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장: 낯선 땅에 딥다이브, 나만의 궤적을 그리다
두샨베의 일상이 서서히 몸에 익을 무렵, 나는 자연스럽게 100명 남짓한 한인 공동체의 일원이 되었다. 한국이었다면 스쳐 지나갔을 열 살 전후 차이의 한인 선후배들이 그곳에선 '이방인'이라는 이름 아래 둘도 없는 친구가 되었다. 교민 숫자가 적어서 내 또래의 사람은 없었기에 가능했다. 도시 전체를 통틀어 유일하게 세련된 커피를 팔던 ‘세가프레도’ 카페는 우리의 아지트였다. 우리는 그 좁은 공간에 모여 각자의 서툰 현지 생활을 다독이며, 지도 밖에서 살아가는 법을 공유하곤 했다.
중앙아시아의 여름은 가혹할 만큼 선명했다. 한 여름 온도는 40도를 가볍게 넘어섰고, 대기는 바싹 마른 종이처럼 타들어 갔다. 하지만 나를 정말 당황하게 만든 건 찌는듯한 더위가 아니라 그들의 ‘온도 철학’이었다. 타지키스탄 사람들에게 차가운 음료는 몸의 기운을 해치는 불길한 존재였다. 열이 많은 체질인 내게 에어컨 없는 삶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지만, 현지인 기사와 함께하는 장거리 출장은 늘 보이지 않는 ‘온도 전쟁터’였다.
낡은 포터 트럭을 타고 네 시간을 달려야 하는 비포장도로 위. 내가 슬쩍 에어컨 버튼을 누르면, 어느샌가 기사 아저씨의 투박한 손이 다가와 조용히 버튼을 눌러 꺼버렸다. 켜고 끄기를 반복하는 기묘한 신경전 끝에 결국 항복한 건 나였다. 찬바람이 정말 내 건강을 해칠까 봐 진심으로 걱정하는 그의 눈빛을 외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땀을 뻘뻘 흘리며 도착한 회의 테이블 위에는 어김없이 김이 모락모락 나는 뜨거운 녹차가 놓여 있었다. 16년이 지난 지금도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고집하는 나로서는 여전히 넘기 힘든, 그들만의 치열한 ‘이열치열’의 세계였다.
도시의 열기와 쌓여가는 일에 지칠 때면 나는 두샨베의 하얏트 호텔로 도망치듯 향했다. 소박한 도시 풍경 속에 우뚝 솟은 5성급 호텔은 내게 사막의 오아시스였다. 한국에서는 쉽게 누리지 못했을 고급 호텔의 런치는, 척박한 현장에서 고군분투하는 청년 활동가인 나 자신에게 건네는 우아하고도 저렴한 위로였다.
여름의 정점, 우리는 파미르 고원의 만년설이 녹아 흐르는 시외의 야외 수영장으로 향하곤 했다. 시설은 낡고 투박했지만, 뼛속까지 시린 그 물의 감각은 인프라의 결핍을 잊게 하기에 충분했다. 뜨거운 찻잔을 내려놓고 그 차가운 생명력 속에 몸을 던질 때, 나는 비로소 깨달았다. 이곳의 평화는 에어컨의 인공적인 바람이 아니라, 뜨거운 차를 견뎌낸 뒤 마주하는 만년설의 차가움처럼 극단적인 환경을 온몸으로 받아들일 때 찾아온다는 것을. 그것은 내가 중앙아시아에서 발견한 가장 생생한 생존의 희열이었다.
<작물에게 물을 공급해 주는 농수로 지원 프로젝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