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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인연금제도’ 도입 위한 사회적 논의 필요

의사도 힘들고 국민도 힘든 시기가 도래...폐업-경영난 허덕이는 일선 의료현장 돌봐야     



[안태환 칼럼] 잘 알려진 사실이지만 우리의 의료복지는 세계가 부러워할만큼 뛰어난 수준에 이르렀다. 모든 국민이 소득수준에 비례하여 건강보험료를 납부하지만, 동일한 의료혜택을 제공받기 때문이다.     



미국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에서 최근 중도 하차한 버니 샌더스 상원 의원은 <뉴욕타임스> 기고문에서 ‘코로나19’사태와 관련해“미국의 가치 시스템을 떠받치는 기본 전제들을 재고할 때”라고 역설했다. 샌더스는 “미국이 코로나바이러스 대유행과 경제의 붕괴라는‘이중의 위기’에 직면해 있다”면서 “이 위기가 미국의 현재 시스템의 불합리성을 극명하게 보여준다”고도 지적했다.     



이른바‘천조국’이라 불리는 최강대국 미국이 OECD 통계에서 국민 4,000만 명이 빈곤층이고, 8,700만 명이 건강보험 사각지대에 놓여져 있다는 현실은 코로나19 위기에서 여실히 입증되었다.     



코로나19로 인해 역사상 초유의 보건의료 비상사태에 직면한 미국은 역설적이게도 의료인력 수천 명이 해고되고, 많은 병원들이 파산 위기에 직면해 있다. 미국 자본주의의 황망한 민낯이다. 그러고보니 격세지감이다. 미국의 의료시스템이 원조를 받던 우리나라에 미치지 못한다는 사실은 그저 놀랍기만 하다.     



우리의 의료시스템은 이번 코로나19 사태에서 제 기능을 명실 공히 발휘했다. 의료진의 헌신성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코로나19와의 사투에서 보여준 의료기관과 의료진들의 희생정신은 고귀하고 빛났다. 국민들도 의료진의 그 같은 헌신과 희생정신에 감동했다. 그러나 빛과 그림자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돌아보면 1963년 12월에 의료보험법이 제정되고, 1977년 500인 이상 사업장 근로자를 대상으로 한 직장의료보험을 시작으로 1978년 공무원 및 사립학교 교직원, 1988년 농어촌 지역과 이듬해 도시지역 자영업자까지 확대된 의료보험은 한국 현대사의 발자취라고 해도 무방하다.     



사회보험으로 운영되는 우리의 의료보험에 모든 국민은 의무적으로 가입해야 한다. 경제적 능력에 따라 보험료를 내지만, 필요에 따라 보험급여를 받는다. 사회연대 원칙에 기초해 전 국민이 혜택을 본다. 민간보험으로는 이런 광의적 효과를 기대할 수 없는 것은 당연지사이다. 국가의 지대한 역할이며 복지사회의 첨병이다.     



그러나 아직 가야할 길은 멀다. 우리는 경제 발전과 정치 민주화를 이루어냈지만 ‘건강한 사회’라는 과제를 안고 있다. 소극 격차에 따른 건강 양극화도 심화되고 있다. 국가가 감당했던 공공성이 의사들에겐 부담으로 다가왔다. 건강한 사회를 만들기 위한 길은 의사의 희생을 강요하는 목소리로 커져만 갔다.     



의사도 힘들고 국민도 힘든 시기가 도래하고 있다. 증세 없는 복지는 지속 가능하지 않듯이 의사의 양보만을 지향하는 의료제도는 사회적 성과로 도출되기 힘들기 때문이다.     



의료보험정책의 효율적 운용에 온 국민의 지혜가 필요할 때다. 공동체 공존을 위한 창의적 상상력이 요구된다. 코로나19로 야기된 경제 위기에 대처하면서, 동시에 의료 공공성에 대한 자각을 일깨워야 한다. 다만 그 헌신을 의사에게만 떠넘겨서는 안 된다. 공공성을 일관되게 추진하는 힘은 의료인의 동의와 협조가 전제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한국 의료 시스템의 공공성을 믿는다면, 역량을 신뢰한다면, 그 공공성을 의사의 사기를 고양시킬 수 있는 제도로 이제는 발전시켜야 한다. 의료의 정상화와 의료산업의 경쟁력 확보는 정책입안과정에서의 소통이다. ‘때로는 일방적이며, 때로는 획일적인 방식은 정책성과로 이어질 수 없다’는 의료계의 우려에 정부도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     



국가가 정한 수가만 받고 환자를 진료하는 의사들은 특별히 이윤을 추구하기 어려운 구조에 직면해 있다. 국가 안보를 책임지는 군인이나 공적 업무를 수행하는 공무원처럼 국민 건강을 지키는 의사들에게도 가칭 ‘의료인연금제도’마련의 사회적 논의가 요구된다.     



폐업과 경영난에 허덕이는 일선 의료현장 의사들의 지속 가능한 의료서비스 향상과 의료보험의 실효적 공공성 확장을 위해서도 논의는 빠를수록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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