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뿐인 영광..
이 시리즈는 3편에서 4편으로 나누어집니다.
첫 번째 직장은 졸업 후 오랜 취업백수를 할 수는 없어 주얼리 해외영업을 담당하는 곳의 일용직으로 취업을 하였다. 그 회사는 사장이 8명인가 모여 출자금을 십시일반하여 만들어진 주식회사이고, 주얼리를 해외에 유통하는 회사였다. 장점은 회사위치가 종로 3가의 역세권이라 새벽에 영어공부하고 출근이 가능한 것과 금요일 저녁에 조계사에서 모임에 참석할 수 있는 것 밖에는 장점이 없었다. 내가 와서 사장들은 환영회를 해 주었는데 8명의 사장은 각 공장의 인건비가 많이 든다면서 실례로, 직원이 10명도 안되는데 점심식대 500원이 인상되어 남는 게 없다고 하였고 요새 기름값이 없어서 차를 못 끈다고 하였다. 그래도 제조공장을 운영하는 사장님이 그런 이야기하는 게 나는 좀 안 좋아 보였다. 그래도 취업과 관련이 없는 전공을 하여 취업을 했다는 것에 만족을 하면서 일을 하였고 뭔가 회사라기보다는 동네 구멍가게 같다는 생각이 강하였다.
해외 및 국내 전시회가 이 회사의 피크이다. 해외 전시회에서 다양한 바이어가 물건을 사기 때문에 전시회가 대목이었다. 전시회를 준비하는 수출입통관이나 부스정리 등 전시회를 준비하는 업무가 많이 있었고, 재고관리에 신경을 써야 했다. 나는 처음 홍콩 전시회를 참여하였고 만 원짜리 스테이크를 먹으며 갑자기 코에서 뭐가 나와서 봤더니 코피가 나서 급히 화장실로 갔었다. 지혈이 되지 않아 핸드타월을 얼마나 적셨는지 모른다. 원래 가끔 코피가 나기는 하지만 내 인생에서 코피를 이렇게 쏟아본 적이 없었던 것 같다. 전시회에서 인도바이어들은 무조건 가격을 깎으려고 하고 본 얼굴도 계속 봤다. 서버컴퓨터에서 바코드로 주얼리를 계산하였으나 바코드가 안 읽혀 근처 전자상가가 어딘지 물어 20m짜리 인터넷 선을 사 와서 서버 인터넷을 끌어오기도 하고 그래서 해외출장에 대한 환상이 깨져 버렸다.
이 회사는 직원이 2명이었는데 사장들은 현금부자라 갑자기 2세 경영하는 자녀들의 모습도 많이 보였고 그 밑에 직원은 다 영세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동갑내기 본부장이 갑자기 장인 회사에 특수관계인으로 이직을 한다고 해서 퇴사를 했고 새로운 본부장이 왔는데 이 분하고 잘 맞지 않아서 퇴사하게 되었다.
내가 출장 간 사이 환승연애를 당했다.
또한, 당시에 1년 만난 여자친구 분도 계셨는데 그분은 나 홍콩 간 사이에 소개팅을 하여 소개팅남과 마음이 되게 잘 맞았나보다. 내가 박사가려고 모아둔 돈으로 당시 여자친구에게 사준 아이패드에 내가 뭐를 찾아보다가 카톡 알림 창이 와서 팝업창 메시지를 보았다. 그런데 나 출장 간 사이에 이미 연인이 되어 있어서 뭔가 느낌이 이상하다는 느낌을 받았는데 역시 슬픈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나는 당시 여자친구와의 마무리 수순을 밟아야 했었다. 당시 여자친구분은 우리나라에서 알 만한 중견기업에 다녔는데 내가 비전도 없고 그렇게 욕심은 없어서 되게 힘들게 했다는 생각에 나는 이별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당시 여자친구분 아버지께서는 대기업 다니시고 은퇴하셨는데 거기서 자라온 환경과, 차도 없고 먹고 싶은 거 못 먹어보면서 자라온 나와는 인생을 보는 렌즈가 달랐다.
멈추라고 말 못했어 날 밀어내는 널 언젠가부터 계속 작아져가
끝내 지워질것만 같아
조금씩 멀어져가는 널 점점 더 낯설어 지는 널
난 이미 꽤 오래 전부터 오늘이 올 걸 알았어
이별밖에 할 수 있는게 없는 우리가 참 슬프지만
돌아선 네 맘을 돌리기엔 이미 늦은걸 알아서
from <노을> 이별밖에..
사장님 중 한 분은 첫 번째 회식 때 집에 같이 오게 되었는데 그 사장님은 나에게 "남의 것을 뺐어 와야 한다"라고 하였다. 그때는 무슨 이야기인지는 몰랐는데 지금 곱씹어보면 시장의 파이는 정해져 있어 그 파이에서 남의 것을 가져와야 한다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그 사장님은 다혈질이어서 매일 얼굴이 울그락불그락하여 사무실에 올 때마다 나는 긴장하고 있었는데 자녀한테는 굉장히 따듯한 아빠였다. 사장님 아들과 딸은 뉴욕에서 영화공부를 한다고 들었다. 그 사장은 완벽주의 스타일로 밑의 직원에게 함부로 대하면서 사장님 마음에 안들면 직원들과 다툼이 잦았다. 그런데 사장의 아들과 딸은 전시회에 참여하기 위해서 홍콩으로 온다고 해서 남매의 얼굴을 보니 때깔이 너무도 좋았다. 일반화긴 하고 다른 사람의 인생에 관여하는 바 일수도 있는데 아버지는 힘들게 돈 벌고 아들 딸은 편하게 돈을 쓰는 것 같았다.
"아.... 아버지의 역할이 저런 것도 있구나"
사장의 남매자녀는 나처럼 흙내도 별로 없고 기풍 있고 여유 있어 보였다. 전시회 후 공항에서 안 마주칠 줄 알았던 사장님 남매를 보게 되었는데 그 사장은 자신의 아들과 딸에게 홍콩 명품샵에 들러서 선물을 하는 거 보고 "아.... 아버지의 역할이 저런 것도 있구나" 만감이 교차하였다. 사장과 아버지와의 역할에서 아수라같은 괴리보다 아버지가 저렇게 자식에게 다정하게 베푸는 스윗한 점도 있다는 것이 인상적이었고, 10여 년이 지난 지금도 그 장면이 아직도 선명하다. 나도 아들에게 내 일을 열심히 해서 명품 지갑 하나씩 사줘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첫 직장의 커리어는 영세율 계산서하고 구매확인서만 끊어봐서 다른 곳을 갈 수 없어 경력이 쌓이지 않았고 나이도 많았으며 앞으로 중고신입으로라도 커버가 될지 모르는 상황이었다. 나는 인생 선택의 실수가 자주 있었는데 이건 정말 돌이키기 어려운 일이었다. 왜 청년들이 구직활동을 안 하는지 어느 정도 알겠고 몸빵으로 부딪혀 봐도 이거는 상처뿐인 영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