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야구를 시작했어요.
‘빅이닝’ 그리고 ‘비기닝’
내 인생의 빅이닝을 위해, 나는 야구라는 새로운 비기닝을 시작했다.
야구에는 ‘대량 득점’을 말하는 ‘빅이닝’이라는 말이 있다. 아웃카운트 세 번이 잡히기 전, 대략 3점 이상의 점수를 내는 공격 이닝을 말한다. 나는 빅이닝을 좋아한다. 내가 잘해서, 우리 팀이 잘해서, 상대 팀이 실책 해서. 무수히 많은 경우의 수가 모여 빅이닝이 된다. 4점을 뒤지고 있어도 만루홈런 한 번이면 다시 원점에서 시작할 수 있다. 리셋 가능. 이게 야구의 매력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초등학교 때, 방송부에 들고 싶었다. 초등학교 6학년 때였다. 신청서를 냈다. 4학년 때부터 방송부를 하던 친구들이 있다고 하여 입부하지 못했다. 중학교 때도 방송부에 들고 싶었다. 초등학교 때부터 해오던 친구들 위주로 방송부가 꾸려졌다. 고등학교 때도 방송반이 제일 재밌어 보였지만, 그때는 도전도 하지 않았다. 이미 늦었다고.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해온 친구들이 이미 방송부에 속했을 거라 생각했다. 나는 제법 포기가 빨랐고, 용기가 없었고 경쟁력도 없었다.
취업시장도 마찬가지. 경력 있는 신입을 바라고, 신입을 하기 위해 인턴을 해야 하는데, 또 인턴을 하기 위해서 또 다른 스펙이 필요했다. 알지 못하는 경쟁자들과 싸워야만 했다. 신입 초기에 등 떠밀려 시작한 일들이 결국 눈덩이처럼 불어나 내 경력이 되었다. 조금이라도 삐끗하는 순간, 구렁텅이에 빠질 것 같았다. 내가 시작했던 모든 것이 원점으로 돌아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10대, 20대, 30대 그 나이대에 맞는 정해진 궤도가 있는 것만 같았고 거기서 벗어나지 않아야 했고, 뭔가를 하기 위해서 미리미리 준비해서 뒤처지지 않아야 했다. 이 모든 게 피곤함으로 다가왔다. 세상이 왜 이래. 점점 나를 옥죄는 것 같았다.
인터넷으로 연결된 세상은 더 부정(negative)으로 가득 찼다. 극단의 자본주의, 이기심, 기후변화, 범죄... 책 ‘팩트풀니스’의 작가는 인간의 세계는 어제보다 오늘이, 그리고 내일이 더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고 데이터로 설득한다. 우리가 흔히 믿고 있는 세상의 부정적인 면을 데이터로 반박하며, 실제로는 세상이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고 주장한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극단적으로 이분하기도 하고, 일반화하기도 하고, 공포에 잠식되기도 한다. 그렇게 막연하게 불안감에 자극적인 미디어를 더해 스스로의 목을 죄기 때문에 점점 나쁜 세상이 되어간다고 느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이 나아지고 있단다. 실제로 데이터가 그러하단다. 극단적인 빈곤층이 줄었고 문맹률은 감소했으며 전쟁이 상대적으로 줄었다고 한다. 너무 더딘 변화라 체감을 못 해서 그렇지,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고 한다. 야구를 시작하면서 느낀 점이 꼭 이 책을 읽은 후와 같았다. 나는 야구를 더럽게 못하지만, 나는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 아마도 나만 알 수 있는 조금의 변화들이 있다. 야구를 하기 전 허리 굽히는 스트레칭을 할 때, 종아리쯤에서 맴돌던 손끝이 발끝에 살짝 닿는다. 캐치볼 열 번을 하면 두 번 잡았는데, 이제는 열 번 정도는 주고받을 수 있다. 그 누구도 알아주지 않지만 나는 어제보다 나은 내가 되고 있다. 스스로의 긍정적인 변화를 느끼기에 운동이 딱이다. 그리고 그 운동으로 야구를 추천한다.
야구는 데이터로 가득 찬 운동이다. 열 번 배트를 쳐서 유효한 공의 개수를 세고 그 비율로 실력을 평가한다. 열 번에 세 번이면 잘했다고 한다. 1/3의 확률이 썩 대단해 보이지는 않는데. 세 번 잘 치기 위해서 일곱 번 삐끗해도 잘했다고? 이렇게나 야구가 후하다. 그래서 세 번 중에 두 번은 대차게 말아먹어도 된다고 말하는 운동을 시작했다. 내 상대는 사람이 아니라 공이었다. 내가 이 공을 얼마나 더 빨리, 멀리 보내고, 저 공을 어떻게 잡고 치냐, 오로지 이것만이 눈에 들어왔다. 꾸준한 노력이 세 번 중 한 번은 잘할 수 있게 만들어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내 삶의 빅이닝을 위해, 야구라는 작은 비기닝을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