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장: 낯선 땅에 딥다이브, 나만의 궤적을 그리다]
한국에서의 식사는 '수단'에 가까웠다. 어머니가 차려주신 아침을 기계적으로 밀어 넣고, 점심과 저녁은 사무실 근처 식당에서 때우듯 해결했다. 하지만 퇴근 후의 시간이 선물처럼, 혹은 무게감 있게 주어지는 타지키스탄에서의 삶은 나를 주방이라는 낯선 공간으로 불러들였다. 알고리즘이 추천하는 유튜브 레시피도 없던 시절, 교민에게 빌린 낡은 요리책 한 권이 나의 유일한 스승이었다. 서툰 솜씨로 무언가를 만들고 누군가를 초대해 나누는 시간. 나는 그곳에서 '요리'라는 행위가 단순한 노동이 아니라, 자신을 대접하고 타인과 연결되는 가장 원초적인 축제임을 배웠다.
물론 그 축제의 대가는 때로 혹독했다. 한 번은 전통시장에서 사 온 소뼈를 솥에 넣고 고다가 그만 깊은 잠에 빠졌다. 매캐한 연기에 눈을 떴을 땐 이미 냄비는 형체를 알아볼 수 없게 타버린 후였다. 불이 나지 않은 게 천행이었지만, 뼈가 타면서 내뿜은 그 기괴하고 끔찍한 냄새는 일주일 넘게 집안 모든 벽지에 문신처럼 박혀 나를 괴롭혔다. 실수조차 온몸으로 겪어내야 했던, 리얼 로컬 라이프의 매운맛이었다.
혼자 사는 이방인에게 가장 만만한 식재료는 계란이었다. 너무 감사하게도 나는 계란을 그렇게 많이 먹었지만 질리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교민 사회에 기묘한 괴담이 돌았다. “중국산 가짜 계란이 유통되고 있다”는 것. 삶은 노른자가 탱탱볼처럼 튀어 오르면 가짜라는 구별법까지 전수받았다. 설마 하는 마음으로 테스트해 본 우리 집 계란 노른자는, 야속하게도 바닥을 치고 경쾌하게 튀어 올랐다. ‘당했다!’는 허탈함 뒤로 뼈저린 교훈이 찾아왔다. 내 몸으로 들어가는 재료에는 결코 가격과 타협하지 말 것. 그것은 낯선 땅이 내게 건넨 가장 값비싼 인생 수업이었다. 그 이후로 나는 시장에서는 가능하면 가장 비싼 식재료를 구입하는 습관이 생겨 버렸다.
그럼에도 타지키스탄의 시장은 내게 압도적인 ‘과일 호사’를 허락했다. 수박, 복숭아, 체리, 살구…. 한국에서는 종이컵 한 잔 분량에도 망설여지던 체리를 이곳에선 단돈 2~3천 원에 1kg이나 품에 안을 수 있었다. 미안할 정도로 저렴한 물가 덕분에 내 식탁은 늘 달콤한 계절의 향기로 가득했다. 투박하게 잘라낸 소고기 1kg이 5천 원 남짓하던 시절, 고기를 다듬는 법을 익히자 아침부터 저녁까지 소고기를 즐기는 ‘가성비 만수르’의 삶이 시작되었다.
가장 짜릿한 미식은 단연 돼지고기였다. 무슬림 국가에서 금기시되는 돼지고기를 구하는 과정은 흡사 007 작전 같았다. 큰 시장 구석, 단 한 곳뿐인 은밀한 가게. 주인은 한국인이나 중국인 손님이 나타나면 암호를 주고받듯 눈빛을 교환한 뒤, 깊숙이 감춰 둔 고기를 꺼내어 팔았다. 금단의 열매를 취하듯 검은 봉지를 소중히 품에 안고 돌아오던 퇴근길. 그 시절 나의 식탁은 투박하고 거칠었지만, 직접 고르고 다듬고 나눈 진심 덕분에 그 어떤 미쉐린 레스토랑보다 풍요롭고 단단했다.
<매일 같이 즐겨 먹었던 최애 중앙아시아 음식 플로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