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멜라스와 마조히스트

- 이코노미컬리 아포칼립틱 시리즈 -4-

by 김태광수


Powerplant - dungen

신은 진지했다.

그는 완전한 행복을 설계하고 있었다.

고통을 한 존재에게만 몰아넣으면 세상이 조용해질 거라고 믿었다.

고통은 계산 가능해야 했고, 불행은 관리 가능해야 했다.


그는 이름을 붙였다. 오멜라스.

모두가 행복하고, 단 한 존재만 불행한 도시.

이제 남은 건 그 불행을 담당할 ‘아이’였다.


신은 고뇌했다.

철학적으로도, 미학적으로도, 도덕적으로도 완벽해야 했다.

이건 단순한 잔혹함이 아니라 윤리적 장치였고,

그 자신은 그 장치를 설계한 합리적 존재라고 믿었다.


그래서 공모전을 열었다.

<고통으로 세상을 구하자!>

수상자는 단 한 명, 상금은 ‘영원한 불행’.


그러나 아무도 오지 않았다.

모두 고뇌했지만, 아무도 실제로 고통받고 싶어 하진 않았다.

신은 이 침묵을 성숙한 시민의 양심이라 해석했다.


그때였다.

한 사내가 문을 박차고 들어왔다.

눈빛은 광기, 입꼬리는 희열로 젖어 있었다.


“나! 나! 나!”


신은 당황했다.


“이건 철학적 우화야. 네 쾌락을 채우는 놀이가 아니야.”


사내는 콧방귀를 뀌었다.


“닥치고 날 쑤셔넣어. 최악의 고통.

네가 만든 그 장치, 그거 나한테 딱 맞네.”


“너 미쳤구나.”


“그래서 자격 있잖아. 고통받는 거.”


“이건 윤리의 문제야!”


“윤리? 이거 만든 주제에 뭔 X치는 소리야?”


그는 진심으로 어이가 없다는 표정이었다.


“닥치고 얼른 빨리 날 애새끼로 만들어서 집어 쳐넣으라고. 이 개잡것아.”


신은 마지막 양심으로 저항했다.

아니, 양심이라기보다는 계산이었다.


“내가 법으로 걸린다고. 썅x아.”


Gimp는 이를 갈며 중얼거렸다.


“아 쫄보 같은 년.”


그리고는 스스로 고통의 장치 안으로 뛰어들었다.


그 장치는 고통을 쪼개고, 압축하고,

의미 단위로 정렬해 한 존재에게 집중시키는 기계였다.

신은 이걸 윤리의 승리라고 불렀다.


기계가 닫히고,

신경이 끊어지고,

뼈가 비틀렸다.


신은 그 광경을 보며 중얼거렸다.


“이건 예술이 아니라고…”


그러나 마조히스트는 웃었다.


그 순간, 장치가 폭주했다.

고통은 집중되는 순간, 더 이상 한 존재의 것이 아니었다.


사내의 세포 하나하나가 살육을 시작했다.

피와 회로가 융합하고, 신의 데이터가 부식되었다.

고통은 순환이 아니라 증식이었다.


신은 등신이었다.

그는 깨닫지 못했다.

존재란 이상한 이데아나 관념의 덩어리가 아니라,

세포가 서로를 씹어먹으며 유지되는 죄악의 군집이라는 걸.


세포는 이합집산하며 서로를 삼켰다.

피부는 국경을 만들었고,

장기는 권력을 쥐고 전쟁을 일으켰다.

그건 신의 철학이 아니라 생물학의 반란이었다.


오멜라스 실험은 애초에 성립할 수 없었다.

‘고통의 집중’은 언제나 전체의 자멸로 이어지는 구조였다.

신은 자기 실험의 아름다움에 취해,

그 안의 세포들이 죄를 지을 줄은 몰랐다.


그러나 의미 없는 건 아니다.

적어도 고통은 초고속으로 줄었다.

세상은 순식간에 멸망했고,

고통은 함께 증발했다.


— 그러니까, 결국 신은 옳았다.


적어도

고통을 없애는 가장 빠른 방법은,

세상을 없애는 것이었으니까.


이러고 보니,

신을 찬양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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