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도 불행한 적 없는 것처럼 웃는 네가 부러웠어
‘왜?’
라고 적자 대답이 돌아왔다.
“응? 아무것도 아니야. 그냥 뭐가 생각나서.”
아무것도 아닌 건 아니겠지만 꼬치꼬치 묻지 않았다.
“근데 우리 같은 반이고 신기하다. 음 왜 이렇게 일찍 나왔어? 지금은 7시 27분이긴 하지만..”
‘그냥 개학이어서 긴장했나 봐, 일찍 눈이 떠졌어. 넌?’
“나는-”
철커덩- 뒤에서 큰 소리가 울렸다. 나와 라온은 깜짝 놀라 뒤를 돌아봤다. 교문이 열린 것이다. 문을 열어주신 경비 아저씨가 말을 걸었다.
“학생들 개학날부터 부지런하네~ 춥진 않아? 어서 들어와.”
경비아저씨는 웃으며 우리에게 아침인사를 건넸다. 라온이도 그랬다.
“오늘 진짜 진짜 춥더라고요. 선생님 덕분에 빨리 들어가네요. 감사합니다!”
나는 약간 고개를 숙이고 학교로 들어갔다.
라온이를 따라 2-5반으로 향했다. 그러곤 들어오면서 벗은 신발을 대충 아무 칸에나 집어넣었다. 방학 동안 먼지가 쌓였는지 신발칸은 내 신발보다 더러워 보였다.
교실을 보니 책상은 두 개씩 붙어져 있었다. 그중 나는 맨뒤 창문 쪽에 앉았다.
책상에 앉으니 은은한 교실에 냄새와 어딘가 불편한 의자가 학교에 온 걸 실감 나게 해 주었다. 오랜만의 학교라고 낭만적인 느낌도 들었다. 그렇게 창문밖을 바라보는 동시에 라온이가 내 옆에 앉았다. 당황스러웠다. 보통 남녀가 이렇게 같이 앉지는 않는데.. 뭔가 특별한 것 같았다. 하지만 그런 나와 다르게 라온이는 평온하게 웃으며 말을 걸었다.
“친하게 지내자~. 내 짝꿍”
자리가 정해지지도 않았는데 짝꿍이라니. 무슨 소리를 하는지 몰라 두리번거렸다. 그러다 칠판에 무언가가 쓰여 있는 게 보였다.
[들어온 순서대로 앉으세요. 그 친구와 짝꿍입니다. (멋대로 앉는 친구 발견 시 알려주세요) ]
민망했다. 괜히 나만 놀랐었다. 라온도 내가 몰랐다는 걸 아는 눈치인지 헛웃음을 지었다. 그 와중 이런 생각이 들었다. ‘뒤에서부터 채워도 되는 건가?’ 뭐 선생님이 안 써두셨으니 상관이 없는 걸 거다. 아마도..
시간이 너무 남았다. 교실에 들어와도 7시 40분.. 보통 개학날엔 한 두 명씩 들어올 시간이었지만 아무도 들어오지 않았다.
“세은아. 작년엔 몇 반이었어?”
라온이 말을 걸었다. 나는 적었다.
‘작년엔 여기에 없었어ㅎㅎ. 그래서 이 학교에 대해선 잘 몰라.’
라온은 잠시 고민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래서 내가 널 몰랐구나. 생각보다 내가 모르는 동갑은 없거든~.”
‘ㅎㅎ’
“학교에 대해 잘 모르면 학교 소개 해 줄까? 뭐 심심하기도 하잖아!”
괜찮은 생각이었다. 어색한 침묵보다는 춥더라도 걸어 다니는 게 나았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고 라온은 웃었다.
“따라와.”
교실을 나가서 가운데 계단으로 천천히 걸었다.
“혹시 먼저 가고 싶거나 따로 궁금한 곳 있어?”
난 대답하기 위해 노트를 펼쳤다. 그런데 옆에 꽂아둔 볼펜이 사라져 있었다. 바닥을 훑어보았지만 볼펜은 보이지 않았다. 나는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그건 라온도 마찬가지였다. 우린 엉거주춤하게 서있었다.
가장 궁금한 곳은 매점이었다. 일단 볼펜이 없으니 손을 움직여서 표현해 보았다. 탄산수를 잡고 마시는 모습이라던가 물건을 고르는 모습이라던가. 우스꽝스럽지만 나름의 최선을 다해 라온에게 표현했다. 난 매점이 궁금하다고.
벙쩌있는 얼굴로 날 바라보던 라온은 한순간에 웃음을 터트렸다. 민망하지도 못하게 명량히 웃었다. 나도 이런 상황이 웃겨 실웃음을 보였다.
“알겠어. 네가 가고 싶은 곳 알려줄게”
우리는 웃음을 싣고 매점을 향해 걸었다.
아직 대부분의 교실의 문이 잠겨 있었다. 그래서 대충 위치만 알려주었다. 매점, 보건실, 강당, 음악실 정도를 갔다 오니 8시가 조금 넘었다. 이제야 복도에서는 사람들의 인기척이 들려왔다.
