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맹장이 없어졌다 (충수염)
20년 5월에 권고사직으로 실업급여를 받으면서 이 당시 양복을 많이 입었다. 면접 때문에.. 하루에 직무와 관련된 모든 채용공고에 지원하는 기염을 토하고 회사평판사이트를 뒤져가면서 회계분야로 취업을 할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그래도 당시 우후죽순으로 생겨나던 스터디카페에서 회계공부를 하면서 면접을 보러 다녔다.
안 넣고 싶은 회사가 하나 있었는데 이유는 회사 평판사이트에서 평점이 낮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거기는 최대한 보류하고 나머지 회사들 면접을 보러 다녔는데 회사 분위기가 대부분은 "파이팅!" 하는 분위기는 아니었고 다들 누가 누구를 면접 보는지 모를 정도로 힘들어 보였다. 그중 조금 황당한 면접이 하나 있었는데, 위치는 안산이었고 신사옥을 지은 모회사는 지원자 5명에 면접관이 회장님까지 한 5명 정도 되었고, 회장이 마지막에 나한테 영어로 자기소개를 시켜서 나는 너무 당황스러웠다. 나는 안 좋은 발음에 영어로 자기소개까지 하였고 내 영어를 이렇게 많은 사람이 듣는 건 처음이었다. 다른 지원자에게 영어로 자기소개를 시키니 난색을 표해서 나만 좀 이상해졌다. 결국 여기는 연락이 없었다. 계속되는 탈락에 안 넣고 싶은 회사에 지원을 하게 되었다.
거래정지를 비록 당하였으나 나는 내 사수가 중요하다고 생각하였다. 거래정지를 당한 회사는 자상하신 팀장님이 계신 것 같아 그 회사를 합격해 놓고, 양양에서 애들하고 물놀이하고 숙소로 돌아와보니 문자가 와 있었다. 그 회사는 자세히 살펴보니 안 넣고 싶은 회사였다. 그래도 "면접은 보고 결정하자"라고 생각해서 면접을 보러 회사로 갔다. 좀 쉬다 와서 컨디션이 좋은 채로 회사에 면접을 보러 갔는데, 팀장이 "왜 저를 뽑아야 하는지?", "내가 회계를 어디까지 아는지?" 정말 속속들이 물어봐서 나는 아는 것만 대답했고 팀장은 내가 수준미달이라는 생각을 했을 것이다. 면접관의 기세에 눌려서 연봉은 얼마를 받고 싶냐고 그래서 얼마 받지 못하는 연봉에서 "깎아도 된다"라고 해서 면접이 끝나고 면접관이 너무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내가 원하는 원가회계 및 결산업무여서 딱히 방도가 없었다.
결국에 합격했던 회사는 재무제표가 안 좋아서, 안 넣고 싶은 회사에 가게 되었고 황당한 사실은 안넣고 싶은 회사에 연봉도 모른채 입사를 하게 되었다. 전임자가 인수인계를 친절히 해 주는데 무슨 말인지 도저히 모르겠다. 그래도 일단 암기를 하고 나중에 내가 복기해 보는 식으로 해도 정말 머리가 터질 것 같았다. 그 해는 회사가 지정감사대상이라 자율수임보다 회계사가 타이트하게 감사를 한다.
동생의 차를 빌려서 출 퇴근을 했는데 동생이 갑자기 자기의 차를 달라고 해서 어쩔 수 없이 회사에 하루에 2번 오는 버스시간을 맞춰서 출퇴근을 해야 했다. 집에는 차가 1대 있는데, 이 차는 아내가 애들 등원시켜야 해서 나는 하는 수 없이 대중교통을 이용해야 했었다. 어느 날, 버스 시간을 잘 못 맞추어서 2Km 떨어진 곳 까지 걸어가는데 무서운 개가 나한테 달려와서 나는 개를 쫓느라고 전속력으로 뛰어서 개를 따돌린 적도 있다. 회사 앞에는 가로등이 없어, 옆 팀 부장님이 차가 인식하지 못하면 치일 수 있으니 자전거 표식 등을 가방에 달고 다니라고 해서 자전거 표식등을 달고 가로등이 없는 버스정류장에 10분 동안 걸어 갔다. 그래도 경력을 쌓을 수 있다는 생각에 참고 다녔다.
군대에서는 약 2년 동안 안 먹고 안 써서 군생활 동안 총 10만 원도 쓰지 않을 정도로 돈을 모았다. 모은 돈이 180만 원 정도였고, 전역 날 군복 입고 모아둔 돈으로 임플란트를 하였다. 그 임플란트 점검을 받으러 회사에서 연차를 쓰고 치과로 갔다. 치료를 마치고 오는 길에 과장에게 메시지가 온다. 내 위에 과장이 "대리님, 팀장님 그만둔대요"라고 해서 팀장은 2주 뒤인 2020년 12월 31일부로 퇴사한다고 했고 2021년 1월이 되는 그 주에는 주말에 나와서 인수인계를 하겠다고 하였다.
