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캐나다 여행 이후

by Sonya J

2008년 어느 날, 캐나다에서 유학 중이던 친구에게서 연락이 왔다. '캐나다 한번 와!'. 졸업 후 취업준비로 인한 스트레스와 친구에 대한 그리움이 더해져 그 해 12월, 6개월 동안 캐나다 여행을 떠났다.


생애 첫 해외여행. 3개월 어학연수, 그 나머지 시간들은 여행을 다니는 걸로 계획했다. 고등학교에서 배운 영어가 전부인 나에게 3개월 동안의 어학연수는 그다지 영어실력을 올리는데 기여하지는 못했다. 나에게는 어학교를 연장할 여유 돈이 없었기에 영어공부를 더 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각 학교마다 트라이얼 레슨을 신청하면 하루동안 수업에 참관할 수 있었기에 아침마다 트라이얼 레슨이 가능한 학교를 찾아다니면서 수업을 듣곤 했다. 남은 3개월은 로컬 사람들의 일상 속에서 지내고 싶어서 지역 피트니스 센터에 가입을 해서 아침마다 운동을 하러 다녔다. 꽤 먼 거리였는데 아침마다 운동한다는 기분으로 걸어 다녔다. 얼마나 꾸준히 다녔으면 아침마다 오는 사람들이 나를 기억할 정도였다. 한 번은 한 할아버지가 나에게 말을 걸었다.

"Are you a dancer?" 왜냐하면 그 당시 내가 스트레칭만 엄청했었기 때문이다.


그 당시 한국은 캐나다에서 잘 알려지지 않은 나라였다. 나를 보면 중국인이나 일본인으로 착각했다. 심지어 Homeless가 나를 중국인으로 착각했는지 중국인 비하 욕을 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캐나다를 사랑할 수밖에 없었다. 아침마다 학교를 가기 위해 버스를 타는데 붐비는 버스 안임에도 불구하고 휠체어를 탄 승객이 오자 모두들 자리를 비켜주었다. 다들 서로가 처음 보는 사람들 같은데 서슴없이 말을 걸고 이야기를 하는 모습은 정말 신선한 문화 충격이었다. 한국 사회는 장애인들이 눈치를 보면서 살아가는데 여기는 더 우대를 받으면서 살아가더이다. 또한 Skytrain(한국에서는 지하철에 해당)를 타러 가는데 게이트가 없었다. 표를 찍고 들어가는 게이트가 없는 것이다. 사람들의 양심에 맡기는 시스템이었다. 물론 불시에 표검사를 해서 걸리면 벌금을 부과하지만 이 많은 사람들을 어쩌다 검사할 수 있다는 말인가. 지금은 게이트가 생겨서 당연히 교통카드를 찍어야 하지만 그 당시 캐나다는 정말 순수했다. 한국에 비해 불편한 것들도 많았지만 너무 평화로웠다. 이런 곳에서 살고 싶었다. 나를 신기하게 쳐다보는 시선까지도 좋았다.


6개월 동안 배운 영어로는 너무 부족했고 이제 막 입이 뜨일 때쯤에 다시 한국으로 돌아갈 시간이 되었다. 그 이후 또 한 번의 캐나다에 갈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캐나다에서 유학 중인 그 친구가 결혼을 한다는 것이었다. 캐나다에서 돌아온 후 너무 캐나다가 그리웠다. 기회만 있다면 꼭 다시 한번 가고 싶었는데 마침 이 친구가 bridesmaid로 나를 초대해 주었다. 하나뿐인 친구가 그것도 캐나다에서 결혼한다는데 당연히 가야 했다. 2015년 9월, 다시 캐나다를 향해 떠났다. 이번엔 짧은 일주일이었지만 그래도 너무 설레었다. 난생처음 bridesmaid도 해보고 예쁜 드레스도 입어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과연 캐나다 사람들은 어떤 식으로 결혼식을 올릴지 궁금하기도 했다.


결혼식은 상상 이상이었다. 내가 꿈꾸던 그런 결혼식이었다. 한국에서는 볼 수 없었던 결혼식. 예쁜 정원에서 소수의 사람들을 초대하고 정해진 인원에 맞게 준비한 리셉션. 너무나 모든 것이 완벽했다. 나도 이런 곳에서 결혼하고 싶었다. 정말 나를 축복해 주는 사람들과 모여서 단란하게 하는 스몰 웨딩. 또 다른 꿈을 품게 했다. 나는 꼭 캐나다에서 결혼하리라.


그렇게 해서 나의 두 번째 캐나다 여행은 꿈이란 씨앗에 물을 뿌려주었다. 2016년 5월, 드디어 씨앗에 새싹이 피어났다. 나는 지금까지 모은 전 재산을 탈탈 털어서 캐나다 유학의 길을 떠났다. 언제 돌아올지 모르는 긴 여정을 떠나기로 결심했다. 되도록 오래 머무는 게 내 목표였다. 드디어 캐나다 유학생의 삶이 시작되는 순간이다. 그 목표가 지금의 나를 만들어 줄지는 상상도 못 한 채, 나의 유학생활은 이렇게 시작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