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서도 꼬인 실타래였다.
이 회사는 첫 번째 주얼리회사보다는 직원 수가 많고, 스페인어로 된 게임 플랫폼을 운영하는 유통회사였다.나는 무려 6개월동안 수습기간을 거쳐서 정규직 전환이 되었다. 심지어 이 회사는 내가 취업보조금 받는 게 있어 나라에서 회사에 1년 동안 1,000만 원을 회사에게 주었음에도 나의 월급은 200만 원이 되지 않았다. 원래 소개로 회사를 안 들어가려고 했지만 소개해주신 분은 나에게 "여기서 꼬인 실타래를 잘 풀어라"라고 해주셨고, 그래도 마냥 놀 수만은 없으니 회사에 들어갔다. 이 회사의 장점은 서울이었고 공유 오피스라 역에서 가까웠으며, 맛집이 많아 점심을 다양하게 내 돈주고 먹을 수 있었으며, 내가 다닌 4년 여 동안 회식이 1번 있었다.
내 사수는 초창기 투자할 때의 멤버인데 나 입사하고 얼마 되지 않아 "나 퇴사한다"라고 하여 나를 당황시켰고, 나에게 굉장히 까칠하게 대했다. 여기서 대처하는 방법은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자"였다. 저자세로 머리 짜내서 일이 안되면 실장에게 물어봐서 모르면 욕먹는 시스템으로 말도 안 되는 걸로 욕을 정말 많이 먹었다. 그래도 기분은 나빴지만 버텨야 한다는 생각에 욕을 먹고도 내 자리로 와서 잠시 감정을 추스르고 내가 할 일을 하였다. 대표는 나에게 "너는 회사에 돈을 줘야 한다고 했고 회사 소개해 준 분에게 AS 받아오라"라고 까지 하였다. 그만큼 나는 회사 돌아가는 시스템을 여기서 처음 겪어야 했다.
대표는 내가 맡은 일 이외에 스페인어로 된 만화 사이트의 이미지를 불펌해서 회사 플랫폼 사이트에 올리라고 하였다. 그래서 매일 스페인어로 된 만화사이트를 찾아서 만화의 이미지 파일을 다른 이름으로 저장하기 버튼을 정말 어이없게 적어도 만 번 이상 한 것 같다. 예를 들어 드래곤볼이 60편이면 거기에 200페이지만 되어도 이미지 파일이 만 개가 넘었다. 나는 어이없게도 업무 스킬 빌드업을 위한 야근이 아닌, 이미지 파일을 최대한 받기 위해 명목상 야근을 했다. 또 게임 유저를 사이트에 오래 머물게 하기 위해서 야한 만화를 캡처해서 회사 플랫폼 사이트에 올리게 하였다. 심지어 대표는 저작권이 있는 파일도 서슴없이 올리라고 하여 나는 내적 갈등을 겪으며 다녔다. 첫 번째 회사에서 찍어 눌리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대표는 명절 때도 시간에 맞추어 만화를 올리게 하였다. 만약에 명절 때 업로드가 되지 않았으면 나에게 바로 전화 올 것이 분명하기에 명절 때 애들 재우고 모바일에 임시저장하여 핸드폰으로 만화를 발행하려고 하였지만 오류가 나서 회사에 직접 가서 업로드 한 파일에 이상이 없는지 확인하고 업로드 마치고 한 숨을 돌리며 집으로 왔다.
"대답 못하면 지금 회사로 와야 한다."
그 밑에 이사는 대표의 대학교 동기로 공무원을 하다가 우리 회사에 출자를 하여 우선주와 보통주를 가지고 있는 분으로 게임 사업을 담당하였다. 나와는 일로는 직접적인 연관은 없었지만 갑자기 회사에서 캐나다 우회상장을 한다고 하면서 이 분도 돌변했다. 주말에 애들하고 고불고불한 계곡길을 가는데 갑자기 이사가 나에게 전화와서는 대표 게임의 수익을 배분하는 로직을 알려달라고 한다. 나는 운전 중이라 스피커폰으로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이사가 "너 이거 대답 못하면 당장 회사로 외야 한다"라고 해서 그걸 아내가 듣고는 그 뒤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 게임은 대표하고 이사가 직접 가서 리얼캐시하고 보너스캐시 비율을 자신들이 안분하고 직접 계약까지도 하였는데 그걸 기억 못 하고 나에게 전화 와서 내가 외우고 있지는 않았고 대답이 시원치 않으니 나에게 저렇게 말하는 건 좀 아닌 것 같았다.
이 회사는 초창기에 자본금이 무려 10억 정도 되어 투자자도 유치하였는데 결국에는 스페인어를 사용하는 한국 게임 유통 사업은 레드오션 정도가 아니라 이거는 없는 사업이나 다름이 없었다. 우리나라에서 유명하다는 게임을 스페인어 언어권에 런칭하는 게임마다 번역도 이상하고 플랫폼에서 돈을 쓰는 유저는 많지 않았다. 일은 일대로 하고 돈은 안 되는 참 안타까운 상황이었다. 그래서 외주를 맡겨 모바일 사업도 론칭을 하였는데 외주 사장과 우리 대표의 입장이 너무 달랐고 결국에는 모바일 사업도 론칭해서 다 실패를 했다.
대표는 "이렇게 하는 게 맞는 거지"라고 할 때 나는 그 "맞는 거지"라는 말이 쏙쏙 들렸다. 왜냐하면 그 "맞는 거지"는 무한 이론 중 하나이고 말한 만큼 성과를 내는 법이 없었기 때문이다. 내가 매달 게임 정산을 할 적에 구글 애드센스로 $1도 수익이 안 되는 게임이 허다했고 대표와 이사가 하는 게임이나 사업마다 모두 다 망해서 결국에는 해외 결제사이트에서 출금을 하면 그 돈으로는 9명 월급을 줄 수 있는 상황은 전혀 아니었다.
