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번째 회사(1) - 아랫사람도 윗사람이었다.

후임 스트레스

by 정훈보

우리 회사는 재무팀과 인사팀이 하나로 되어 있어서 한 사람에게 할당된 일이 많은 편에 속한다. 다른 회사에 면접 가면 면접관이 "회계팀 실무하는 분이 몇 명 있어요?"라고 묻는다. 그럼 "나는 2명이 있다"라고 한다. 그럼 면접관은 "매출 1,000억이 넘는데 요즘 그런 회사도 있어요?"라고 한다. 보통 우리 회사 같은 매출규모에는 회계, 자금, 인사, 총무가 나누어져 있는데 여기는 회계, 자금, 인사를 5명이서 하고 있다.


2023년 초에 팀장님이 윗 분의 소개로 우리 팀에 막내 한 명이 들어온다고 해서 "아... 어떻게 하지?" 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사원님은 회계를 아얘 접해보지도 않은 전공이고 신입이라 회사 적응이 필요한 부분이 있을 것이라 생각을 했고, 안 그래도 일이 많은 부서에 입사를 해도 도움이 될지 미지수였다. 그런데 이 사원 면접 때 팀장님은 사원에게 기초 회계처리에 대한 이해를 언제까지 하려고 하냐? 고 사원에게 물어봤을 때 이 사원은 2개월 안에 이해하겠다고 하였다.


나는 그 말을 믿지는 않았지만 사원은 나와 같이 비전공자라 업무를 익히는 데 시간이 많이 걸려 내 일은 내가 하고 사원님이 알려달라고 하면 내가 받았던 불친절과 편견을 없애고 알려 줄 생각을 했기에, 입사했을 때 나와 동료차장은 사원에게 가능하면 일 끝나고 일찍 퇴근하라고 하였고, 보통 나하고 차장, 사원님, 팀장님 4명이서 회사식당에서 점심밥을 먹게 되는데 보통 팀장님은 넷이 자리를 같이 뜨기를 원해서 팀장님 없이 셋이서 밥을 먹을 때는 밥 빨리 먹으면 혼자 가도 좋다고 하였다.


그런데 내가 이런 말을 하고 내 발등에 내가 찍힌 셈이 되어 버렸다.


우선 사원님은 6시 퇴근시간이 되면 가방을 부스럭거리면서 6시 10분 이내에 퇴근을 한다. 단, 팀장님 안 계시면 퇴근시간인 6시가 되자마자 컴퓨터를 끈다. 뭐 퇴근은 내가 말한 거니 그렇다 손치는데, 다른 직원은 결산 때 남아서 회계처리에 문제가 없는지 확인을 해보고 있는데 그분은 6시 10분 안에 무조건 "팀장님 들어가 보겠습니다" 그런다.



뭐 여기까지는 자기 일 하고 가는 거니 "나는 좋다"라고 생각한다.


팀장은 나와 동료차장에게 사원님 전담마크 헤서 일을 가르치라고 한다. 그래서 내가 알 만한 회계처리를 다 알려주었으나 사원은 그 회계처리의 과정을 궁금해하지도 않을뿐더러 그 계정에 대한 이해조차 하지 않으려고 한다. 사원은 기계적으로 옛날에 했던 거 보면서 회계처리하고 끝내버린다. 계정에 대한 관심이 전혀 없다. 이 사원님은 업무에 전혀 관심이 없고 이제 3년 차 정도 했으면 회계에 대한 이해가 조금은 더 있어야 하는데 말해줄 때는 되게 이해를 잘한 것처럼 추임새가 좋으나 실제로 시켜보면 이해를 전혀 못한 회계처리를 할 때가 많고 자기 마음대로 회계처리해서 결국에는 내가 다시 해야 한 적도 많다. 심지어 피드백을 주면 사원은 내가 회계처리한 걸 지적하기도 하는데 살펴보면 나는 그런 회계처리를 한 적도 없어 기분이 나쁘지만 그래도 꾸역꾸역 알려주기는 한다.



팀장님이 항상 분기 별로 판매비와 관리비 분석을 시켰는데 내가 그건 단순작업이라 사원에게 시켜보았다. 그는 예를 들어 전분기 대비 수선비가 100만 원이 늘었으면 100만 원에 대한 세부내역도 맞추지 않아서 결국에는 내가 100만 원에 대한 세부리스트를 다 적게 되었다. 그는 3년 차인데 부가세만 할 줄 알고 회계는 전혀 빌드업이 되지 않았다. 그는 회계의 기초 중의 기초인 회계의 순환과정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다 가르쳐주기는 역량 및 시간이 부족하니 카톡으로 내가 유용하게 봤던 책과 유튜브 링크를 보내주기까지 해도 그는 쳐다보지도 않는다. 사원님은 공부하기 싫다고 한다. 결산이 끝나고 회계사가 수정분개를 주면 그거만이라도 전표 넣고 재무제표 검증을 해 주면 좋으련만 사원님은 그것조차 하지 못한다. 회계처리와 관련된 업무는 모두 다 내 몫이다.



