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각장애가 있으신 어머니를 대신하여 할머니가 나를 양육하던 시절 이야기다. 머리는 바가지를 둘러엎어 자른 듯하고, 얼굴은 햇볕에 그을려 새카만 한 나는, 고집스러운 까만 눈으로 할머니를 올려보며 한참을 실랑이했다.
아직, 8월이 한창인데, 할머니는 오늘부터 가을이라고 하셨기 때문이었다.
어린 내가 생각할 때는 3, 4, 5월이 봄이고, 6, 7, 8월이 여름이었다. 그리고 9, 10, 11월이 가을, 12월에서 이듬해 2월까지는 겨울이었다. 그런데 아직 한참 더운데 할머니는 오늘부터 가을이라고 하시니, 어린 내가 생각하기에 도저히 이치에 맞지 않았다.
"할머니!! 덥잖아. 그러니 아직 여름이야. 아직 8월이니까 여름인데!!"라고 고집스레 말하는 내게 할머니는 다정하게 말씀하셨다.
"오늘부터 '입추'다. 가을 시작이란다. 크면 다 알게 된다. 씨앗 뿌리고 자라고 거두는 것 보면 음력이 딱 맞아."
그때는 할머니 말씀이 전혀 이해되지 않았다. 바깥은 여전히 뜨겁고, 풀벌레는 시끄럽게 울어댔으며, 길에서는 더운 기운이 아지랑이가 되어 피어올랐다. 어떻게 이런 날이 가을 시작일 수 있단 말인가?
며칠 전 입추가 지났다. 한낮 날씨는 여전히 33도를 가리킨다. 그런데 이상하다. 아침저녁으로 코가 간질간질하다. 콧물과 함께 재채기도 한 번씩 한다. 눈이 가려우니 아무래도 계절성 알레르기 증세로 보인다. 밤에 선풍기를 켜고 자면 새벽에 춥다 싶어 한 번씩 잠이 깬다.
우리 할머니가 말씀하시던 "다 크면 알게 된다"라는 그때가 되었나 보다. 할머니 곁에 있던 바가지 머리 일곱 살 고집쟁이는 어느새 다 커서, 우리 할머니가 말하던 "음력이 딱 맞다"라고 나 역시 생각하며 8월 한가운데서 가을을 느낀다.
계절은 달력이나 온도계가 아닌, 우리 몸이 먼저 안다. 할머니 지혜는 오랜 세월을 거쳐 자연과 함께 살아온 경험에서 나왔고, 어린 내가 고집부리며 부정했던 그 진리를 이제야 온몸으로 이해하게 되었다.
여름 끝자락에서 느끼는 가을 전령 - 코끝 간지러움, 새벽 서늘함, 바람결 미묘한 변화. 이 모두가 할머니가 말씀하신 입추 의미였다. 이제 나도 할머니처럼, 계절 변화를 온몸으로 읽어낼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나도 아이들에게 이렇게 이야기할 테지?
"오늘부터 가을이야. 크면 다 알게 될 거야. “
우리 할머니가 보고픈 오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