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미컬리 아포칼립틱 시리즈 -6-
은하 표준 의료시설의 복도에는 여전히 경비 로봇의 건조한 안내 방송이 흐르고 있었다. 외계 병원이 인간 병원을 빼다 박은 이유는 단순했다. 상상력이 아니라 예산의 문제였다. 가장 저렴한 ‘21세기 지구 표준’ 패키지가 은하계에서 가장 쌌으니까.
병실은 곰팡이 핀 여인숙 같았다. 삼다수 페트병에 빨대를 꽂아놓은 링거가 달랑거렸지만, 자막은 [최첨단 나노 재생 장치]라고 우겼다.
간호사는 치료보다 먼저 태블릿을 내밀었다.
“서명부터요.”
“아직 숨도 제대로 못 쉬는데요?”
“숨은 나중 문제고요. 이거 미서명 상태로 죽으시면 절차 복잡해져서요.”
태블릿에는 항목이 빼곡했다.
폐 세척
방사능 중화
환경 독소 노출
보호자 부재 추가 요금
무단 탐사 벌금
로봇 비번 호출 수당
주인공은 숫자를 보다가 고개를 돌렸다.
“이거 다 합치면 얼마예요.”
간호사가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
“살면 이 정도. 죽으면 좀 더 나와요.”
링거 액이 뚝, 뚝 떨어졌다. 의료진이 차트를 던지며 혀를 찼다.
“야 이 자식아. 또 너냐?”
우주 간병인 아줌마가 옆에서 거들었다.
“하, 이 썩을 놈의 자식. 이번이 몇 번째냐? 진짜 지질하게 산다.”
그때, 벽면 모니터에 경고가 떴다.
[검열 장치 미적용 영상입니다. 양해 바랍니다]
순간, 시스템 오류로 ‘인간 필터’가 꺼졌다.
갑자기 화면이 지직거렸다.
[자막: 시스템 오류 - 실시간 인간 필터 해제됨. 임산부 및 노약자 시청 금지]
화면 속엔 멀끔한 인간 입실자들 대신, 진흙더미가 흘러내리는 듯한 흉측한 외계인들의 면상 원판이 비쳤다. 잠깐의 정적.
순간 병실 안의 '인간'들이 단체로 구역질을 시작했다.
[현재 묘사 불가능한 흉측한 촉수와 점액질이 온 방을 뒤덮음].
“어떤 새끼가 필터 껐어?”
“야. 병원장 나와! 이 자식들. 사실 밝힘죄로 신고 박을까보나.”
이 어처구니 없는 자기 혐오 속, 의료관계자들의 연쇄 사과 세례 파도가 휩쓸고 다니는 사이.
병실 문이 거칠게 열렸다. 동료와 함께, 아까 유적 입구의 보안 로봇이 바퀴 소리를 내며 들어왔다.
"이 아메바 자식아!"
"조상님 욕하지 마라."
천연덕스럽게 대꾸한다.
“이런 미친 부모 개수 홀수 새끼가!”
"팩폭 자제해라.”
동료가 영수증 뭉치를 던졌다.
“너 때문에 내 이번 달 유물 분석비 다 압류당했다 십새야!”
“우리 엄마가 모태쏠로신데 좀 봐줘라.”
보안 로봇이 붉은 등을 껌벅이며 거들었다.
“단성생식이면 처신이라도 잘하던가.”
“말 잘했다! 오늘 비번인데 왜 나까지 끌어들여가지고! 아오, 회로 타는 냄새!”
주인공이 억울하다는 듯 단말기를 흔들며 소리쳤다.
“야! 나 이번 라이브 도네로 우주 1만 달러 벌었어! 우주 1만 달러라고!”
[*참고 우주 1달러 = 2026년 미국 1달러]
“1만 달러? 지랄하고 자빠졌네! 야, 니 썩은 폐 세척하고 방사능 중화제 처넣는 비용만 우주 2만 달러 나왔다 이자식아!”
동료가 소리를 질렀다.
