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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태환의 의학오디세이] 집단면역의 조건

20여 년 전 세계적 화두가 된 책 『넛지: 똑똑한 선택을 이끄는 힘』은 인간 본성을 통찰한 행동경제학적 질서 전략이다. 제목으로 차용된 ‘넛지(nudge)’는 ‘살살 밀다’는 의미다. 서늘하고 모난 강요가 아닌 애정이 깃든 살가운 주의를 환기시키는 행위다. 소싯적, 동물 다큐멘터리를 보아왔던 분들이라면 코끼리 대열에서 새끼 코끼리의 좌표를 위한 어미 코끼리의 역할을 기억할 것이다. 어미는 뒤에서 슬쩍슬쩍 코로 새끼를 밀어 댄다. 대열에서 벗어나거나 낙오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다. 그 앙증맞은 몸짓에는 맹수로부터 자식을 보호하는 애정이 서려있다.



의료현장에서도 넛지 전략은 통용된다. 수술 후 주의사항을 지키지 않는 환자들은 그 예후도 좋지 않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금해야 할 수칙을 준수하지 않는 것은 물론 식욕을 억제 못 하는 분들이 있다. 대략난감이다. 수술 후 퇴원을 앞두고 간곡한 당부를 해도 다 큰 성인의 일상에 개입하기란 여간해서 쉽지 않다. 이럴 땐 의사의 백 마디 잔소리는 무용지물이다. 하지만 수술 후, 금기사항을 준용하지 않은 환자의 악화된 논문 속 임상사진을 슬쩍 보여드린다. 수술을 앞두고 근심 가득했던 환자 가족들의 애절함에 대한 소회를 에둘러 전한다. 효과는 지대하다.  대개의 사람들은 강요나 금지보다 선택의 자유를 선호한다. 가족은 가깝고 타인은 먼 시대에 그 경향은 확장된다. 개인주의는 군집생활의 합리성을 획득한지 오래이다. 진영논리에 포획된 획일적 한국 사회 내에서 상대의 존엄을 지켜주며 살포시 이끄는 넛지 전략은 사회통합의 효과적 전략이다.



초반 부진하던 백신 접종률이 크게 높아지고 있다. 언론을 통해 확대 재생산된 접종 부작용에 대한 보도는 득보다 실이 컸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시학』 6장에서 비극을 목전에 둔 인간의 감정은 연민과 공포라고 규정했다. 연일 언론에서는 백신 부작용에 대한 기사가 쏟아져 나왔다. 연로하신 부모에게 부작용을 뒤로 하고 접종을 권유할 자식은 많지 않았다. 그러나 주변에 접종자가 늘어나며 큰 탈 없는 현실은 백신에 대한 의구심을 걷어 내고 있다.



코로나19 예방접종은 독감처럼 보편화되어가고 있다. 부쩍 잔여 백신 접종에 대해 물어 오는 지인들도 많아지고 있다. 잔여 백신을 향한 갈망은 사회적 집단면역의 마중물이 되고 있다. 음습한 코로나19로부터 건강을 향한 시민의 경쟁적 욕망은 고무적이다. 자격요건을 갖추어야 하고 공공재로서 활용돼야 할 백신이기에 도움을 드릴 방도는 딱히 없다.



시민들은 이제 코로나19의 험준한 길을 의연히 건너가고 있다. 돌아보면 사회적 거리 두기부터 방역지침까지 일부의 일탈을 논외로 하자면 우리만큼 규칙을 준용한 시민들이 어디 있을까 싶다. 모든 것이 순응해 준 시민 덕분이다. 굳이 강제하지 않아도 우리 시민은 충분히 모범적이다.



무엇으로도 강제할 수 없는 개인의 일상적 자유를 구속하는 일은 지극히 야만적이다. 들쭉날쭉 확진자의 변동성은 거리두기 만큼이나 시민참여를 대전제로 한다. 제아무리 뛰어난 의술을 가진들 환자와의 교감 없이는 치유가 불가능한 것처럼 말이다. 잔여 백신 예약에 대한 시민의 폭발적 관심은 지극히 자생적이었다.



간과해서는 안 될 일이 있다. 접종이 일반화되어가는 지금, 독거노인이 겪는 소외된 고통이다. 세상에 부작용 없는 약은 없다. 만에 하나 벌어질 접종 후 이상반응을 곁에서 확인할 가족도, 주변도 없는 이들이 존재한다면 집단 면역의 보편성은 애당초 무리다. 접종 이후, 독거노인에 대한 돌봄은 집단면역 달성의 선결조건이다.



전염력이 강한 델타 바이러스까지 기승을 부리는 요즘, 백신 접종은 더 빠르게 확산돼야 한다. 11월의 유토피아, 집단면역을 위해 대다수의 시민이 ‘혹여나’라는 부작용의 공포심을 안은 채 집단면역의 대열에 동참하고 있다. 코로나19는 고통을 차별하지 않는다. 여전히 두려움에 접종을 꺼리는 시민에게 만에 하나 있을 부작용을 정부가 돌보며 책임진다는 태도야말로 사회적 면역의 전제조건이다. 부작용 대한 광의적 인과성을 인정해주는 정부의 태도는 필수다. 그래야 코로나19로부터의 고통은 차별 없이 평등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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