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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르미 Jun 07. 2024

남초회사에 혼자 여자로 지낸 삶

혼자라고 생각이 들때

본사와 분리된 연구소에서 일을 했었다. 연구소에는 엔지니어만 모여 있었으며 인원은 나를 포함하여 총 9명이었고 나를 제외하고 전부 남자였다. 추후 5명이 더 들어왔으나 전부 남자였다. 평균 연령은 40-50대였다. 공대를 다녀서 여자가 없다는 사실이 엄청 놀랍진 않았다. 여자분이 있어 괜히 안 맞아 인간관계 스트레스를 받는 것보다 아저씨들만 있는 게 나쁘지 않을 수도 있겠다며 긍정적으로 생각했다. 직무 특성일 수도 있지만 복장을 크게 신경 쓰지 않아도 돼서 편했다. 다들 교복처럼 비슷한 차림을 입고 다녔으며 회사 자켓이 있어 편했다.


성별도 다르고 나이도 크게 차이가 나서 정서적인 교류가 오고 가기가 쉽지 않았다. 초반에는 약간의 꼽을 받았다. '공대 아름이였지?' '남자들이 다 해줬지?' 꼽을 주는 한마디에 '대학생 시절 공대 아름이한테 말도 못 붙여보셨나.' 생각하며 자연스레 넘어갔다. 담배도 피우지 않아 재미없는 회사 생활이었다. 회사에 재미를 찾으러 다니는 건 아니지만 조금은 외로운 생활을 하였다. 처음에는 외롭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는데 시간이 지나니 나와 비슷한 마음을 가진 누군가가 없어 공감을 할 사람이 없다는 게 힘들었다. 여러 인간관계에 치이면서 인생은 혼자라는 생각이 머릿속 자그마한 공간에 자리를 잡고 있었는데 깨진 순간이었다. 혼자 살아가면 그보다도 우울한 건 없겠구나 싶었다. 개구리가 올챙이 적 기억을 못 하듯이 잘 알려주지도 않았다. 나중에는 아빠뻘이신 분들이랑 친해져서 공감대를 형성하긴 했으나 또래가 없는 아쉬움이 사라지진 않았다. 나는 아직 파릇파릇한 청춘인데 늙어가는 기분이었다.


식사를 할 때 남자분들이어서 그런지 다들 굉장히 빨리 드신다. 빨리 먹으려고 노력해도 항상 나는 늦었다. 그렇다고 느긋하게 먹을 수도 없고.. 자리도 매번 같이 앉아 먹어서 혼자 따로 먹는다 말하기도 눈치가 보였다. 점심시간은 소중한데 내가 늦게 먹으면 그들의 점심시간을 빼앗는 기분이어서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뭐가 그렇게 급한지.... 먹는 속도 차이가 나는 걸 알 텐데도 속도를 천천히 먹어 맞춰줄 배려는 전혀 없는 듯했다. 기본 속도대로 다들 드셨다. 소화도 잘 안 돼서 더부룩한 느낌이 들 거 같아 매번 혼자 산책을 했다. 따로 쉬는 공간이 없어서 매번 공터 같은 곳을 돌아다녔다. 점심시간이 제일 좋았다. 합법적으로 혼자 카페나 산책을 할 수 있는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안 그래도 불편한 회식, 혼자 여자여서 매번 조금은 신경이 곤두서 있었다. 직장동료분들이라곤 하지만 혹시나 모르는 상황들이 발생할 수 있기에 마음속으로 약간의 거리는 두고 있었다. 술을 잘 못 마시는 편이긴 하지만 되도록 잘 안 마시려고 했다. 마음 편히 마시게 되지 않았다. 2차, 노래방은 더더욱 안 가게 됐다.


그래도 이런 불편함들이 퇴사하고 싶을 정도의 요소는 아니었다. 퇴사하고 싶어 지니 이런 요소들이 더 안 좋게 받아들여졌다. 그렇지만 다음 회사를 고를 때는 어느 정도 규모가 있는 곳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안 좋은 것들 투성이인 회사를 경험해 봄으로써 회사를 선택하는 기준이 명확히 잡히게 되었다.


뭐든지 경험해 봐야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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