“우주 1만 달러 벌어서 한다는게 벌금까지 합쳐서 우주 2만 5천 달러를 날리는거냐? 네가 고고학자냐? 아니면 우주 비트코인하는 거냐. 이 걸어 다니는 마이너스 통장놈아!”
“알았다고! 염병할! 다음 번식기때 저거 깡통 놈하고 네 엄마하고 쓰리섬해서 번식하든가 하면 될거 아냐! 나도 부모님 짝수 개 공유 좀 해보자. 썅.”
동료가 기가 막힌 나머지 말을 만다. 로봇이 질색하며 뒤로 물러났다.
“내 실리콘 회로에 더러운 소리 묻히지 마라. 난 저 새끼 부모(원본) 대조 수사하러 간다.”
주인공은 품속에 소중히 갈무리했던 <어린이 첫 과학 전집 - 3권: 바다 속 친구들>을 들이댔다.
“야 임마. 이거 봐라! 이 책 한 권이면 2만 5천 달러가 뭐야? 은하계 전체가 뒤집어질 거라고! 삼엽충이 우리 조상이라는 증거가 여기 있는데!”
복도 밖이 시끄러워졌다. 고고학자와 똑같은 인간 필터를 쓴 작자가 우주 간호사와 멱살잡이를 하고 있었다.
“야, 이 환자 놈아! 어딜 튀려고!”
“병원이라는 데가 사람 숨 붙어 있는지부터 보게 해야지, 영수증부터 들이미냐?”
[주의 - 해당 개체는 은하 호적법상으로 ‘보호자’가 아닌 원본 데이터 제공자(책임 없음) 로 분류됨.]
우주 고고학자의 부모인지, 혹은 원본인지 모를 작자는 우주 주민등록증을 흔들었다.
“봤지? 나 저 썩을 놈의 자식새끼 좀 면회좀 하자. 내가 단성생식으로 쟤 낳을 때 얼마나 고생했는지 알아?”
간호사가 비웃었다.
“개자식아, 옷 갈아입고 와서 아빠인 척하면 치료비가 면제될 줄 알았냐? 너 저번 주에 도망간 그 새끼 맞지?"
실은 고고학자의 엄마 혹은 아빠도 도망친 이력이 있었다.
"미납금 청구 다 끝날 때까지 한 발자국도 못 나가!”
환자는 침대에서 슬그머니 일어나 창틀을 잡았다.
“어쭈 저 새끼 좀 보소?튈 준비 하네!”
동료 고고학자가 소리를 지르자, 냉장고 박스를 뒤집어쓴 보안 로봇이 집게를 치켜들며 돌진했다.
“비번 수당 내놓고 가, 이 삼엽충 자식아!”
문밖에서는 “내가 쟤 낳았다니까!”라고 절규하던 부모(원본)까지 합세해 병실 안으로 들이닥치려 했다. 동료, 로봇, 부모라는 이름의 ‘2만 5천 달러짜리 외계인 채무인단’이 주인공을 덮치려는 찰나였다.
위대한 조상님의 은총?
“조상님! 우리 대신 빚 좀 갚아주세요!”
주인공은 품고 있던 아동용 전집을 채무인단의 안면을 향해 전력을 다해 집어 던졌다.
"퍽!"
지금 당장 폐 세척비보다 소중한 건 없었다.
삼엽충 삽화가 그려진 종이 뭉치가 박스 로봇의 시야 구멍을 완벽하게 가로막았고, 뒤따라오던 동료와 부모는 발에 걸린 ‘고대 데이터 아카이브(파손된 책장)’를 밟고 우당탕 넘어졌다.
“엄마인지 아빠인지, 아, 젠장. 실례 좀 합시다.”
그는 링거 줄을 뽑아 던지고, 익숙하게 창밖의 무한한 우주(혹은 병원 주차장)를 향해 몸을 날렸다.
우주 고고학자는 도망치는 그 와중에도 우주 유튜브 스트리밍을 틀며 외친다.
“보셨죠? 인간 새끼들은 진짜 병신 새끼들입니다. 어떻게 행성 전체를 이따위 쓰레기장으로 만들고 멸망할 수가 있지? 내 허파 아주 조졌네. 아주 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