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숍에 사람이 가득하여 빈 자리를 찾기 어려웠다. 모두 무더위를 피해 이곳으로 모였나 보다. 화장실로 가는 길목에 남은 자리를 겨우 잡았다.
'화장실에 번호키가 설치되어 있으니 여기 화장실은 그나마 깨끗하겠네.'
화장실 비밀번호 팻말이 붙은 벽 옆에 앉아 주문한 커피를 기다렸다.
그런데 어떤 여성이 내 자리 근처를 서성인다. 화장실 비밀번호 때문인 듯한데 몇 번을 왔다 갔다 하면서도 막상 안으로 들어가지 못한다. 자연스레 이 여성을 관찰하게 되었다.
"9, 9, 6... 뭐였더라. 아~ 다시, 9969 아니, 아니 996399..."
혼자서 중얼거리며 계속 왔다리 갔다리 한다. 이 모습을 보고 있으니 피식 웃게 된다.
'아니, 앞뒤 99에 가운데 63인데 뭐가 어렵다고 저렇게까지 열심히 외우는 거지?'
여성은 다시 와서 번호 외우고 가는 행동을 거듭하더니 갑자기 핸드폰을 꺼내 든다. 그리고 의기양양 돌아선다. 아무래도 저분은 조금 특별한가? 생각했다.
잠시 후 카페 한쪽이 소란스러웠다.
"혜주씨! 화장실 다녀왔어요?"
"응! 나 혼자 다 했어!"
그 여자분이 화장실 다녀왔다고 이야기하는데, 화장실 한번 다녀온 일이 뭐라고 칭찬하고 손뼉을 치며 시끌벅적하다.
오늘은 신나는 월급날이다. 월급을 받으니 기분이 좋았다. 언니랑 새 옷을 사려고 한참을 걸었더니 다리도 아프고 시원한 커피가 먹고 싶어졌다. 사람이 많은 커피숍에 에어컨 바람이 시원했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아이스 라테는 오늘따라 더 맛있다.
갑자기 화장실이 가고 싶어져서 화장실을 찾아갔다. 화장실은 밖에 있었다. 문이 잠겨서 똑똑똑 해도 아무도 안 나왔다.
"저기요. 화장실 문이 잠겨 있어요. 열어주세요."
직원에게 말했다.
"저기 비번 있어요."
밀려드는 주문으로 바쁜 커피숍 직원은 대충 손으로 벽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곳에는 화장실 그림과 숫자가 있었다.
어떡하지? 숫자가 너무 많다.
"996399 누르고 별표. 다시 996... 아! 뭐였더라."
숫자가 너무 많아서 번호키를 누르다가 잊어버렸다. 다시 벽으로 돌아와 번호를 보고 또 가서 번호키를 눌렀다. 몇 번을 왔다 갔다 했지만 화장실 문은 열리지 않고 삐삐삐하는 소리만 났다.
점점 급해지는 소변을 참으며 번호를 보러 다시 갔을 때 갑자기 좋은 생각이 났다.
"맞다! 사진!"
이번에는 핸드폰으로 비밀번호를 촬영했다. 화장실 문 앞에서 사진을 보고 하나씩 하나씩 번호를 눌렀다.
"996399 별표."
따르릉 소리와 함께 문을 열 수 있었다.
"아~ 쉬할뻔했네. 다행이다."
카톡! 시누이 혜주 씨가 "돈", "옷" 이렇게 한 글자 메시지를 내게 보내 왔다. 월급 탔으니 옷을 사러 가자는 뜻이다. 혜주 씨는 지적장애가 있다. 말은 잘 하는 편인데 읽기나 쓰기는 어려워한다. 그래도 꾸준히 연습해서 스마트폰으로 서툴게라도 표현하니 참으로 대견하다.
쇼핑을 마치고 카페에 들러 시원한 바람에 땀을 식히며 대화를 나누었다. 그러다 문득 혜주씨가 화장실에 다녀오겠다고 말하고 자리를 떴다. 혜주씨는 평소 혼자서 화장실에 잘 다녀오기 때문에 마음 편히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혜주씨가 다른 날과는 조금 다른 모습을 보였다. 마치 시계추처럼 화장실에 갔다가, 돌아왔다가, 화장실에 갔다가, 돌아오기를 반복했다.
"혜주 씨, 무슨 일 있어요?"
"언니, 나 바지에 쉬할 뻔했어."
"화장실을 못 찾았으면 자리로 돌아오지. 그럼 도와줬을 텐데."
"여자·남자 그림 있으니까 화장실은 금방 찾았지. 그런데 문이 잠겨져 있었어. 다른 사람 지나가면 그때 들어가려 했는데 사람은 안 오고 나는 기다렸어. 그래서 저기 저 언니한테 비밀번호 물어봤는데, 저 언니가 화장실 모양 그림에 있다고 했지. 가서 봤는데 숫자가 너무 많았어."
"아이고, 그럼 혜주씨 힘들었겠네요. 숫자 많은데 어떻게 했어요?"
"내가 했는데 자꾸 틀려서 또 하고 또 하고 그러다가 사진이 생각났어. 사진 찍어서 번호 보고 눌러서 문 열고 화장실 다녀왔어. 내가 진짜 잘했지?"
"우와! 혜주씨 정말 잘했네요!"
지적장애인은 4자리 비밀번호까지는 외우거나 보고 누를 수 있지만, 6~7자리 번호는 어려워한다. 비장애인에게는 너무 쉬운 6자리 비밀번호가 지적장애인에게는 넘기 힘든 사회 장벽이 될 수도 있다. 순식간에 위축되고 자신감을 잃을 수 있다.
그런데 혜주씨는 스스로 사진을 찍어서 사회 불편을 훌쩍 넘어섰다. 정말 대단하다. 앞으로도 혜주씨가 용기를 내면 좋겠다는 심정으로 더욱 크게 환호하고 박수치며 응원한다.
"혜주씨 최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