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여자도 야구가 '하고' 싶어졌다

재밌는데 고통스럽고, 좋은데 밉고, 싫은데 멈출 수 없는 농약 같은 야구

by 초이빅

야구를 다시 좋아하고 싶지 않았어요.


야구를 좋아하는 사람들과 얘기하면, 오랜 야구팬들의 첫 야구는 “어렸을 때부터 가족이 보길래 자연스럽게 봤어요”였다. 나의 부모님은 야구에 관심이 일절 없었다. 틀어놓은 TV에는 야구 경기가 없었고, 야구장은 우리 가족의 외출 선택지에 없었다. 야구에 노출될 수 있는 환경이 그야말로 1도 없었다.

그런데도 야구를 좋아하게 되었다.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지만 스스로 선택한 길이었다. 야구팬들 중에 그렇게나 많다던 2008년 베이징 올림픽 입덕인이 나였다. 그냥 틀어놓았던 TV에서, 잘 알지도 못하는 스포츠 스코어에 한일전 타이틀이 붙어있었고, 오기로 봤다. 뭔진 잘 몰라도 한국이 이겨야지. 그런데 이거... 재밌는 거네? 그렇게 야구장을 쫓아다니기 시작했다.


그 많은 야구팬들은 다 어디 갔을까. 내 주변엔 가족도 친구들도 선배들도 후배들도. 아무도 없었다. 야구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없었다. 어 알지. 우리 연고지 그 팀. 그 정도의 애정을 가진 사람들을 데리고 몇 번 야구장을 같이 간 다음 나는 야구장을 혼자 다니는 길을 택했다. 구구절절하게 설명하느니 혼자 욕을 욕을 하면서 보는 것이 훨씬 재밌었다. 20살이 갓 넘긴 무렵부터는 그렇게 전국의 야구장을 홀로 떠돌았다.

혼자 응원석에 앉아 옆자리 아저씨가 간식을 나눠주기도 하고, 혼자 앞뒤 사람 없는 외야에서 맥주를 먹기도 하고. 험악해진 경기 속 야유 속에 벌벌 떨며 나오기도 하고. 혼자 다닌 기억들은 혼자만의 추억이 되어 가물가물했다. 그렇게 3년 정도 열렬히 쫓아다녔고. 내가 바라는 내 팀의 우승은커녕 성적이 하위를 계속 맴도는 속 터지는 모습과, 내 인생 살길이 바빠지며 점점 야구에서 멀어졌다.


그렇게 이별하다가, 또 의미 없이 TV 앞에서 리모컨을 돌리다가 다시 야구 품으로 돌아왔다. 나의 정신건강을 위해 푹 빠지고 싶지 않았다. 적당히 봐야지, 라며 한 결심과 무색하게 그 해의 야구는 재밌었고 나는 다시 욕쟁이 야구팬이 되었고 부랴부랴 구입한 요즘 유니폼을 입고 전국 구장을 떠돌고 있었다. 또.


하도 많이 봐서 이제 야구를 어떻게 더 재밌게 볼지 모르겠다고 생각하던 어느 날. 회사의 동료가 물었다. "야구 왜 좋아하세요?" 순간 머릿속으로 뭐부터 말할까 한가득 생각했다. 어디서부터 얘기를 해야 하지. 처음 야구를 보게 되었던 수년 전 계기, 아니면 지금 십 년 뒤 다시 야구를 보게 된 재입덕의 순간들, 기억에 남는 경기들, 좋아하는 선수 혹은 특출 나게 잘하는 슈퍼스타 선수, 공 한 개에 달린 운명의 순간들, 도파민 뿜어내게 하는 미친 경기들, 야구장 입구에서부터 라인업송 오프닝 북소리에도 떨리는 이 나의 마음, 그냥 야구장, 그냥 응원가… 머릿속을 스치는 생각 중 나는 그 어떤 것도 구구절절 설명하지 못했다. 물어보는 동료도 별로 안 궁금해할 이야기 같아서. 그래서 그냥 ‘재밌다’고 대답했다. 그때부터 생각했다. 나는 이놈의 야구를 뭐 어쩌고 싶은 걸까.