나는 교실로 돌아가자는 포즈를 지었다. 동시에 라온이 말했다.
“사실 등교하면 제일 먼저 가고 싶은 곳이 있었는데. 같이 갈래? 아직 8시 10분쯤인데..”
예상외의 답변이었다. 하지만 나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교실에 혼자 가는 것보단 라온과 함께 있는 게 좋았다. ‘학교에 일찍 온 것도 이것 때문인가?’ 속으로 중얼거렸다.
우리는 2층 맨 끝 복도로 걸음을 옮겼다. 거의 끝에 다다랐을 때쯤엔 창문을 가린 급식실 건물 때문에 어두웠다. 하지만 어김없이 라온은 앞으로 향했고 나도 뒤따랐다. 그러다 중간에 라온이 바닥에 주저앉았다. 나는 놀라며 어깨를 툭툭 건드렸다.
“잠시만 기다려봐. 이것만 열고”
바닥에서 뭐 연다는 걸까? 의문이었다.
라온의 손으로 바닥 타일을 들썩이고 있었다. 툭- 소리를 내며 벗겨진 타일 아래에는 오리 키링이 달린 반짝이는 열쇠가 놓여있었다. 타일 아래에 있었던 것치곤 너무나 깨끗했다. 의하했지만 가만히 라온을 기다렸다.
열쇠를 집은 라온은 어쩌면 슬픈 눈으로 바라보았다. 단순한 착각일지도 모르지만 난 그렇게 느꼈다. 하지만 금방 웃으며 날 바라보았다.
“내 비밀 열쇠야~. 여기 있는 건 비밀이다.”
뭔가 달라졌나, 얼굴을 바라보았지만 아무것도 달라진 건 없었다. 마냥 기쁜 아이처럼 날 보기만 했다.
라온은 무릎을 툭툭 털고 일어나 다시 복도 끝으로 향했다. 이제 지나가지 않은 문은 딱 하나였다. 무척 크고 무척 오래되어 낡은 나무 문. 그 문은 혼자 다른 시간인 듯 구석에 덩그러니 놓여있었다.
그 문의 보는 라온의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아까처럼 슬픈 눈을 하고 있을까. 아니면 가고 싶은 곳을 왔으니 웃고 있을까. 라온에겐 웃는 게 잘 어울릴 것 같았지만, 잘 모르겠었다.
끼익 끼익 거리며 망가져 가는 문고리를 땄다. 그러곤 문을 잡아당겼다. 어디 하나 멀쩡할 것 없는 문은 힘을 줄 때마다 멈추고 힘든 듯 소리를 내었다. ‘여기는 이제 놔줘야 하는 곳 아닌가’ 나는 힘을 주는 라온이를 마냥 바라보았다.
문이 열렸다. 문안에는 상상하지도 못한 풍경이 놓여있었다. 먼지로 가득 차여 있을 줄 알았던 곳은 왜인지 깔끔했고 잡동산이들 사이에 어딘가의 패턴이 놓여있었다. 그중 제일 특별한 것은 한가운데 덩그러니 놓여있는 캔버스였다. 무언가 흐릿하게 그려져 있었지만 아직 형태를 가지고 않았다. 한마디로 미완성 작이다.
나도 모르게 알록달록하지만 차분한 공간을 보며 감탄을 하고 있었다. 그때 옆에서 라온이 소리 내어 살짝 웃었다. 나는 라온을 보며 왜 웃느냐는 듯 또 이런 곳은 뭐 하는 곳인지 알려달라며 고개를 기울였다.
“아, 미안. 아까부터 네가 계속 웃길래, 나도 그냥 웃었어”
내가 웃었나? 몰랐다. 한동안 미소를 지어본 적도 없었는데 말이다.
“여긴 내 작업실이라고 생각하면 돼. 어떻게 보면 내 피난소일 수도 있고. 그냥 내가 학교에 오는 이유야.”
라온은 두루뭉술한 말을 꺼내며 나에게 바닥에 뒤둥구는 연필을 쥐어줬다. 이제야 마음이 조금 편해졌다. 나는 적었다.
‘그림 그리는 거 좋아하나 봐. 나도 좋아했었는데’
“좋아했었어? 지금은?”
‘글세, 안 그린 지 오래돼서 모르겠어. 그런데 여기 오니까 다시 그려보고 싶기도 해’
“그래~. 기억할게.”
라온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그것도 나를 빤히 바라보면서.
‘뭐 여기서 할거 있냐?’
괜히 민망해진 나는 아무 말이나 적었다. 종이를 보지도 않고 적어 글씨가 엉망이었다.
“아.. 지금은 할 게 없지. 그냥 반가워서 빨리 오고 싶었어. 하하.. 미안”
말 선택을 잘못한 것 같았다. ‘그냥 가만히 있을걸’이라는 생각이 맴돌았다.
“이제 갈까? 8시 30분이다”
‘벌써?’
아무것도 안 했는데 20분이 금방 지나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