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더 라이더, 경계 위를 달리는 삶

[제1장: 낯선 땅에 딥다이브, 나만의 궤적을 그리다]

by 중앙아시아 경계인

1-7. 흙탕물 샤워와 30분의 인내 : 인프라라는 이름의 사치


해외 파견을 떠나기 전, 나는 나름대로 많은 것을 내려놓았다고 자부했다. 그 힘든 군대로 2년 2개월을 다녀왔으니, ‘고생하러 가는 길’이라는 각오도 충분히 다졌다. 하지만 머리로 이해하는 가난과 몸으로 부딪히는 결핍은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였다. 타지키스탄의 수도 두샨베는 그나마 형편이 나은 곳이었음에도, 30대 초반의 내가 마주한 현실은 낮춰 잡았던 기대치의 하한선보다 훨씬 아래에 있었다.


가장 먼저 맞닥뜨린 장벽은 전기였다. 수력 발전에 절대적으로 의존하는 이 나라는 겨울만 되면 거대한 암흑에 잠겼다. 예고 없이 찾아오는 정전은 일상의 배경음악 같았다. 나중에야 안 사실이지만, 수도는 그나마 매일 전기라도 공급되는 ‘특권 지역’이었다. 한 나라의 수도에서조차 빛이 허락되지 않는 밤을 보내며, 나는 어둠 속에서 문명의 편리함이 얼마나 깨지기 쉬운 유리 같은 것인지 깨달았다. 스위치 하나로 세상을 밝히는 것이 당연한 권리가 아닌 ‘사치’일 수 있음을 처음으로 실감한 순간이었다.


물 문제 역시 역설적이었다. 타지키스탄은 수자원이 풍부한 나라였지만, 노후한 인프라는 그 맑은 물을 가정까지 깨끗하게 실어 나를 힘이 없었다. 한국의 강력한 수압은 그저 먼 나라의 전설이었다. 졸졸 흐르는 물을 바가지에 받아 온몸에 끼얹으며 샤워를 하던 중, 갑자기 물이 끊겨 비누기 가득한 얼굴로 멍하니 서 있던 적도 종종 있었다. 비라도 내리는 날이면 수도꼭지에선 어김없이 짙은 황토색 흙탕물이 쏟아졌다. 수돗물에 섞인 강한 석회질은 아끼던 흰 셔츠를 정체 모를 탁한 색으로 물들여 놓곤 했다.


훗날 결혼 후 살았던 타지키스탄 두샨베 시내의 구소련 시절에 건설한 40년도 더 넘은 낡은 아파트는 또 다른 인내의 시험대였다. 가스 대신 설치된 전기스토브는 전력이 낮아 물 한 주전자를 끓이는 데만 무려 30분이 걸렸다. 배고픈 저녁, 냄비 앞에서 30분을 견디는 일은 고행에 가까웠다. 전기 히터 하나에 의지해 혹한을 견디며, 나는 전기장판이 단순한 침구가 아니라 생존을 위한 ‘필수 장비’ 임을 온몸으로 배웠다. 그래도 추운 날에는 빈 플라스틱 병에 뜨거운 물을 넣고 수건을 돌돌 말아서 이불 속에 넣고 잠을 자기도 했다.


인프라가 갖춰지지 않은 곳에서의 삶은 이처럼 일상의 모든 행위에 엄청난 에너지를 요구한다. 물을 마시고, 씻고, 몸을 데우는 당연한 권리를 위해 기꺼이 불편과 싸워야 했던 시간들. 그 열악함의 한복판에 서서야 나는 비로소 현지인들의 고단한 일상을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읽어내기 시작했다. 인프라라는 거대한 시스템의 부재가 개인의 삶을 어떻게 위축시키는지, 그리고 그 결핍 속에서도 꿋꿋이 삶을 이어가는 이들의 생명력이 얼마나 경이로운 것인지를 말이다.



image.png <프로젝트로 건설한 산악지역의 소수력 발전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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