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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의 희망은 가족의 힘

안태환의 의학 오디세이



고향의 오랜 친구가 큰 병에 직면했다. 투병도 길어지고 있다. 어려운 경제 형편에 공부는 늦춰졌고 직업적 안정을 찾기까지 한참이 걸렸다. 사십 후반에서야 뒤늦은 결혼을 했던 친구는 늦둥이 아들과 딸을 낳았다. 동년배들이 자녀를 대학에 보내는 시기에 늦어도 한참 늦었다. 더디었지만 누구보다 행복해야 할 친구의 가정은 외벌이 가장의 와병에 속절없이 무너지고 있다. 가족의 위기에 봉착한 것이다.


의료 사회복지 모델인 ‘가족위기개입’은 가족체계가 위기 이전 상태로 회복되도록 도와주는 적극적 치료 기법이다. 선진국에 진입했다는 한국은 여태 ‘가족위기치료’에 대한 정부 지원은 인색하다. 앞만 보고 달려온 생존의 산업사회에서 여력이 없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독자 생존으로 치닫고 있는 시대는 가족공동체를 위한 정부의 역할을 절박하게 요구하고 있다. 한국 사회 곳곳에서 가족공동체의 위기가 연일 발생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규모와 형태도 날로 커지며 연일 언론에 오르내리고 있다.





주변을 돌아보면 가족 중 큰 병마에 직면하여 가족위기로 확대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내 친구처럼 특히 어린 자녀들을 부양하는 가정의 경우, 부모 중 한쪽이 큰 병에 걸리면 예외 없이 나타나는 현상이다. 때로는 연로한 부모의 간병을 두고 나타나기도 한다. 집안에 환자가 한 명 생겨도 가족 간 불화는 흔한 일이 된다.


살다 보면 부지불식간에 ‘간병하는 삶’을 살아야 하는 상황에 직면한다. 가족의 급작스러운 병환이 생기면 간병의 무게는 누구도 피해가기 쉽지 않다. 가족 구성원 저마다의 형편이 다른지라 간병할 수 없는 경우에는 가족 간 책임의 할당을 따지고 든다. 그 속 사정에는 가족의 도리를 다하지 못한다는 강제된 죄책감이 자리한다. 죄책감은 생산적일 수도, 비생산적일 수도, 있다. 생산적인 경우 성찰과 배려를 잉태하지만, 비생산적인 경우는 완전히 반대의 결과를 낳는다. 규정된 감정은 분열로 귀결된다. 자생적 공감이 아니기 때문이다.


고통의 크기는 가족일지언정 아픈 환자 본인을 넘어설 순 없다. 살가운 가족이라도 통증의 고난 앞에 환자의 고통은 온전하게 헤아리기 힘들다. 그저 옆에서 애절할 뿐이다. 병마와 싸우기 위해서는 세상 누구보다 단결된 가족의 힘이 절실하다. 예측 없이 찾아온 고통의 순간에도 함께하는 가족이 있다면 환자는 버틸 힘을 갖는다. 의료현장에서 늘 체감하는 진실이다. 그러나 병마 앞에 간병의 책임을 떠넘기는 가족의 분열은 환자의 병을 악화시킨다. 환자는 통증과 불안 속에 지쳐간다.


현재의 의료시스템 속에서는 환자에만 국한된 치료에 천착할 수밖에 없다. 치료에 있어 결코 소홀히 할 수 없는 환자 가족의 상태와 복잡한 상황을 직시하고 그에 따른 치료법을 조언할 여유가 없다. 병마에 처한 환자와의 소통은 치료에 절대가치이다. 의사로서의 환자에 대한 조언은 한계가 있다. 의사전달 수단이 주변의 가족들과 병행돼야 만이 환자와의 공감은 가능하다. 환자 가족과의 소통은 그래서 매우 유효한 접근방식이다. 환자의 정서적 안정에 효과적이다. 그러나 우리의 의료현실은 환자 가족까지 들여다볼 여유가 없다.


모든 환자의 마음에는 양가 감정이 있다. 가족에게 짐이 되고 싶어 하지 않는 마음과 가족과 늘 함께 있고 싶어 하는 이중적 마음 상태가 그렇다. 환자들의 상황은 각자 다르고 직면한 병도 다르지만 크게 보면 유사한 부분이 있다. 저마다 치열하고 부단하게 주어진 삶을 살아왔지만 부지불식간에 병마에 맞닥뜨렸고 평온했던 일상으로의 복귀를 간절하게 염원한다. 그러나 긴 병에 효자 없다. 병에 따라 길고 긴 치료 과정을 겪어내며 가족공동체의 위기는 필연적이다.


환자가 경제적 여유가 있다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않다면 아픈 몸으로 병원비를 매번 걱정해야 한다. 그러나 환자에 대한 가족들의 지지 기반은 정서적이어야 한다. 어떤 환자 가족들은 경제적 궁핍 속에서도 환자 치료에 일치된 협조를 드러내지만 어떤 환자 가족들은 병원비와 간병 탓으로 환자의 희망을 꺾는다.

환자는 자신이 처한 병마를 두려워하지만 더 나아질 미래, 희망을 믿고 싶어 한다. 고난을 이겨낸 가족들은 환자보다 먼저 지치지 않고 투병의 길을 의연하게 함께 걷는다. 환자 가족이 절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환자만큼은 아프지도 힘들지도 않다는 것이다. 환자의 희망은 결국 가족의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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