회사는 자금이 부족하여 전세보증금을 재원으로 월세로 옮기는 상황이었고, 캐나다 상장 준비로 대표는 갑자기 영어를 구사하는 실장 한 명을 데려왔는데 대표와 연봉이 비슷했다. 그 실장은 정치인이었고 나한테 일 던지고 나를 짜내서 상장 준비를 하게 된다. 갑자기 대표는 배팅게임에 매출액을 올린 다음에 이 걸로 우회상장을 목표로 삼았으나, 캐나다 회계사는 배팅의 데이터를 달라고 해서 내가 짜내고 짜내서 배팅의 데이터를 주었고 이사는 데이터 조정을 하여 결국에는 매출액이 과다계상되었고 캐나다 회계사는 이 매출은 인정하지 못한다고 하여 상장은 물 건너갔다. 결국에는 회사는 자본이 -가 되는 자본잠식 상태가 되었고 갑자기 대표는 코인사업에 뛰어든다고 한다. 뭔가 대표는 자기 돈을 잃으니 본 사업이 아닌 "뭐 하나만 터져라" 이런 느낌이 강했고, 나는 이 낌새를 바로 알아차리고 회사를 도망가야겠다는 생각을 하였다.
"내가 할 수 있는 직무가 없다."
우리는 회계처리 기장을 하지도 않았고 기장도 다 외주를 주었기 때문에 나는 회계처리와 마주할 일이 없었다. 그러나 나는 가만히 있을 수는 없어서 회계자격증 시험 접수만 하고 시험 전 날에 공부하고 새벽에 일어나서 인터넷 강의를 들어도 회계는 너무 어려웠다. 내가 일찍 일어나는 걸 애들은 어떻게 알아차렸는지 나 조용히 일어나서 새벽에 인강을 듣고 있으면 두 아들은 새벽에 깨어나서 정신을 혼미하게 해 놓는다. 회사생활도 너무 힘들고 개념은 외워지지 않아서 공부 강도를 조금 강화시켜야 할 것 같아 주말 새벽 5시에 일어나서 공부를 했는데 하루는 너무 힘들었다. 애들 장난감 도서관에 장난감을 빌리러 갔을 때, 내가 애들 다 내려주고 주차를 하다가 벽돌에 박아서 문짝하고 휀다를 찍어 먹었다. 그래서 보통은 자차보험처리를 하면 한 건 정도 하는데 공업사 사장님이 이 건 같은 경우 자차보험처리를 두 건 해야 한다고 한다. 공업사 사장님께서는 "사고는 힘들 때 일어난다"라고 하여 마음을 추스르면서 무리하지 않기로 하고 회계자격증은 다음을 기약해야 했다.
"아버지 장례식이 끝난 다음 날 회사에서는 나오라고 한다."
이 회사는 정부과제가 아니었다면 이미 직원의 인건비를 충당하지 못해 파산했을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대표가 수소문해서 정부과제 두 개를 물어와 인건비 일부를 충당하고 야근 식대를 충당하였으며 나는 정부과제 예산 및 정산을 담당하는 업무를 맡게 되었다. 이사는 아버지 장례식도 온 사람인데, 당장 할 일이 아닌데도 아버지 장례식 끝나자마자 전화와서는 "내일 나와"라고 한다. 그래서 동생하고 아내는 장례휴가를 써서 쉬고 있는데 장남인 나 혼자만 회사 나갔다 왔다. 아버지가 형제하고 있었던 일 중에 우리 가족 누구에게도 말하는 스타일이 아니라 나는 아버지 개인적으로 채권 채무가 없는지 걱정을 많이 하였고 그 자료 찾아내느라고 정말 애를 먹었던 기억이 난다. 회사를 다니면 다닐수록 나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 걱정이 가득했었다.
회사는 갈수록 급여체불이 심각한 상태로 가고 있었다. 나와 친한 직원 중 한 분은 엄마한테 돈을 빌려서 아내에게 돈을 갖다 준다고 할 정도로 눙물 겨운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나는 회사를 다니면서 나의 전공은 회사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고 불현듯 대학교 2학년 때 친했던 고전문학 교수님이 보자고 해서 면담 갔을 때 교수님은 "지금 당장 경영학과로 전과를 하라"라고 권고하여 적지 않게 당황했던 적이 있는데 이 학과로는 일반회사의 취업은 무리였고 굳이 취업을 한다면 경영학과를 복수 전공했어야 하는 아쉬움이 많이 남았다. 내가 억지로 취업을 강행한 탓에 안 볼 꼴도 정말 많이 당했고 나도 입사 초반에는 처음부터 배워야 하니 회사에 도움이 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즉, 중소기업은 한 사람이 여러 역할을 하기 때문에 현장에 바로 투입될 수 있는 즉시 전력감을 원하는 추세가 강하였고 신입보다는 경력직을 우선하는 다소 냉혹한 현실과 마주쳐야 했다. 결국 대표는 나에게 "네가 내 등에 칼 꼽았다"는 이야기를 하며 퇴사할 때 엄청난 회유를 했지만 나는 뒤돌아보지 않고 4년 남짓 업무경력을 쌓지 못하고 겨우 자격증을 따서 이직을 하게 되었다.
이 회사의 대표와 이사도 회사가 잘 되었으면 나에게 안그랬을텐데 회사를 살려보겠다고 어려운 환경에서 고군분투 하였기에 나도 이 분들의 고충을 느낄 수 있었다. 그래도 두 분은 능력이 있으신 분들이니 나보다는 훨씬 잘 살고 있을 것이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