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산에서 만난 사람 ③, <괴산일기> 임희선 작가
컨츄리시티즌은 지역과 도시를 잇고 있습니다. 저희의 첫 번째 프로젝트 '괴산상회'에서 만날 수 있는 이야기를 브런치로 먼저 전해드립니다.
괴산에서 콘텐츠를 만들고 계신 분을 만나 뵙게 되어 정말 반갑습니다.
반갑습니다. 임희선입니다. 저는 괴산에 귀촌한 지 2년 정도 됐고, ‘쿠쿠루쿠쿠’라는 1인 출판사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제 콘텐츠를 내는 작가로도 활동하고 있어요. 괴산에 온 지 1년 됐을 때 <괴산일기>라는 책을 냈습니다.
<괴산일기>를 보면 건강 문제로 괴산으로 오셨다고 들었어요. 서울에서의 삶을 비교해 봤을 때 크게 달라진 점이 있으신가요?
가장 많이 바뀐 건 ‘쉬는 방법’을 깨닫게 된 점입니다. 저는 서울에서 나고 자라면서 쉬는 방법을 몰랐거든요. 늦잠도 낮잠도 잘 몰랐어요. 시간을 알차게 써야 한다는 강박이 있었나 봅니다. 그런데 몸이 안 좋아져서인지 괴산에 와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여기에서는 조금이라도 피곤하면 바로 잠에 들었어요. 제가 괴산에 처음 왔을 때, 오자마자 원 없이 잠을 잤어요. 하루 종일 자기도 했거든요. 지금 생각해 보면 이렇게 깊게 잠들 수 있었던 것은 자연이 주는 치유의 힘 덕분이 아닐까 싶습니다.
괴산에서 조금이라도 건강해지셨다니 정말 다행입니다. 이제 콘텐츠에 대해 여쭤보고 싶은데요. 일반적으로 귀농·귀촌을 생각하면 농업이나 관광업을 떠올리잖아요. 그런데 콘텐츠를 생산하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으신가요?
사실 저는 괴산에 아무것도 하지 않고 쉬려고 왔어요. 건강이 좋지 않았을 때니까요. 그런데 쉬면서 건강이 회복되니 예전부터 바라던 제 꿈이 스멀스멀 올라오더라고요. 원래 저는 동화 작가를 꿈꿨거든요. 그래서 일상적인 것들을 기록하게 됐어요. 시골생활이 처음이었으니까요. 그 첫해의 경험과 감정을 기록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완성된 것이 바로 <괴산일기>입니다. 사실 책에 기록된 장면들이 누군가에게는 그저 평범한 순간일 수도 있어요. 그런데 저는 도시에 살면서 개구리울음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었어요. 괴산에서 개구리울음소리를 들었을 때 정말 신기했습니다. 살면서 처음 해보는 경험이 괴산에는 정말 많았고 저한테는 신기한 일들이라 기록해 봤습니다.
말씀하신 <괴산일기>는 괴산에 1년간 살면서 만난 40가지 장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을 꼽으라면요.
음, 두 가지 장면이 생각납니다. 첫 번째는 ‘눈 발자국’ 편입니다. 서울에서는 눈이 내리면 사람들의 발자국과 도로 위의 바큇자국으로 눈이 금세 사라지고 더러워지곤 하잖아요. 그런데 저희 집 마당에 내린 눈은 제가 나가서 밟지 않는 이상 아무도 건드리지 않습니다. 물론 당연한 것이겠지만(웃음). 그게 너무 좋아요. 간혹 고양이 발자국이 찍혀 있는데 그런 순간에 “아, 내가 이렇게 귀여운 생명과 함께 살고 있구나”라는 생각을 합니다. 두 번째는 괴산의 ‘어둠’이에요.
서울에서는 자려고 불을 꺼도 아스라한 가로등 빛이 보이고 자동차 소음이 들리잖아요. 근데 괴산은 정말 새까만 밤이에요. 소리도 하나도 안 나요. 그래서 괴산에서 잠을 더 잘 자는 것 같아요. 아무래도 그동안의 밤은 가짜 밤이 아니었을까요.
괴산의 밤을 저도 한 번 꼭 겪어보고 싶습니다. 작가님께서는 ‘쿠쿠루쿠쿠’라는 특별한 이름의 출판사도 운영하고 계세요. 이름은 어떻게 지으신 건가요?
<그녀에게>라는 영화에서 나온 노래 제목에서 따왔어요. 특별히 뜻이 있다기보다는 제가 쿠쿠루쿠쿠라는 발음을 좋아해요. 스페인어로 비둘기가 구구구구하고 우는 소리죠. 또 의미를 찾아보면 비둘기가 소식을 전하는 동물이기도 하잖아요. 저도 독자분들에게 소식을 전하는 사람이 되겠다는 뜻도 있습니다. 제가 2020년에 괴산 1호로 출판업을 등록했는데요. 저 이후에도 몇 분이 더 등록하셨어요. 이렇게 책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끼리 작게나마 ‘괴산출판모임’을 하고 있습니다. 그냥 사부작사부작 뭔가 해보려고 합니다. 생각보다 괴산에 책을 좋아하시는 분들도, 출판에 관심이 있는 분들도 많더라고요. 여기서 이런 분들을 만날 거라고는 생각 못 했는데, 정말 신기했어요. 잘 되면 북페어 같은 행사도 진행해보고 싶습니다.
작가님이 계획하고 계신 괴산을 담은 다음 콘텐츠는 무엇이 있을까요?
음, 아마 저 마당에 있는 고양이 파도네 가족 이야기일 것 같아요. 괴산 고양이 파도. 저 고양이를 키워본 적이 없거든요. 근데 파도한테 간택당했어요. 파도가 저희 집에 놀러 오고 어느 순간 제가 사료를 사고 있었습니다. 고양이 파도네 가족들 사진을 많이 찍었는데 그 사진을 가지고 사진집을 내고 싶어요. 도시 고양이들은 집에 살잖아요. 가짜 모레를 화장실로 쓰고요. 그런데 파도네 가족들은 진짜 모레를 화장실로 쓰고 진짜 쥐도 잡아 오곤 합니다. 그런 사진들을 모아 사진집을 내고 싶습니다. 그리고 구체적으로 범위를 정한 건 아니지만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오래된 물건에 대한 사연을 들어보고 싶어요. 물건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면 자연스럽게 그들의 일상도 접하게 되니까요. 아마도 제가 그리는 괴산은 이렇게 소소하고 일상적인 얘기일 것 같아요. 그런 작고 소소한 괴산의 이야기를 만들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