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봇을 좋아한다면 한번은 들어보았을 이름이다.
아니, 로봇을 좋아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이 단어를 들어본 적이 있지 않을까?
건담.
OTT라는 개념이 생소하던 게 엊그제 같다.
그러나 이제는 그 수도 여러 가지로 늘어났다.
그런 OTT 플랫폼의 홍수 속에, 넷플릭스에서 건담을 제작했다는 소식을 접했다.
반대편에 있는 적의 시점에서 바라본 건담이라니, 이는 참을 수 없는 흥미로움이었다.
그래서 감상했다.
흔히 로봇 놀음이라 함은 성장하는 소년과 잘 만들어진 로봇의 향연으로 적군을 무찌르는 마치 잘 만들어진 세련된 동화처럼 권선징악의 구조로 되어 있지 않던가?
그리고 매력적인 로봇이 그 콘텐츠를 접한 아이들의 손에 닿도록 유혹하는 것이 아니었던가.
그래서 난 건담의 이야기는 전혀 알지 못했다.
색다른 시점의 작품이라니 흥미가 동했을 뿐이었다.
건담도 그뿐이라 생각했다.
기동전사 건담 : 복수의 레퀴엠(2024)
이 작품은 그렇지 않았다.
이야기의 완성도, 캐릭터의 독자성, 기체의 디자인 등 따지고 보면 품평할 거리가 많겠지만, 그보다 건담이라는 작품이 반전(反戰)이라는 뜻을 품고 있을 줄은 생각지 못했다.
건담 시리즈를 제작한 선라이즈 스튜디오가 밝힌 건담의 기획 방침은 두 가지이다.
1. 전쟁을 다룰 것
2. 소년들의 군상극일 것
그냥 로봇 놀음이 아니었구나
이 이야기는 어떻게 시작이 되었을까?
그렇게 예전 작들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찾아보니 작품이, 건담이, 주인공이 이렇게나 많을 수 없다.
그 이야기들은 모두 여러 인물의 갈등과 정치적, 이념적, 사상적 대립이 극을 이끌어가고 있다.
이 거대한 이야기의 시작은 그 규모부터 궤를 달리한다.
지구 주변의 거대한 인공도시, 스페이스 콜로니를 지구로 떨어뜨린다.
떨어지는 인공도시, 그리고 그것이 떨어진 지구의 도시에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었겠는가?
그로 발생한 피해는 정말 이루 말할 수 없는 참상을 만들어 냈을 것이다.
잔인함, 참혹함, 죽음
전쟁의 진짜 현실이 이야기의 곳곳에 남아 있다.
그리고 극의 주인공들은 항상 슬픔과 부재를 가지고 있다.
사실, 작품을 보면 건담.
작품의 제목인 이 로봇들의 전투 장면이 생각보다 많지 않다.
인물들의 갈등, 고뇌, 이념적 이야기들이 주를 이루고 있다.
우리는 주요 인물들의 발자취를 따라 움직이지만, 그로 인해 발생하는 전쟁의 여파는 전면에 드러나지 않는 그 세상의 여러 인물에게 고통을 주었을 것이다.
정말 많은 이야기가 끝이 없이 이어진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역시 아무로 레이(Amuro Ray), 기념비적인 첫 주인공의 이름이다.
기동전사 건담 : 역습의 샤아(1988)
아무로 레이는 이 작품에서 사라진다.
그 옛날 건담 시리즈의 시작을 알린 스페이스 콜로니 낙하와 같이 거대한 액시즈(우주요새)의 낙하를 건담으로 밀어내다가 결국 지구를 구하고 사라진다.
이를 보며 생각한 나의 생각은 조금은 엉뚱하다.
Amuro Ray
AMOR
아무로 아무로 아무로.. 아모르
여러 번 반복하다 발음이 엉키면 아모르로 읽히기도 하지 않은가?
아무로 레이, 어쩌면 이 이름은 아모르에서 발생한 것은 아닐까?
거대한 고통을 가져올 액시즈의 낙하는 건담이 겉치레가 아니라는 한 인물의 의지로 이겨냈다.
의미 없는 죽음을 불러오는 전쟁의 여파는, 설명할 수 없지만 지금껏 인간이 살아올 수 있었던 이유라 생각되는 사랑으로만 극복할 수 있다.
이런 엉뚱한 상상을 하게 만드는 이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