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첫 눈

-김태광수 단편선

by 김태광수
Lustre - First Snow




내 목 안엔 또 다른 어느 역겨운 것이 끓어나와 티끌 하나 없는 순수한 것을 더럽히려 한다.

사랑의 끝은 언제나 가증스러운 배신이었다. 수습하지 않아 비뚤리게 걸린 검정색 뿔테 안경. 렌즈 사이 너머로 비춰보였던 건. 분대장인 맞후임의 말 못할 상심뿐.

‘사랑 따위나 하니 저런 꼴을 겪지. X신 같은 놈.'

착잡하게 중얼거리고는. 내 자신조차 사랑못하는 머저리 자식. 네 어깨에 걸린 노란 색 견장 조심스레 떼어낸다. 엉켜진 비상용 열쇠. 내 손으로 벗기려 할 적. 너에게 손길 내밀어 잠시나마 눈물어린 포옹을 나눠볼까 생각했다만.

지휘통제실에서 걸려온 전화 벨소리. 황량하기 그지없는 생활관 복도 멀리까지 울러퍼지는 신경질적인 고함소리에. 어두운 침묵속으로 너를 하염없이 돌려보낼 수 밖에 없었다.

아픈 기억 따위. 라디에이터의 따뜻한 바람결에 낭만스럽기 그지없는 하얀 눈과 같이 아련한 추억속으로 뒤 덮일거라고? 그러고는 서로 감사하는 마음으로 편하게 나뒹굴면서 추위마저 따뜻할거라고?

지금 새벽 3시라고. 하늘에서 던져대는 하얀 쓰레기나 치우고 자빠졌다고. 저기 두돈반 똥차하고 155mm 견인포는 얼어버려서 시동도 제대로 안 걸릴 거라고. 염병할...

갑자기 속이 뒤집어졌다. 말도 못할 악에 받쳐넘어서 넉가래를 작살내듯 내던지고는. 칼칼한 가래 끓은 침을 거하니 뱉어 발로 사정없이 짓이겨놓는다.

나이 앳된 후임들은 인망 없는 선임을 경멸하듯이 훑어보고는, 짜증섞인 빗자루질로 차가운 콘크리트 바닥을 마구 긁어대었다.

그렇게 연병장에 그렇게 등쌀시린 첫눈이 내렸다.


-크리스마스 이브 겸 특별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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