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번의 탈락, 휴학 후 합격 이야기
ROTC 후보생, 또 지원했습니다!
서른 살이 되며 안 그래도 많던 생각은 더 많아졌다. 30년 인생 중 열심히 했던 때를 곱씹어보며 마음을 다잡고자 무작정 흰 노트 위에 30년의 인생 그래프를 그려나갔다. 그중에서도 높은 점 하나, 내 인생의 터닝 포인트 1년 사이에 ‘ROTC 학군후보생에 불합격하셨습니다.’가 ‘합격하셨습니다.’로 바뀐 문자를 받은 날이었다. 대학교를 졸업하고 학사장교를 지원하는 방법도 있었지만 그 당시 무슨 바람인지 휴학을 해야겠다 다짐했다. 여자의 경우 대학교 2학년 때만 지원 가능했기에 재지원을 하려면 휴학 외에는 방법이 없었다.
사실 30년 넘게 군생활을 하고 전역하신 아버지를 보며 마음 한 켠 군인의 꿈을 가지고 있었으나, 재시험을 준비하며 얼마나 군인이 하고 싶었는지 새삼 깨달았던 순간이었다. 새벽 이른 아침 전투화를 신고 출근하시던 아버지의 뒷모습, 가족과 나라를 지키는 임무를 그 어느 하나 소홀히 하지 않는 모습은 나에게 ‘롤모델’, 과할지도 모르지만 ‘영웅’이 따로 없었다. 그렇기에 아버지가 걸어오신 그 길을 나 역시도 걸어가고 싶었다.
재시험을 보는 면접 날, 휴학한다고 뜬금없는 이야기를 한 나를 묵묵히 믿고 기다려준 부모님이 생각나 면접장을 나오자마자 화장실에서 혼자 얼마나 펑펑 울었는지 모른다. 미안함, 감사함, 후련함과 함께.
못잊을 추억 하나를 더 이야기하자면, 펑펑 울고 나오는 길에 모르는 분과 마주쳤다. 그저 나에게 “그렇게 간절히 원하고 노력하면, 언제든 꼭 될거야.” 그 따뜻한 말 한마디 남기고 사라졌지만 이름 모를 감사한 그 분에게 이 글을 통해서라도 감사함을 전하고 싶다.
그 당시 나는 대학에서 불어를 전공하고 있었기에 프랑스로 어학연수를 가는 친구들을 보며 나 역시 프랑스 또는 해외연수 지원 면접을 가려고 준비하던 때였다. 그럼에도 재지원을 한 이유는 막상 불합격 문자를 받고 나니 마음 한쪽에 꿈꿔왔던 일이었기에 더욱 욕심이 생겼던 것 같다. 꼭 붙고 말자는.. 지금 와서도 왜 그랬을까 하는 때가 가끔 물론 있지만 인생에 있어서 포기하지 않으면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던 때이기에 인생에 있어 ‘터닝포인트’였다. 그렇게 휴학을 하고 1년 간 매일 낮이고 밤이고 문제집을 풀고, 거울을 보며 면접 연습을 하고, 조금만 뛰어도 숨찬 내 체력의 한계를 극복하고자 동네 초등학교에서 무작정 달렸다. 그 결과, 1년 뒤 ‘불합격’이 아닌 ‘합격’ 문자를 받고 간절했던 나의 첫 번째 꿈을 이루었다.
정말 합격하나만을 바라보고 무작정 휴학했던 나 자신이 지금 와서 생각해도 가끔 놀랍다. 결과를 장담할 수 없음에도 포기하지 않았던 나 자신에게. 그리고 그때 깨달았다. 진짜 간절하고 포기하지 않고 최선을 다하면 그 꿈에 닿을 수 있다는 것을
물론 이제는 학생이 아닌 직장인으로 다른 업무를 하고 있지만, 한동안 많이 흔들렸음에도 휴학했던 그날처럼 포기하지 않고 30살의 멋진 삶을 살기 위해 오늘도 꼬부랑꼬부랑 인생 그래프의 높은 꼭짓점을 보며 다시 마음을 다잡아 본다.
내가 그린 꼬부랑꼬부랑 인생 그래프처럼 누구나 오르락내리락하는 순간들을 경험하고, 힘들고 지칠 때도 있겠지만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묵묵히 잘 버텨준 자신에게 오늘 하루 고생했다며 토닥토닥 해주는 따뜻한 밤이 되었으면 좋겠다. 무엇보다 면접이 끝난 후 펑펑 울고 나온 날 마주친 이름 모를 따뜻한 분이나에게 그러했듯이, 이 글을 읽는 분에게 말해주고 싶다. “오늘 하루도 고생했어요. 이미 충분히 지금까지 잘해왔고, 잘하고 있어요. 토닥토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