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 특별판!
리처드 도킨스는 신적 존재로서의 예수를 부정해 왔지만, 역사적 인물로서의 예수에 대해서는 이후 자신의 입장을 수정했다. 과거 그는 『만들어진 신』에서 G. A. 웰스의 논의를 인용하며 예수가 가공 인물일 가능성을 언급한 바 있다. 당시에는 ‘예수 신화설’ 역시 충분히 검토 가능한 가설로 취급했던 셈이다.
그러나 이후 공개 토론과 강연에서 그는 이 지점을 정리한다. Richard Dawkins vs John Lennox | Has Science Buried God? Debate에서 도킨스는, 역사학계의 주류 견해를 고려할 때 예수가 실존 인물이 아니었다고 단정하는 것은 설득력이 부족하다고 밝힌다. 그는 역사 기록의 불완전함을 인정하면서도, 예수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입장은 철회한다고 말한다. 이 발언은 적지 않은 비판을 의식한 결과이기도 했고, 동시에 자신의 논증이 어디까지 유효한지를 다시 선별한 결과로 보인다.
이 변화가 흥미로운 이유는 신앙에 물러섰기 때문이 아니다. 오히려 그는 믿음의 문제와 사실의 문제를 구분하려 했다. 예수의 신성을 부정하는 것과, 예수라는 인물이 역사 속에 존재했는지를 판단하는 것은 서로 다른 질문이라는 점을 분명히 한 것이다. 그것은 타협이라기보다 방법론에 가까웠다. 모든 것을 하나의 기준으로 재단하지 않겠다는 태도, 그리고 자신의 주장 역시 수정될 수 있다는 전제를 받아들이는 지적 절제였다.
그 태도는 의외의 자리에서 다시 떠올랐다. 오래전 들었던 한 목사의 설교였다. 나는 기독교 신앙을 가진 사람이 아니었고, 지금도 그렇다. 과학주의적 사고에 더 익숙한 쪽이다. 그럼에도 그 설교는 방어적으로 들리지 않았다. 그는 예수의 기적을 문자 그대로 믿으라고 말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대로 믿는다면 그것은 신앙이 아니라 괴력난신에 가깝다고 했다. 신앙을 자연과학과 경쟁시키지 않았고, 설명되지 않는 것을 억지로 사실로 만들려 하지도 않았다.
그는 믿음이 어디까지 말할 수 있고, 어디서 멈춰야 하는지를 알고 있는 사람처럼 보였다. 의심을 죄로 만들지 않았고, 믿지 못하는 사람을 공동체 밖으로 밀어내지도 않았다. 신의 이름을 꺼내는 순간 사고가 멈추는 설교가 아니라, 생각이 이어지는 설교였다. 나는 그때 깨달았다. 중요한 것은 무엇을 믿느냐가 아니라, 믿음을 어떤 방식으로 다루느냐라는 사실을.
그래서 나는 그를 신앙인이라고 부르기보다, 참된 목사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사상에는 동의하지 않아도, 태도에는 기준이 있었기 때문이다. 신앙을 지키기 위해 사실을 왜곡하지 않고, 설교를 위해 타인의 사유를 단순화하지 않는 것. 그 절제는 종교를 믿지 않는 사람에게도 신뢰를 남긴다. 어쩌면 신앙의 진실성은, 무엇을 주장하느냐보다 어디까지 주장하지 않느냐에서 드러나는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