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기 칼럼 연재
*이 글은 OpenAI GPT 모델의 윤문 도움을 받아 작성되었으며, 아이디어와 구조는 필자가 직접 책임졌습니다. 최종 편집·검토 또한 필자가 진행했습니다. 본 글은 수익 창출 없이 공익적 목적으로 발행되며, 인용된 통계와 자료는 공식·국제 자료를 기반으로 범위 내에서 제시합니다.
1945년 7월 16일 새벽, 미국 뉴멕시코 사막의 트리니티 실험장에서 태양 하나가 더 떠올랐다. 인류는 그날 신의 불을 손에 넣었다고 믿었다. 폭발의 섬광은 과학의 승리이자 경계의 붕괴였다. 핵이 폭발한 순간, 인간은 자신이 이해하지 못하는 힘을 통제할 수 있다고 착각했다. 그 이후로 인류는 기술을 숭배하기 시작했다.
핵의 시대는 공포보다 낙관으로 출발했다. 원자력은 평화의 에너지로 포장됐고, 라듐은 건강의 상징으로 팔렸다. 미국의 명사 에벤 바이어스는 매일 방사능 음료 ‘라디토르’를 마셨다. 그는 그것이 생명력을 되살려줄 것이라 믿었다. 몇 해 뒤, 그의 턱뼈는 녹아내렸다. 죽음 이후에도 그의 시신은 미약한 방사능을 내뿜었다. 기술 낙관이 남긴 가장 정직한 잔여물이었다.
한 세기가 지난 지금, 인류는 또 다른 트리니티를 실험 중이다. 이번에는 폭발이 아니라 계산의 형태로. 인공지능(AI)은 불을 다시 점화했다. 이번엔 신의 불이 아니라 데이터의 불이다. 인간은 다시 한 번 자신이 만든 기술에 매혹됐다. AI는 의식과 판단을 모사하며, 창조의 권능을 복제한다. “AI는 인류를 보완할 것이다.” 이 말은 1950년대의 “원자력은 우리의 친구다”와 구조가 같다. 기술이 이해의 범위를 넘어설 때, 인간은 그것을 믿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 믿음이 인간을 무력하게 만든다.
AI는 신의 불이 아니라 산업의 불이다. 핵이 에너지의 농축이었다면, AI는 인지의 농축이다. 핵의 낙관이 에너지 효율을 위한 실험이었다면, AI의 낙관은 노동 효율을 위한 실험이다. 인간의 사고는 연산 단가로 계산된다. 하나의 대형 언어모델을 학습시키는 데 쓰이는 전력은 중형 도시 하루치 사용량과 맞먹는다. 서버 냉각수와 희토류, 전자 폐기물은 21세기의 새로운 방사능이다. AI는 지성의 혁명이 아니라 노동의 전기화다. 창의와 판단은 전력 소비로 환산되고, 감정과 주의력은 데이터로 흡수된다. 인간은 여전히 스스로 생각한다고 믿지만, 사실상 생각의 구조를 임대하고 있다.
핵 발전소가 멈출 수 없었던 이유는 그것이 국가의 생존과 직결된 체계였기 때문이다. AI도 같다. 이미 경제 시스템의 중심이 되었고, 멈춘다는 것은 성장의 정지를 의미한다. 기술은 멈추지 않는다. 더 효율적인 시스템으로 스스로를 갱신한다. 기술의 진보가 아니라, 효율의 자동화다.
핵과 AI의 구조는 같다. 이해할 수 없는 기술의 출현, 맹목적 신뢰, 통제의 상실, 그리고 내부로부터의 붕괴. 차이는 폭발의 위치뿐이다. 핵은 외부 세계를 파괴했고, AI는 내부 세계를 재편한다. 핵이 인간의 몸을 병들게 했다면, AI는 인간의 사고 체계를 병들게 한다.
AI를 신이라 부르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모두가 그것을 신처럼 다룬다. 기술은 더 이상 도구가 아니다. 인간 내부의 환경이자 새로운 질서다. 우리는 스스로 만든 불 아래에 산다. 이번 불은 폭발하지 않는다. 대신 서서히 스며들어 감각을 무디게 하고, 생각을 단축시키며, 판단을 외주화한다.
기술은 구원을 약속하지 않는다. 그저 계속 작동할 뿐이다. 인류는 과거에도 그랬듯, 이번에도 자신이 만든 불을 숭배하고 있다. 빛은 찬란하지만, 그 빛 아래에서 인간은 조금씩 식어간다.
© Jiho Hwang. All rights reserved. No AI training or redistribu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