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57. 친구를 만들기 위한 조건
Tuesday, April 15, 2025
어제 오래간만에 걷기 운동을 해서일까. 온몸이 쑤신다. 세상에.. 나름 운동을 시작해서 뿌듯했더니만 아직 내 근육들은 준비가 되지 않았나 보군. 발바닥이 불이 난 느낌이다. 오늘 계획했던 일들을 잠시 보류하고 푹 쉬기로 했다. 어차피 나의 메인 계획은 책 읽기였으니까 이것에 집중하기로 하자.
여전히 나는 'LET THEM THEORY'를 읽고 있는 중이다. 최대한 천천히 곱씹으면서 읽으려고 하고 있다. 오늘 읽은 파트는 Adult Friendship에 관한 주제였다. 우리 모두가 아마 같은 생각이 아닐까 싶다. 왜 어른이 되어서 친구 만드는 것이 힘들까 하는 생각. 누구나 한 번쯤 생각해 봤을 것이다. 물론 세상에 Social butterfly들도 많다. 그래서 누구보다도 쉽게 친구를 만들 수 있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친구는 잠깐 스쳐가는 인연이 아닌, 인생의 희로애락을 함께할 수 있는 그런 친구를 말한다. 학창 시절 때는 쉽게 그리고 금방 친구를 만들 수 있었지만 왜 어른이 되어서는 힘든 걸까?
책의 저자는 친구를 만들기 위해서는 세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고 한다: Proximity, timing, energy.
이 세 가지 조건이 충족되어야지만 우리가 흔희 말하는 friendship이 생긴다고 한다. 첫 번째로 Proximity, 즉 거리상의 가까움. 그렇다. 아무리 친한 친구여도 자주 볼 수 없는 사이라면 자연스럽게 연락이 뜸해질 수밖에 없다. 물론 문자나 전화통화를 통해서 서로의 안부를 물을 수는 있지만 같은 동네나 자주 볼 수 없는 거리라면 사실상 계속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어려울 것이다. 생각해 보자. 학창 시절 때, 친구 만들기가 쉬었던 이유는 거의 동네 친구들이 같은 학교를 진학하기 때문에 결국에 매일 보는 사이가 되고 방과 후에 같이 놀 수도 있고 친구집에서 시간을 보내도 부담 없이 집에 돌아올 수 있는 거리에 살기에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가능했다. 하지만 성인이 되면서는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각자 인생을 살아가는데 바빠질 수밖에 없다.
처음에 캐나다에 왔을 때, 친해진 브라질 친구가 있었는데 우리는 같은 집주인을 둔 세입자였다. 문만 열면 바로 보이는 거리에서 살았기 때문에 모든 특별한 날들을 함께 할 수 있었다. 같이 교회도 가고 크리스마스도 함께 보내고 공부도 같이 하고... 특히, 그 친구가 나중에는 내 결혼식의 증인으로 함께 해주기까지 한 그런 고마운 친구였다. 그러다가 내가 결혼을 하면서 이사를 가게 되었고, 그 친구도 나중에 앨버타 주로 이사를 가는 바람에 더 이상 자주 볼 수 없는 사이가 되었다. 가끔 연락은 하지만 전처럼 많은 신경을 쓰지 못하게 되었고 자연스럽게 연락이 틈해지는 사이가 돼버렸다.
