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태환의 의학오디세이
논어 제11편 ‘선진(先進)’. 공자와 자공의 대화가 나온다. 제자 중 자장과 자하가 있는데 어느 쪽이 더 어질고 낫냐는 자공의 물음에 스승 공자는 “자장은 지나치고, 자하는 미치지 못한다”라고 답한다. 자공이 다시 공자에게 묻는다. “그럼 자장이 더 낫단 말씀입니까?” 이에 공자는 “아니다. 지나친 것은 미치지 못한 것과 다를 바가 없다”라고 대답한다. ‘과유불급(過猶不及)’의 유래다.
‘과유불급’은 균형과 조화의 가치를 강조하며, 과도한 노력이나 열정 역시 오히려 원하는 결과를 얻는 데 해가 될 수 있음을 지적한다. 무릇 유구한 고사성어들의 내공이야 말할 나위가 없지만 ‘과유불급’은 오늘날 사회 각 분야에서 참으로 유용하다. 사회와 개인의 성장에 대한 관점에서도 중요한 가르침을 일깨워 준다. 의정 갈등의 현시기에도 유효하다.
균형과 조화 강조한 ‘과유불급’
2000명은 수용 한계 넘는 과적
정치가 갈등 조정의 역할 해야
여야 의·정협의체 결실 거두길
전공의들의 사직 사태 이후 의료시스템을 그나마 지탱해 주던 전국의 응급실이 위태롭다. 소모된 응급실의 의사들은 더는 버틸 수 없어 급기야 응급실 문을 닫고 운영시간을 축소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작금의 의료공백 시기에 국민 불안은 가중되고 있다. 정부가 의대 정원을 소 힘줄처럼 질기게도 확대하고자 하는 이유는 나름 명확하다. 의사 수를 늘려 위기에 빠진 국내 필수 의료, 지역의료를 살리겠다는 선한 의도라 한다. 백 번을 양보해서 정부의 선의를 왜곡하고 싶지는 않다. 그런데도 정부 의도와 달리 혜택을 받는 필수 의료, 지역의료에 헌신하는 의사들은 의대 증원을 결사반대한다.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들의 반대 이유를 제대로 경청한 사회적 과정은 취약했다. 그럼에도 확신에 찬 태도로 밀어붙이는 의대 정원은 신념의 ‘과유불급’이다.
지난 9월 9일부터 13일까지 모든 의대에서 수시모집이 진행됐다. 내년 입학하는 신입생 정원이 크게 는다. 갑자기 늘어난 학생들을 제대로 된 교육 환경에서 가르칠 대학의 준비는 턱없이 부족하다. 의학은 도제 교육이 아닌 집체 교육으로 질적 저하될 것이 자명하다. 과한 억측이 아니다. 의료강국이라는 빛나는 업적 속에 감추어진 의대의 교육 교보재와 시설은 놀랍도록 낙후된 상태다. 미처 준비할 시간도 없이 늘어난 학생들은 부실한 교육을 받을 것이다. 수용 가능한 총량을 벗어나도 한참을 벗어난 과적이다. 그럼에도 예견된 의학 교육의 재앙 앞에 정부는 의대 증원만이 의료개혁의 시금석임을 힘주어 말한다. 그 서늘한 확신이 국민은 두렵다.
19일 서울 대치동 학원가에 의대 입시 관련 홍보 문구가 게시돼 있다. 정원이 대폭 늘어난 2025학년도 지방 의과대학 수시모집 지역인재 선발전형에 전년 대비 2배 이상 달하는 수험생이 지원한 것으로 나타났다. 뉴스1
다들 지쳤다. 수도권은 말할 나위도 없고 지방 병원들도 예약된 환자나 급한 환자 외에는 외래 진료를 줄였다. 기존에 인턴·전공의들이 맡았던 진료 업무를 교수들이 하고 있다. 끝이 없는 야간 당직에 피로도는 임계점을 넘었다. 뇌경색과 심근경색 등 촌각을 다투는 환자들은 구급차에서 응급실을 찾아 떠돌고 있다. 응급실에 들어가도 문제다. 중증 환자는 응급실에서 심장내과, 흉부외과 등으로 환자를 보내 진료나 수술을 맡겨야 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 과들엔 당직을 서는 의사가 아예 없기도 하다. 이른바 ‘배후 진료과’에도 전공의들이 떠나고 전문의만 일부 남아있기 때문이다. 도로 위 갈 곳 없는 고귀한 생명과 가족들 눈물을 보듬어줄 책임은 국가에 있다. 방향 잃은 대한민국 의료위기 속에 국가는 어디에 있는가.
한옥에서 대표적 구조물은 대들보와 상량이다. 상량은 가옥의 골조 형태를 갖추는 최종 구조의 상징이고, 대들보는 가옥의 중심을 가로지르는 가장 굵은 재목으로 지붕 하중과 측면 압력을 지탱한다. 대들보가 휘어지면 집이 무너지는 것은 당연지사다. 정부가 강행하는 의대 정원은 의학 교육이 견딜 수 있는 무게인가? 대한민국 의료의 대들보를 휘어지게 할 가능성은 없는가.
삼권분립이 사라진 곳에서 통합과 조화가 좌절되는 건 시간문제다. 현재 벌어지는 행정·사법의 기능을 국회가 다수의 힘으로 마비시키거나 무효화하려는 행동들도 문제지만, 권한만을 앞세운 행정부의 일사천리식 집행방식도 열린 사회의 적이다. 좌우를 넘어 깬 시민이라면 경계를 요한다.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 몫이다. 의료대란이 그렇다.
의료계의 책임도 있다. 그러나 사회적 갈등의 조정은 결국 정치 영역이다. 타협 여지없이 2000명 숫자를 고수한 정부의 책임은 없는가. 정치적 이해득실에 따라 손 놓고 강 건너 불구경한 국회는 무관한가. 의정 갈등이 7개월째 지속된 결과는 한국 정치의 자화상이다.
‘과유불급’의 원리는 과도한 것과 불충분한 것 사이의 균형이다. 이는 민주주의 핵심 원리인 포용과 통합의 원칙으로 작동한다. 더 늦기 전에 여당이 제안한 여·야·의·정협의체가 당리당략을 벗어나 오로지 국민 건강 사수에 가치를 두는 논의가 되길 소망해 본다.
[출처:중앙일보]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27868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