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미컬리 아포칼립틱 시리즈 -6-
-1-
지구 유적은 이미 단물이 다 빠진 껌종이 같았다. 사실 은하계의 모든 외계 종족이 굳이 이 먼지 구덩이까지 기어 들어와 진흙을 판 이유는 단 하나였다. 자기들의 본판이 너무 역겨웠기 때문이다. 거울을 볼 때마다 집단 구토를 유발하는 흉측한 몰골을 고칠 ‘미적 돌파구’를 찾으려 인류의 유전 정보와 미학을 뒤졌던 것이다.
결과는 참담했다. 연구는 진작에 끝났고, 남은 건 "인류의 미학은 훌륭하나 유적은 독 묻은 쓰레기뿐"이라는 결론뿐이었다. 결국 그들은 지구를 고치는 대신, 가장 저렴한 ‘인간 필터’ 패키지를 전 은하계에 보급하며 서로를 속이는 길을 택했다.
지구 유적 관련 예산은 이미 두 번 죽었다.
한 번은 “연구 가치 없음”으로, 두 번째는 “유지비 과다”로.
은하 고고학 연구 협회 내부 게시판에는 아직도 고정 공지가 떠 있었다.
[공지]
지구 유적 관련 신규 연구 신청은 자동 반려됩니다.
사유: 독성 환경 / 중복 결론 / 미적 가치 외 활용 불가
※ ‘인간 필터’ 패키지 유지비는 별도 항목으로 계속 승인됨
누군가 댓글을 달았다.
“그럼 유적은 왜 아직 봉인 안 함?”
관리자가 답했다.
“철거비가 더 나와서요.”
그게 끝이었다.
지구는 연구 대상이 아니라 관리 실패한 폐기물로 분류돼 있었다. 문제는 그 폐기물을 치우는 것보다, 외계인들이 계속 병원에 실려 오는 비용이 더 싸게 계산된다는 점이었다. 그래서 지구는 아직 열려 있었다. 아무도 믿지 않지만, 아무도 완전히 닫지도 않는 장소로.
그래도 오늘의 주인공은 들어왔다. 한 손엔 셀카봉을 들고, 다른 한 손으론 도네이션 알림 소리를 키우며.
그는 셀카봉 각도를 한 번 더 확인했다.
필터 강도: 중간.
방사능 경고 오버레이: 켜짐.
기침 소리 증폭 옵션: 켜짐.
“좋아. 이번엔 폐까지는 안 가겠지.”
라이브 시작 버튼 위에서 잠깐 손이 멈췄다. 머릿속에서 계산이 돌아갔다.
독성 경보 한 번: 도네 2천
기침 두 번: 추가 3천
쓰러지기 직전 컷: 만 단위
병원까지 가면 수익은 뛴다. 문제는 청구서가 더 뛴다는 거였다.
“병원 풀 코스는 적자야. 오늘은 여기까지만.”
그는 그렇게 생각하며, 항상 그 생각을 무시했다.
“형님들, 여기가 그 유명한 ‘접근금지 구역’입니다. 하지 말라면 더 하고 싶은 게 고고학자의 로망 아니겠습니까?”
-2-
입구에는 보안 로봇이 서 있었다. 냉장고 박스를 뒤집어쓰고 팔 부분에 고무 호스를 끼운 꼴이었지만, 자막은 당당했다. [자막: 은하 연합 최신형 살상 병기 - 자동 레이저 조준 중]
“야, 저 미친놈 또 왔네. 아오, 진짜.”
로봇의 스피커에서 나온 건 엄숙한 경고가 아니라, 퇴근 5분 전 직장인의 깊은 한숨이었다. 1
“환경오염 위험지역입니다. 군사기지...”
박스 구멍 사이로 퀭한 눈동자가 번뜩였다.
“아, 됐고. 야, 너 저번에 폐 세척하고 온 지 일주일도 안 됐지? 헛짓거리하다 병원 실려가도 우리 책임 아니다. 서명이나 해.”
로봇이 귀찮다는 듯 내민 홀로그램 패드에 주인공은 익숙하게 지장을 찍었다.
“보셨죠? 보안 로봇이 저렇게 필사적으로 절 말리는 거, 수상하지 않습니까? 분명히 저 밑에 정부가 숨겨둔 보물이 있다는 증거죠. 가즈아!”
채팅창은 광기 어린 ‘ㅋㅋ’와 도네이션으로 도배되었다.
발굴은 진지했다. 표식 치고, 층위 재고, 브러시로 긁었다.
그는 이미 세 번이나 “혁명”을 외친 적이 있었다.
첫 번째는 녹슨 스마트폰이었다.
“후기 인류의 집단 의식 저장 장치입니다!”
옆에 있던 폐품업자가 말했다.
“야, 그거 배터리 부풀어서 터진 거야.”
두 번째는 반쯤 녹아내린 광고 간판이었다.
“자본주의 말기의 신앙 구조를 보여주는—”
“글자도 안 보이는데 뭘 보여줘.”
세 번째는 설명서였다.
[자막: 고대 자동화 노동 시스템 매뉴얼]
실제 내용은 <전자레인지 사용 시 주의사항>이었다.
그때마다 채팅창은 웃었고, 도네는 잠깐 들어왔고, 청소 비용이 늘어났다. 그래서 그는 이번엔 확신했다.
“이번엔 진짜다.”
나온 건 찌그러진 알루미늄 캔 하나.
“의례용 용기입니다. 후기 인류의 사회적 윤활유인 검은 액체를 담던—”
“그거 산업 폐기물이야, 이 사기꾼아.”
옆에서 방사능 수치를 재던 폐품업자가 뱉었다.
“이미 연구 끝났고, 유물번호 대신 쓰레기 배출 번호 붙은 놈이라고.”
“연구 끝났다는 말 자체가 가스라이팅이지.”
주인공은 쓰레기 더미 사이에서 흙먼지가 잔뜩 묻은 종이 뭉치를 낚아챘다.
[자막: 인류 문명의 정수가 담긴 고대 데이터 아카이브]
하지만 화면에 비친 실체는 표지가 다 뜯겨나간 <어린이 첫 과학 전집 - 3권: 바다 속 친구들>이었다.
주인공은 떨리는 손으로 책장을 넘기다 한 페이지를 멈춰 세우고 카메라에 들이댔다. 거기엔 조악하게 그려진 삼엽충 삽화가 있었다.
“형님들! 보셨습니까? 드디어 결정적 증거를 찾았습니다! 자, 여기 이 삼엽충 면상을 보세요. 아까 필터 오류 났을 때 보셨던 제 본판이랑 똑같이 생겼죠? 이게 뭘 뜻하겠습니까? 우리 종족이 수억 년 전부터 이미 지구의 주인이었다는 겁니다!”
옆에서 노란 장화를 신은 동료가 캔커피를 홀짝이다 말고 뿜었다.
“야, 그건 그냥 눈 세 개 달린 벌레잖아. 네 면상이 그거랑 닮았으면 진화가 아니라 퇴화된 거 아니야?”
“가스라이팅 자제 좀! 이건 유전적 연속성이라고 하는 겁니다! 삼엽충이 우주선을 타고 나가서 우리 종족이 된 거예요! 고고학계의 혁명입니다, 이건!”
그가 캔을 닦는 순간, 폐부 깊숙이 박힌 지구의 독기가 반격을 시작했다. 기침이 터졌다. 한 번, 두 번. 목구멍에서 쇠 맛이 났다.
-계속(다음 화는 오늘 19시에 나올 예정입니다. 많은 관심 부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