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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세연 Aug 10. 2023

취업의 달인은 아니고요,
열심히 살았습니다. ①

feat. 첫 취업 성공기

실업고 출신인 내가 사회 초년생으로 불리기 시작한 것은, 아직 고등학교를 졸업하기 전부터였다. 내 모교는 윗세대에서 최고의 명문고였고, 내가 재학 중일 때도 여전히 많은 대학과 기업에서 3대 명문 실업고로 통했다. 모교에는 총 4개의 과가 있었는데, 학교 축제일이면 의상과에서 전망 있는 친구를 점찍으러 관계자들이 찾아왔고, 디자인과 친구들은 대부분 대학 진학에 성공했다. 상과나 정보과 역시 뜻이 없는 일부를 제외하고는 졸업 전에 진학이나 취업이 결정됐다. 그러니까 내가 고3 여름 방학 전에 취업을 성공한 것은 학교에서는 전혀 특별한 일이 아니었다. 


인문고의 고3 담임 선생님이 기를 쓰고 애들을 대학에 진학시키듯이, 실업고의 고3 담임 선생님은 기를 쓰고 애들을 취업시켰다. (실업고에서 대학을 준비하는 애들은 스스로 대학 갈 준비를 잘했다. ) 취업을 준비하는 실업고 3학년 학생 일부는 학기 초 담임과의 면담에서 원서받을 회사가 정해졌다. 당시에는 몇몇 기업이 학교마다 일정 수량으로 사내 양식으로 된 지원서를 뿌렸다. 그래서 이력서를 내는 게 아니고 지원서를 받는다고 하는 게 맞았다. 고3 초, 지금도 잊지 못하는 첫 면담에서 담임 선생님이 내 성적표를 쭉 보면서 이렇게 말했다. 


“네 성적이 지금 여기인데, 여기까지만 올리면 S그룹 원서 줄 수 있겠다. ” 


성적이라는 것은 너무 뛰어나도 주목받고 너무 바닥이라도 주목받는다. 내 성적은 주목받기는커녕 뭐라 말하기도 애매한 중상위 박스권을 형성하는 중이었다. 내게는 꼭 S그룹을 가겠다는 꿈은 없었지만, 원서를 준다는데 마다할 이유도 없었다. 게다가 S그룹과 L그룹은 학년 초에 원서를 뿌려서 1학기 내로 취업 여부가 결정되기 때문에, 잘하면 2학기 내내 놀면서 지낼 수 있다는 게 매력적이었다. 만일 1학기에 취업이 안 되더라도 2학기에 지원할 기업들은 많이 있을 거니까 손해 볼 일도 아니었다. 그래서 담임과의 면담 이후 평소보다 공부를 열심히 했고, S그룹 원서를 받기 적당한 수준으로 성적이 올랐다. 


Pixabay, Jake님 의 이미지


모교에서 S그룹을 지원하는 학생은 해마다 50명 정도 되었다. 지원자가 결정되면 S그룹 취업 준비반에 배정되고 여러 가지 취업에 필요한 것들을 집중적으로 배웠다. 1학년 때부터 습득한 일반 상식에 최근 시사 상식을 추가해서 달달 외웠으며, 자기 소개하는 법을 배우고 실습했다. 면접 시 인사하는 방법, 서 있는 방법, 앉는 방법, 앉았을 때 태도까지 주입식으로 배우고 연습했다. 이때는 언제 써먹을지도 모르는 학과 공부가 중요한 게 아니었다. 인문고와 마찬가지로 실업고도 학년 초 중간고사가 지나면 고3까지 낼 수 있는 성적은 다 낸 것으로 보았다. 인원이 많아서인지, 아니면 S그룹이라서 그랬는지, 아무튼 취업 준비로 할 수 있는 유난이란 유난은 이때 전부 겪었다. 지금 생각하면 이때부터 S그룹 특유의 엘리트 의식을 주입받았던 것 같다. 


오랜 시간이 지났는데도, 첫 면접 중에 선명히 떠오르는 기억이 있다. 대기실에서 나와 복도를 따라 걷다가 문을 열고 들어가서 면접관을 향해 서는 순간. ‘S그룹은 면접 때 관상을 본대’라고 했던 친구 말이 떠올랐다. 다른 지원자가 면접관의 질문에 답변할 동안, 난 어처구니없게도 누가 관상쟁이일까, 하고 궁금해했다. 긴장을 안 한 것도 아닌데 그냥 그런 생각이 들었다. 옆에 지원자들에게는 적어도 2개 이상의 질문을 했는데, 나에게는 1개의 질문만 해서 좀 속상하기도 했다. 그 소중한 1개의 질문에 떨리는 목소리로 답한 게 제일 걸렸다. 


떨리고 긴장하면 아무 소리도 안 들리고 내가 무슨 말을 했는지 기억을 못 한다고 하는데, 나는 강산이 몇 번 변할 때까지도 그때 그 느낌이 또렷이 기억난다. 내 옆의 지원자는 취미가 영화 감상이라고 해서 영화에 관한 질문을 받았는데 답변을 제대로 못 했다. 그 와중에 나는 그 지원자가 떨려서 말 못 하는 게 아니고 취미가 거짓말이었기 때문이란 인상을 받았다. 몇 개의 질문이 더해질수록 내 옆의 지원자는 내가 봐도 ‘망했다’가 보였다. 입사 지원자가 자기 이야기에 대해 거짓말을 해서는 안되었다. 내가 받은 인상을 면접관이라고 달리 받았을까?


