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더 라이더, 경계 위를 달리는 삶

[제1장: 낯선 땅에 딥다이브, 나만의 궤적을 그리다]

by 중앙아시아 경계인


1-5. 침묵의 서바이벌 : 택시 안에서 미아가 되지 않는 법


사회복지 분야의 취업에서 영어 점수보다 현장 경험이 더 중요하게 여겨지던 시절에 대학을 졸업한 내게, 타지키스탄은 거대한 ‘언어의 벽’ 그 자체였다. 사무실 안에서는 영어를 할 줄 아는 소수의 직원이 나의 입과 귀가 되어 주었지만, 사무실 문을 나서는 순간 나는 무력한 이방인이 되었다. 타지키스탄은 러시아어와 타직어를 혼용하는 곳인데, 현지어 공부를 전혀 하지 않은 채 파견된 내게 거리의 모든 소음은 해독 불가능한 암호 같았다.


당시 두샨베에는 구글 맵도, 카카오 택시 같은 편리한 앱도 없었다. 퇴근 후 길을 나서는 것은 매번 목숨을 건(?) 탐험이었다. 생존을 위해 나는 가장 먼저 ‘길거리 생존 러시아어’를 외우기 시작했다. 숫자를 읽는 법, 시장에서 물건값을 흥정하는 법, 그리고 무엇보다 절실했던 ‘택시 타기용’ 언어들이었다. 내려야 할 타이밍을 놓치지 않기 위해 주요 거점과 건물의 이름을 통째로 외워야만 했다.


한 번은 택시를 타고 시내로 나가는데, 내려야 할 지점이 다가오자 심장이 뛰기 시작했다. 어제 분명히 외웠던 “여기 내려주세요(Ostanovite zdes)”라는 말이 도무지 입안에서만 맴돌고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택시는 야속하게 목적지를 지나 엉뚱한 방향으로 직진했고, 나는 뒤늦게 터져 나오려는 말을 삼키며 땀만 흘렸다. 결국 한참을 더 가서야 기사에게 손짓 발짓을 하며 차를 세울 수 있었다. 그날 이후 나의 단어장 1순위에는 ‘직진(Pryamo)’, ‘좌회전(Nalevo)’, ‘우회전(Napravo)’ 같은 방향 지시어들이 생존을 위해 문신처럼 박혔다.


언어의 장벽은 사무실에서도 고역이었다. 통역을 전담하던 직원이 자리를 비우기라도 하면, 나는 마치 고장 난 인형처럼 바디랭기지를 남발했다. 급한 마음에 지부장님께 달려가 통역을 부탁하는 ‘지부장님 찬스’도 하루 이틀이지, 스스로 서지 못하는 활동가의 비애는 늘 퇴근길의 어깨를 무겁게 했다. 15년이 지난 지금은 구글 번역기나 파파고 같은 음성 번역기가 세상 모든 말을 해결해 주는 시대가 되었지만, 그 시절의 내게 언어는 정복해야 할 거친 야생과 같았다.


그러던 어느 날, 언어라는 도구 없이도 마음이 먼저 닿을 수 있다는 것을 깨닫는 사건이 있었다. 어느 추운 겨울날, 신규 프로젝트 조사를 위해 두샨베 외곽의 한 산골 마을을 방문했다. 통역 직원이 마을 촌장님과 복잡한 서류를 검토하는 사이, 나는 마을 입구에서 혼자 쭈그리고 앉아 낡은 펌프를 고치고 있던 한 노인 곁에 머물게 되었다.


노인의 손은 거칠었고, 펌프의 부품은 너무 낡아 헛돌고 있었다. 나는 배운 적도 없는 러시아어 대신, 말없이 다가가 노인이 쥐고 있던 몽키스패너의 반대편을 함께 맞잡았다. 노인은 움찔하며 나를 쳐다보았지만, 내가 미소를 지으며 힘을 보태자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는 30분 동안 한마디의 대화도 나누지 않았다. 그저 쇳덩이가 부딪히는 소리와 거친 숨소리만 오갔을 뿐이다. 마침내 펌프에서 맑은 물이 콸콸 쏟아져 나왔을 때, 노인은 내 어깨바닥을 툭툭 치더니 흙 묻은 손으로 굳은살이 박힌 내 손을 꽉 쥐었다.


“라흐마트(고맙네).”


타지크어로 건넨 그 짧은 한마디에 담긴 진심은 그 어떤 유창한 러시아어 문장보다 명확하게 내 심장에 꽂혔다. 언어는 소통의 수단일 뿐, 목적은 결국 ‘닿는 것’임을 깨달은 순간이었다. 기계가 대신해 주지 못하는 진심의 온도는 결국 직접 부딪히는 시간 속에서만 만들어지는 것임을, 벙어리 같았던 그 시절의 나는 온몸으로 배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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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지키스탄 시골에서 만난 할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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