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노트 1-23
가설 없이 과학이 지속될 수 없듯이 꿈과 환상은 예술의 당연한 현실이다.
우리들 삶에 있어서 꿈꾸는 일은 이런 의미에서 항시 새로운 현실을 보여 주는 것이 된다.
과학은 우리에게 가능한 한 꿈과 같은 환상은 필요 없다고 말하지만, 그러한 환상 때문에
오히려 현재의 과학이 발전됐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하여, 우리들 삶에는 과학의 확실성 못지않게 예술의 불확실성 또한, 중요한 의미가 있다.
철학자 피타고라스는 이렇게 말했다.
“철학은 곧, 음악이다.”라고.
하면, 철학적 사유를 통하여 제작한 그림 속에는 문학, 음악, 미술의 영역이 모두 다 표현되는 것이다.
마치, 동양미술에서 최고의 화가를 시(詩),서(書),화(畵)에 자유자재며 능한 이를 三節(삼절)이라 하는데, 철학적 사유를 하며 그림을 그리며 사는 화가가 그런 부류의 진정한 작가가 아니겠는가!
‘사유’란?
Logo의 추구이다.
서양의 로고스는 동양의 道(도)와 그 맥을 같이 한다.
모든 복잡다단한 예술은 하나의 一획으로 집합되고 하나의 영(=空)으로 집합되고 영은 곧, 우주를 말하므로 一획은 곧 전체 우주로 집합되며 우주의 상징인 영은 과거, 현재, 미래가 없이 그저 그대로인 點(점)으로 집합되고 그 점은 형이상학적 우주의 본체인 無(무)로 집합되고 그 무는 살아 있는 인간의 마음 또는 인간의 주간으로 귀결된다.
이러한 인식의 경지에 다다랐을 때, 神(신)과 내가 합일되어 인간 또한 자연이 된다.
이 경지가 인간과 자연의 ‘완전한 종합’인 것이다.
전체이면서 하나인 경지다.
사유의 궁극은 Logos라는 사실을 알았다.
혹자는 철학자가 神(신)의 존재를 부정하고, 생뚱맞은 자신의 논리만을 최고의 진리인 양 주장하는 사람들이라며 헐뜯었을 그럴 뿐만 아니라 많은 신학자는 그들을 말장난이나 일삼는 궤변론자들이라 조롱했다.
그러나,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피타고라스의 수의 철학을 보면 생각이 달라진다.
그의 철학적 사유의 결과물이 피라미드의 실마리가 됐다면 믿겠는가!
이렇듯 철학자의 심오한 사유의 결과로 불가사의한 건축물이 생겨나기도 한다.
그들이(피타고라스학파) 1,2,3,4라는 수로 만든 피라미드는 돌이나 나무로 만든 피라미드가 아니고, 비물질적인 것, 즉, 마음의 개념에 불과한 것이었다.
그들은 아리스토텔레스의 말대로 “무게가 없는 개념이 무게를 가진 것의 요소를 만들었다.”
피타고라스는 또한 음악의 옥타브에서의 조화음들이 일정한 수학적 비율들에 일치한다는 것을 발견하였다.
교회가 있는 동네 41X63cm Oil color 2012년
강종찬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