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퀴벌레

-단편선 <Sümpfe der Verzweiflung> -2-

by 김태광수


1999년. IMF 사태.

최루탄이 방 안에서 터진 듯, 알 수 없는 연기가 천천히 가구와 벽지를 휘젓는다. 매캐하고 눅진한 공기 속에서 눈이 시리도록 무수한 시체들이 어지럽게 겹쳐진다. 구역질 나는 것들. 전부 독일산이었고, 미국산은 없었다. 그 사실이 유일한 위안이랄까, 아니면 단지 자기 위로였을까.

종말은 거창한 하늘에서 오는 게 아니었다. 새 천 년을 맞이할, 작은 것들만의 종말이었다. 오후 1시, 창문 밖으로 흘러나오는 자동차 경적과 햇빛은 너무나도 평온했지만, 이 방 안은 다른 차원에 가까웠다.

나는 지저분하기 그지없는 참상의 한가운데서 몸을 아무렇지도 않게 눕혔다. 천장에 드리운 얼룩이 마치 내 폐부를 들여다보는 눈처럼 내려다보았다. 젓가락으로 찌그러진 전원 버튼을 쑤시며, 냄새나는 발가락으로 TV 채널을 돌렸다. 만화영화는 아직 멀었다. 단지, 공영방송의 허연 잡음만이 천천히 허기를 채우는 듯 흘러나왔다.

다시 기어올 것이다. 하수구 깊은 곳에서, 냉장고 언저리에서. 끓여 놓은 국 냄비 안에서조차. 나는 그 맛을 기억하지 못했지만, 어쩌면 이미 삼켰을 지도 모른다. 하얀 알을 까놓은 채, 새끼들이 냉장고 안에서 얼어 죽어 있는 모습을 수도 없이 보았으니까.

그리고 그 모든 잔혹한 흔적들이 내 곁에 남아, 얼굴조차 마주하기 힘들었던 가족들보다 훨씬 친근하게 들러붙었다. 나의 절친한 악몽들. 밤마다 내 꿈을 들쑤셨고, 낮에는 그림자처럼 곁을 지켰다. 나는 살아 있는 자들 사이에서 죽은 자와 동거했고, 어쩌면 이미 그들 편이 되어버린 건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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