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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태환의 의료인문학] 오만과 질병

브라질 보우소나루 대통령이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았다. 세계 국가수반 중에서는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 후안 오를란도 에르난데스 온두라스 대통령, 알베르 2세 모나코 국왕에 이어 네 번째로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은 것이다.     



그간 보건 전문가들의 거듭된 경고에도 코로나19의 위험성을 줄곧 무시하는 태도로 일관해온 그는 대중 앞에서 마스크를 벗는 등 매우 위험하고 부주의한 행동으로 지탄을 받았던 지도자이다. 브라질 내 코로나19 피해가 급증하는데도 안일한 인식을 보인 그의 오만 앞에 질병은 어김없이 찾아 들었다.          



현재 브라질은 코로나19 누적 확진자가 170여만 명, 사망자는 총 6만7000여 명으로 전염병 창궐 규모가 미국에 이어 두 번째로 큰 나라가 되었다. 남미 확산의 본산이 되어버린 것이다.     



돌이켜보면 대통령 스스로가 국가적 피해를 키웠다. 코로나19 대응 정책을 두고 대통령인 그와 이견을 보인 보건장관 2명은 잇따라 퇴진했다. 이후 보건부 주요 자리는 놀랍게도 이 환난 속에 비전문가인 군인 출신이 대신 자리했다. 그는 침체일로에 놓인 브라질 경제 활성화를 위해 사회적 거리두기에는 부정적 입장을 줄 곳 견지했다. 심지어는 코로나19 희생자들을 향해 “코로나19로 죽는 건 각자의 운명”이라며 국가지도자로서는 해서는 안 될 무책임한 언사를 일삼았다. 역사와 문화가 다른 국가의 정치적 행태라며 에둘러 이해하려 해도 보편적으로는 이해 못 할 지도자이다.     



영화 ‘007 제임스 본드’ 시리즈의 음악 작곡가인 존 배리와 동명인 역사학자 존 M 배리는 스페인 독감을 연구하고 신종 플루 당시 비대응팀에서 자문역을 일했던 미국 툴레인 대학의 교수이다. 그는 1억 명의 생명을 앗아간 1918년 스페인 독감 연구로 저명한 역사학자이다.          



존 M 배리는 "몇몇 나라에서는 정말 부끄러운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라며 "이런 지도자들의 행태는 많은 국민들의 무고한 생명을 앗아갈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트럼프 대통령과 그의 목소리를 따라간 미국 일부 신문들이 심각성과 위협을 작아 보이게 함으로써 오늘날 사회적 '준수'를 어렵게 하는데 기여한 측면이 크다고 비판했다. 지극히 타당한 말씀.     



최강대국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도 브라질의 보우소나루와 매한가지이다. 당초 코로나19 창궐의 심각성을 그는 경시했다. 심지어는 바이러스가 어느 날 "기적처럼 사라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오만의 극치이다. 커지는 우려를 정치적 경쟁자들에 의한 조작된 "거짓말"로 애써 무시했다. 트럼프는 우려하는 국민들이 증가했다는 여론조사 결과, 과감한 억제 조치가 없으면 20만 명이 죽을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고 나서야 오만한 방침을 누그러뜨렸다.     



독일은 달랐다. 앙겔라 메르켈 수상은 ‘독일 전체 인구의 70%가 바이러스에 감염될 수 있다’며 다른 나라 지도자들의 오만한 발언과는 결을 달리했다. 국가 지도자로서의 냉철한 경고였다. 메르켈은 국민들에게 이동과 사회적 접촉에 대한 강력한 통제를 준수해 달라고 호소했다.     



그녀는 "지금이 바로 생명을 구하기 위해 그런 조치들이 불가피한 순간"이라고 역설했다. 메르켈의 접근 방식은 다른 국가들이 전염병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를 보여준 교과서적인 사례이다. 의사의 눈으로 보았을 때, 메르켈은 국민 건강을 사수하는 참으로 위대한 지도자였다.          



각국의 지도자들은 코로나19로 전례 없는 지도력의 시험대 위에 서있다. 몇몇 지도자들은 여전히 권위주의적 접근 방식으로 코로나19를 대하고 있다는 것은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국가는 항상 국민의 권리를 보호해야 한다. 시시각각 변모하는 전염병의 추이에 대해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를 말 할 수 있어야 한다. 국민들 앞에 솔직해져야 한다. 질병 앞에 겸손하지 않은 태도는 국가적 재앙을 불어온다. 우린 이미 참혹한 결과를 목도하고 있다.     



의사이자 역사학자인 로날트 게르슈테의 ‘질병이 바꾼 세계의 역사’는 역사적 지도자들의 질병이 어떻게 역사의 흐름을 바꿨는지, 전염병의 대유행이 역사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소개하는 흥미진진한 역저이다.   


  

그는 나치 독일의 지도자 아돌프 히틀러의 '건강염려증'에 관해 이렇게 기술했다. “히틀러는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했을 당시 각종 감염에 대해 극심한 공포증을 지니게 됐고 그 이후 감기에 걸린 사람과는 절대 면담하지 않았고 자기를 만나고 싶어 하는 사람에게는 먼저 손을 '미친 듯이' 씻을 것을 요구했다.”     



아이러니하게도 독재자 히틀러의 ‘건강염려증’은 오늘날 코로나19 앞에 오만한 각국의 몇몇 지도자들에게 각성을 요구하고 있다. 질병 앞에 오만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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