이렇듯, 친구관계에 있어서도 거리가 중요하다. 그렇다면, 자주 보는 직장동료는 아무리 거리가 멀어도 매일 보니까 친구가 되지 않을까? 학창 시절처럼 말이다. 이번엔, 타이밍의 문제이다. 학생 때는 모두가 같은 나이고 같은 관심사를 함께 나눌 수 있는 공감대가 형성되기 때문에 쉽게 친해질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직장동료들 먼저, 나이대부터가 다르다. 내가 살아온 세월과 그들이 살아온 세월이 다른 경우가 있어서 서로의 관심사가 다를 확률이 높다. 캐나다에 살면서 좋다고 느낀점은 나이를 신경 안 쓴다는 점이다. 내가 나이가 많건 적든 간에 자연스럽게 친구가 될 수 있다. 실제로 코스트코에서 일하면서 마음 맞는 직장동료들을 만났는데 그들의 나이는 천차만별이다. 하나는 20대이고, 또 다른 하나는 50대 중반. 나와 동갑은 아직 만나지를 못했다. 아마 못 만날 확률이 높을 것이다. 왜냐면, 여기는 나이를 안 물어보니까. 그런 우리가 친해질 수 있었던 것은 단지 일 때문이다. 일에 대한 불만이나 가십들을 함께 떠들 수 있다는 것만으로 우리를 하나로 뭉치게 했다. 근데, 우리는 따로 한 명씩 만나지는 않는다. 왜? 일적인 대화 말고는 서로의 관심사가 다르기 때문이다. 어느 누구는 이제 막 돌이 지난 아기를 가진 직원도 있고, 또 어느 누구는 세컨드 잡을 해야 하는 친구도 있고, 어느 누구는 아직 세상 물정 모르는 그런 어린 친구이니, 나의 관심사와 그들의 관심사가 달라서 따로 만나 시간을 보내기가 어렵다. 서로의 타이밍이 맞지 않으니 직장동료가 친구가 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다시 브라질 친구와의 관계로 돌아가보자. 그 친구는 정말 나에게 도움을 많이 준 친구였다. 혼자 외로이 지나는 나에게 가족 같은 존재였다. 미혼이었던 나에게 그 브라질 가족은 언제나 나를 진심으로 대해줬다. 내향적인 나와 외향적인 그 친구는 정말 잘 맞았다. 이제야 친구 같은 친구를 만났다고 생각했었는데, 사실 이 친구는 나에게만 잘해주는 건 아니었다. 나에게 베풀었던 것처럼 다른 지인들에게도 적극적이 였다. 그래서 그 친구는 인간관계가 좋았다. 좋게 말하면, 인간관계가 넓었고, 다르게 말하면 오지랖이 넓었다. 그러니, 그 친구는 언제나 바빴다. 한편으로는 내가 그 친구의 특별한 친구가 되고 싶었지만 그건 나의 욕심이었다. 내가 나의 속사정을 그 친구에게 터놓듯이 다른 지인들도 그 친구에게 많이 의지를 했다. 그것도 어떻게 보면 인복이 아닐까 싶지만. 점점 나도 이 친구에 대한 관심을 줄이기 시작했다. 괜히 내가 이 친구의 시간을 뺐는다는 생각도 들었고, 억지로 시간 내서 만나고 싶지도 않았다. 자연스럽게 그 친구에 대한 나의 에너지가 줄어들면서 관계가 서먹서먹해졌다. 이렇듯 서로의 에너지가 맞지 않다 보니 친구관계에도 이상이 생긴 것이다. 그 친구가 앨버타로 이사 간다고 했을 때, 송별회를 했는데, 꽤 많은 친구들이 모였다. 그걸 보면서, '아, 내가 실수했구나, 이 친구는 모두에게 진심이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진심이 아니고서야 사람들이 이렇게 모일 수 없다고 생각했다. 끝까지 그 친구를 처음 가졌던 에너지로 대하지 못한 것에 대한 후회가 지금도 있다.
유치원 때부터 알고 지낸 베스티가 있었다. 이 영원할 것 같은 우정도 결국 오래가지 못했다. 난 이유도 모른 채, 그 친구를 잃었다. 어딘가에 살고 있겠지만, 내 인생에 더 이상 베스티는 존재하지 않는다.그후 나는 영원히 친구를 만들 수 없다고 생각했었다. 그래서 잠시, 우울에 빠진 적도 있었다. 결혼을 했으면서도 그 채워지지 않은 친구에 대한 그리움 때문에 정말 괴로웠었다.
근데, 이제 깨달았다. 그게 인생이라는 것을. 그렇게 스쳐 지나가는 인연들은 또 다른 형태로 다가온다는 것을. 친구가 필요하면 내가 먼저 다가가면 된다. 누가 먼저 다가오기만을 기다를 필요가 없다. 먼저 다가가서 나를 알리면 된다. 그렇게 해서 잘 되면 친구가 되는 것이고, 아니면 그대로 지나가면 된다. 이렇게 만나다가도 또 떠날 수도 있는 게 친구인 거 같다. 누군가를 소유할 수는 없는 거니까. 어느 날 갑자기 학창 시절의 친구가 떠올라서 자연스럽게 카톡 한번 날려주고, 답장이 오면 계속 연락하면 되는 것이고, 아니면 그대로 잊으면 된다. 그럼에도 당신에게 인생의 반쪽 같은 친구가 있다면, 당신은 정말 행운아다. 그리고 그런 당신을 내가 부러워한다는 것을 알아주기 바란다.
오늘의 픽:
혼자가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