람들의 웃음과 정을 나누며 조용히 피어나는 소박한 것임을.
앞으로 살아가며 기억할 것이다.
짧은 순간이라도 마음을 열고 주변을 느낄 때, 작은 행복과 정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골목 속에서, 사람 속에서, 그리고 내 마음속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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