(후임들아 미안하다.. 내가 사정이 있어 많이 못 사줬다. 그게 마음에 걸려 밖에서 내가 직접 알현하여 밥 사주고 축의금도 주고 했다)
결국에는 일이 나고 말았다. 새로운 팀장이 오긴 왔는데 계정과목 회계처리를 전혀 하지 못하는 팀장이 왔고 내 밑에 어떻게 애들 잡을 궁리만 하는 사람이 와 버렸다. 새 팀장은 1월 첫째 주 토요일에 구팀장과 인수인계를 하다가 새 팀장은 구팀장의 심기를 불편하게 했는지 내가 출근했을 때 싸늘한 기운이 감돌아 나는 중간에서 난처한 상황이 되었다. 구팀장은 인수인계를 해 주려고 왔는데 꽤나 힘이 빠졌던 것 같다. 나는 새 팀장이 옥상으로 오라고 하면 일은 접어두고 옥상으로 집합해서 "여기 다 뜯어고쳐야 한다"라고만 말하여서 나는 가뜩이나 업무 스킬이 부족하여 일을 해야 할 절대적인 시간이 필요한데, 시간까지 빼앗으니 죽을 맛이었다. 주 7일을 근무해도 내가 감사를 위해 회계사를 상대하기에는 턱 없이 부족했고, 1월 마지막 주 토요일에는 회사에 나가지 못하였다. 그날 배가 아파서 도저히 나갈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내가 겪어보지 못한 새로운 유형의 배가 아팠다.
아픈 배를 부여잡고 나 혼자 버스를 타고 충수염(맹장)은 외래를 찾아보기 힘들어 종합병원 응급실로 갔다. 그런데 내 몸에 열이 나서 코로나 검사를 해야 한다고 한다. 코로나 검사결과가 음성이 나와야 검사를 시작할 수 있다고 한다. 그래서 나는 다른 응급환자와는 달리 병원 벤치에서 외부와 단절된 채로 소변통으로 생리욕구를 해결했고 그동안 못 잤던 잠을 몰아 잤다. 낮에 갔던 병원에서 밤이 되어 코로나는 음성으로 결과가 나와서 의사는 CT를 찍어보자고 하더니 맹장(충수염)이 의심된다고 한다. 여기서는 맹장(충수염)수술을 하지 않아서 전원을 시켜준다 하여 맹장(충수염)전문병원으로 삐뽀삐뽀를 타고 갔다. 밤늦게 전원 해서 환자복으로 갈아입고 의사는 면역력의 문제이니 좀 쉬면서 일을 하라고 한다. 그날 새벽 1시에 바로 맹장수술에 들어갔고 마취주사 놓으니 바로 기억이 없고 깨어나보니 병실에서 자면 안 된다고 하고 얼마는 깨어 있어야 한다라고 한다.
집에서는 되게 황당해한다. 자기가 맹장(충수염)인 걸 어떻게 발견했으며 병실 내 옆에 맹장(충수염)동지는 맹장이 터져서 왔는데 영상통화로 여자친구가 울고 불고 난리도 아니었다. 이게 보통 정상인데 나는 자기 발로 병원에 가서 수술하고 오는 사람이 어디 있냐고 한다. 나는 별 일 아닐 줄 알았는데 아파서 수술은 처음 해 봐서 되게 황당했으나 수술은 다행히 잘 되어서 수술 끝나고 다음날 회사에 가야 하는 상황이 발생했다. 새로 온 팀장은 내 일을 할 수 없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아내는 자가진단으로 맹장수술한 나를 신기한 사람으로 보고 이걸 아내의 회사동료한테 다 말하고 다녔다. 아내 회사에서는 나의 이런 기인적인 재능을 재미있어하는 눈치다.
그리고 회사는 사옥이전을 앞두고 있었다. 회사는 비용을 아끼기 위해서 포장이사를 하지 않았고 반포장이사로 비용을 아꼈다. 힘 좋은 중앙아시아계 분 한 10명이 오더니 정말 빠르게 짐을 다 빼서 신사옥으로 옮겼다. 타 팀은 팀장이 주도하여 이삿짐을 싸는데, 우리 팀은 각자 이삿짐을 싸고 내가 가장 마지막으로 구사옥에서 뭐 빠진 거 없는지 확인하고 내 PC와 모니터는 내가 손수 싸가지고 가서 신사옥으로 옮겨서 일을 하였다.
게다가 전세가 만기되어 이사를 해야 했다. 2년 전 전세계약할 당시에 집주인은 "우리가 미국에 갈 거니 오래 사셔도 돼요.."라고 했는데 미국생활에 적응 못하고 갑자기 1년 만에 한국에 귀국한다고 우리에게 집을 빼달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난색을 표했던 적이 있었던 기억이 난다. 전세는 임차인이 새로운 집과 이사날짜가 맞아야 가는 건데 이 집주인은 "무조건 자기의 일정에 맞추라"라고 하였고, 그건 "저희도 장담할 수 없다"라고 했더니 집주인은 "어디서 갑질하냐?"라고 해서 시세대로 보증금 주고 전세살이의 서러움을 느낄 수 있었고, 새로운 집이 다행히 공실이어서 집주인 기간에 맞추어 그 집으로 이사를 갈 수 있었다. 당시 전세보증금은 2년 전보다 2억이 넘게 올라서 울며 겨자 먹기로 2억 넘게 대출을 받아서 이사를 해야 했다. 토요일 아침에 애들 데리고 집 알아보러 다니고 오후에는 회사에 가서 새벽에 오는 생활을 두 어달 동안 했다.
지정감사인은 기준서와 회사의 회계처리가 다르다면서 재무제표 "적정"의견을 줄 수 없을뿐더러 전기 재무제표를 재발행하라고 하여 전기, 전전기 감사인한테 전화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으나 지정감사인의 심리실에서 이야기가 잘 되어 감사는 마무리가 되었다. 결국 내 몸빵과 PA(도와주는 회계법인) 덕에 지정감사를 마칠 수 있었다.
이번 글로 회사 이야기를 마치려고 했는데 추가 할 이야기 있음 추가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