그리고 내 차례. 


내가 받은 질문은, ‘지원서에 외부 동아리 활동으로 독서 토론을 썼던데, 상대방이 나와 다른 의견을 강하게 주장하면 어떻게 하겠느냐’였다. 사실 정확한 워딩은 기억나지 않고 대략의 내용이 이랬다는 것이다. 내 답변도 역시 정확한 워딩은 기억하지 못하지만, 동아리에서 자주 겪었던 일이기에 서로의 의견을 내고 상대를 잘 설득하던가, 잘 절충하겠다는 내용으로 답했다. 원론적인 답변이었지만, 내가 하는 동아리 활동이 토론반이란 것을 증명하기엔 충분했다. 그러나 그때는 그걸 몰랐고, 그냥 일어났던 일 그대로 말했다는 정도의 느낌이었다. 그 하나의 질문을 끝으로 다음 지원자에게 질문이 돌아갔기에, 순간적으로 너무 긴장해서 말을 잘못했나, 싶었다. 친구에게 첫 면접 때 일을 말하면서 불합격된 것 같다고 했더니, 다정한 나의 친구님은 ‘합격시키려고 더 질문 안 한 거야’라고 위로해 주었다. 얼마 뒤 친구의 위로는 현실이 되었다. 


이제 와서 이야기하지만, 내 모교는 외부 동아리 활동을 탐탁지 않게 여기고 금지시켰다. 가끔 선후배 사이에 기강을 세게 잡는 교내 동아리를 보면서, 애들이 모이면 사고 친다는 오해를 했던 것 같다. 그러나 내가 활동했던 동아리는 서울시가 후원하는 청소년회관(찾아보니까 지금도 “시립서울청소년센터”로 존재하고 있다. )에 소속된 건전한 독서 토론 모임이었다. 기껏 친 사고는 서울시 주최의 연말 봉사활동에 참여하거나 청소년회관 주최의 농촌봉사활동에 다녀온 것이었다. 아직 취업이나 대학 진학 시에 봉사활동 경험 여부가 필요하지 않았기에, 차고 넘치는 봉사활동 시간이 기재된 수첩은 하나의 기념품이 되었다. 


그런데 이것이 다른 지원자와 나를 구분하는 차별점이 되었다. S그룹 지원서에는 지원자가 기재하는 수많은 칸들이 비어 있었는데, 그것을 모두 채운 사람은 내가 유일했다. 몇몇은 자격증 칸이, 몇몇은 교내외 활동 칸이, 그리고 대다수가 봉사활동 칸이 비었다. 


실업고에서 성실하고 모범적인 학생이라면 주산, 부기, 타자, 이렇게 세 종류의 기본 자격증을 입학 전후로 취득했다. 나는 우등생은 아니지만 모범생은 되었기에 기본 자격증을 갖추었다. 그런데 워드프로세서로 문서 작성 도구가 바뀌었고, 필수사항은 아니라도 제대로 된 기본을 갖추려면 추가로 자격증을 취득해야 했다. 그렇게 기본을 맞혔다고 생각한 때에, 같이 다니던 친구가 정보기기 운용기능사 자격증 공부를 했다. 나도 친구 따라서 자격증을 하나 더 취득했고, 지원서에서 자격증 칸을 하나 더 채울 수 있었다. 


교내 활동의 경우, 나는 이미 교내 편집부 기자로 2년 동안 활동하고 있었고, 특히 고3 때는 편집부장을 겸임했다. 반장, 회장 등의 장은 못했지만, 편집부장을 했기에 특이사항을 기재하는 부분도 빈칸 없이 채울 수 있었다. 교내 편집부인 데다가 교외 활동도 독서 토론 동아리다 보니 취미는 독서, 특기는 토론이라고 기재했다. (아마 글쓰기도 썼을 것이다. 그동안 내가 작성한 독서 감상문과 창작 시, 기사가 몇 개인데!) 


그렇게  지원서의 칸을 다 채우고 남을 만큼 나는 고교 시기 내내 많은 활동을 하면서 열심히 살았다. 공부를 막 열심히 했다고 하기는 어려웠지만, 중상위 박스권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사실 공부는 남들 하는 만큼만 했으면 됐지, 큰 욕심이 없었다. 딱 한 번, 담임 선생님이 수능 한번 보자, 라고 며칠 따라다니신 적은 있었다. 하지만 형편이 안되니 수능을 봐서 대학 갈 성적이 나와도 곤란했다. 그냥 내 생활에 간섭받지 않을 만큼만 공부하고 나머지 시간은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이 행복이었다.  내가 좋아하는 일이니 열심히 했다. 그뿐이었다. 그런데 결실은 운 좋게도 S그룹 금융그룹 입사였다. 내 첫 번째 취업 성공기는 이렇게 시작했다. 


Pixabay, Eko Pramono 님의 이미지


#첫면접의추억

#첫취업성공기

#열심히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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