그래서 해보기로 했다.


프로야구 천만 관중 시대가 왔다. 이 역대급 기록은 예매 사이트에 따르면 2-30대 여자 야구팬이 늘어났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단다. 그거 나잖아? 점점 야구는 흔히 말하는 야구는 새로운 팬덤 문화가 생겨나고 있다. 보정이 잔뜩 들어간 야구 선수의 고화질 사진보다 더 재밌는 게 하고 싶었다. 야구를 사랑하는 사람도 많고, 야구를 분석하는 사람도 많고, 야구를 잘 아는 사람은 많은데 하는 사람은 잘 없다.


한 축구선수는 축구 팬들에게 말했다. "답답하면 네가 뛰던가." 화가 많은 야구팬들이, 야구팀을, 야구 선수를 넘어 야구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관중석에서 응원석으로, 그리고 그라운드로. 이제는 야구를 할 때가 되었다. 직접 같이 뛰어보고 싶어서. 해보기로 했다.


야구, 그게 운동인가요?


“나 요즘 야구해.”라고 말하면 반응은 대개 비슷했다.

“니가?” “왜?”

운동삼아 한다고 설명했다.

“야구 그게 운동이 되나? 그냥 공 던지면 되는 거 아님?”

안 해봐서 그런다. 안 해봐서. 해본 사람이 많이 없어서. 엘리트 스포츠란 이런 걸까.

인터넷 여론은 말한다. 야구는 다른 스포츠에 비해 힘든 운동이 아니라고. 선수들은 시즌 중에도 술을 먹고 사고를 치고, 몸 관리를 하지 않는 듯한 뚱뚱한 선수들도 많이 보인다는 게 그 이유에서다. 그래서 야구가 정말 편한 운동일까? 궁금했다. 저걸 못 쳐? 진짜 못 치는지 직접 해보기로 했다. 결론은... 야구는 힘들다. 어렵다. 그리고 재밌다.


시구를 하러 온 연예인들이 왜 마운드보다 한참 떨어진 앞에서 공을 포물선을 그리며 부웅 하는 느낌으로 던지는지. 던져보면서 알게 되었다. 공이 일자로 간다는 것, 공을 하나 던지기 위해 수많은 메커니즘 동작이 따라온다는 것, 어지간해선 멀리 던지기도 어려운데 제구는 더더욱 힘들다는 것. 공이 손에서 떠나는 게 아니라 공을 밀어내야 한다는 것. 동작 하나하나에 담긴 의미를 배우면서 프로야구를 더 즐겁게 볼 수 있게 되었다. 잘하는 것은 더 응원하고, 말도 안 되는 실책은 더 비판(실은 비난이다)할 수 있는 눈이 조금은 생긴 것도 같다.


야, 너도?


회사에 평균 8시간 이상은 앉아있는 사무직 직장인이, 운동을 하기에 마냥 젊지 않은, 여성이. 그 어떤 야구와도 상관없는 듯한 단어로 나열된 나라는 사람이 야구를 하는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 시작했다.

학교에서 오래 달리기를 시켰다. 설렁설렁 뛰었고 어느새 내 뒤에는 아무도 없었다. "야, 땡땡아. 니가 전교에서 제일 못 뛴다!!!" 그 체육 선생님의 뼈 있는 한마디에도 그러려니 하고 대충 뛰는 독기 없는 중학생.

피티 20회 등록, 필라테스 6개월 등록, 수영 3개월 등록 그리고 재등록은 없었다. 쉽게 질리는 끈기 없는 직장인.

런데이 8주 차면 30분을 내리 달릴 수 있다고요? 찍먹 했다. 30분 땡 하고 달려보고는 그대로 런데이에서 런했다. 네.. 회피형입니다.

홈트 10분 이상 하면 힘들어서 누워서 눈만 영상을 보는... 지구력 부족

종이 한 장 지나갔다고 손가락에 선이 생겼고 피가 난다. 이 세상 제일의 엄살꾼.

구구절절한 TMI를 남발하는 것은, 이런 사람도 하는 운동이라는 것.

아, 물론 잘한다고 하진 않았다.


야구를 하겠답시고 시작했다고 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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