그래도 나는 이 사원에게 군소리하지 못한다.




그 사원은 백두혈통이기 때문에 괜히 임원진에게 나의 이야기가 잘 못 귀에 들어갔다가는 내가 먼저 지목당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사원은 사원의 어머니와 회사 이야기를 하는데 "나는 괜찮다" 고 했단다. 난 아직은 다행인 것 같다. 나는 이 회사에 5년 차인데 계속하던 일만 하고 새로운 업무를 받지 못해서 경력이 정체되었고 얼마 전 구조조정이 되어서 뱀대리가 나갔기 때문에 더 이상 우리팀은 충원이 없어 난감하다. 팀장은 실무를 떼면 안되는데 이제 실무를 떼었고 나와 같이 일하는 차장도 밑에 보조 없이 둘이 떡메 치듯 실무만 열심히 쳐내고 있다. 뱀대리도 회계 업무를 기존에 하지 않았음에도 내가 시키면 곧 잘해주어서 뱀대리가 아쉽기만 할 때가 많다.




요새 나는 이런 생각까지 한다. "나도 이렇게 회사에 피해를 주어서 벌 받나?"라는 생각을 많이 하면서 자기반성의 시간을 많이 갖는다. 나는 사수에게 가르침이라는 걸 받아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보통 내가 겪은 사수들은 일을 던져주는 게 상례였고 나는 친절하게 일을 받아보지 못했다. 나는 사수의 여유에 항상 무릎을 꿇고 말았다. "내 눈에는 안 보여요", "아무리 검증해도 같은 숫자예요"라고 하면서 울부짖었던 기억이 선명하다.




그리고 팀장님은 자기에게 다가와주는 사람을 좋아하는데 그 사원은 팀장하고 말하는 것을 한 번도 보지 못했고 팀장이 사원에게 물어봐야 겨우 대답하는 그런 스타일이기까지 하다. 팀장님 뿐만 아니라 그 사원이 팀원들하고 잘 어울리는 것도 아니고 그는 항상 혼자 고립되어 있다. 개인적인 성향은 그렇다 치고, 팀장이 나한테 가르쳐 준 지식은 별로 없고 업무적으로도 회계처리가 잘 안 되어도 사원을 너무 편애하는 것 같아 서운하긴 하다.



"느그 아버지 뭐하시노?"




내가 사회성이 좋아서 50대에 일을 하고 있고, 인맥이 꽤 있어서 "이번에 우리 아들이 대학교 졸업하는데 그 회사 자리 없어요?"라고 물어볼 수 있을지 모르겠다. 사원님의 아버지가 열심히 살아서 아들을 우리 회사에 꽂아 주었다는 생각을 하니, 나는 그럴 역량이 되지 않아 슬플 때가 있다. 그래도 우리 아들은 소개로 해서 아버지의 그림자가 있는 곳으로 취업하기 보다는 혼자 힘으로 취업하기를 바랄 뿐이다. 아버지의 그림자가 독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아버지도 나중에 너희가 그럴리는 없겠지만 일자리 알아 봐달라고 하면 채용사이트에서 리스트업해서 재무제표까지는 알아봐 주겠지만 그래도 자기 힘으로 정당하게 취업해서 남에게 피해를 안끼치고 일 하는 게 베스트일 것 같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사원은 우리 팀에서 정말 많은 특혜를 받고 있다는 것이다. 사원은 업무가 미진해도 팀원들이 그에게 뭐라 한 적도 없고, 못해도 다 팀원들이 처리해 주었다. 팀장이 갑자기 번개 하자고 하면 나와 동료차장은 어쩔 수 없이 끌려가다시피 하는데 사원은 무조건 칼퇴이다. 오늘 2025년 연봉협상을 하는데 나는 올해 실수 별로 없이 최대 매출에 기여했음에도 연봉이 3% 올랐고 그 사원님은 7% 올랐다고 말해주어서 회사는 나에게 구조조정 한 마당에 임금을 못 올려줘서 미안하다고 했고 정작 혈맥인 다른 사람은 많이 올려 주는 행태를 보니, 회사는 앞 뒤가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우리회사의 평균 연봉인상률은 3%-4%라고 했는데 그는 평균을 넘어선 다소 높은 인상률을 기록하였다.



나는 내 일만 열심히 하면 될 줄 알았는데 그건 기초 중의 기초이었고 나머지는 욕심을 내어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나는 내 욕심을 버리고 오늘도 집에 가서 졸린 눈을 비비고 인강이나 들어야겠다. 얼마 전까지는 윗 분들이 나를 찍어 눌러가면서 자기 실적 올려서 고생했다고 생각했는데 밑에 눈치도 봐야 해서 앞으로 나의 회사생활은 어떤 터널을 지나고 있는지 잘 모르겠다. 부디 짧은 터널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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