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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태환 리포트] 오징어 게임의 주인은 누구입니까?

지천명의 나이가 농익어 가면 딱히 여가를 즐길만한 일들이 협소해진다. 호기 있던 체력은 봄날 벚꽃처럼 흩날리고 열정은 석양의 기운 따라 저물어 간다. 보통 이럴 때면 익숙한 것들이 편안해진다. 활동적 여가를 즐길 여력이 없는 날이라면, 드라마 덕후가 게으름의 표상으로 평가 절하되지만 않는다면 제대로 드라마에 빠져드는 것도 온전히 쉬어가는 모양새로 제격이다. 간헐적 드라마 덕후가 된 까닭이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오징어 게임’은 지난 글에서도 다뤘지만 근간에 보기 드문 여가의 즐거움과 내면의 성찰을 안겨주었다. 나와 같이 시청한 이들이 많아서인지 여기저기서 드라마에 대한 평가가 들려온다. 최근에는 드라마 성공으로‘재주는 한국이 넘고 돈은 넷플릭스가 번다’는 자조 섞인 말들이 연일 나오고 있다. 미국 기업인 넷플릭스가 한국에서 제작된‘오징어 게임’추가 수익을 독점하기 때문이란다. 어라, 내가 비용을 지불하고 시청한 드라마가 애국적이지 않다는 사실은 당혹스러웠다. 



‘오징어게임’제작사가 받게 될 금액은 240억 원 정도에 불과하고 흥행 이후 추가 인센티브도 없다고 알려졌다. 이에 반해 200억 원의 제작비를 투자한 넷플릭스는‘오징어게임’출시 후 넷플릭스 상장주식의 시가총액이 28조 원이 늘어나는 등 경제적 이익이 천 배가 넘는다는 외신 보도가 이어지고 있다. 대박을 친 것이다. 



그에 반해‘오징어 게임’처럼 흥행작을 제작하고서도 정작 지식 재산권을 넷플릭스가 독점하는 구조에서는 국내 제작사들은 플랫폼 하청업체로 전락할 우려가 있다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투자여력이 마땅치 않은 국내 제작 현실을 고려하면‘오징어 게임’처럼 현행 방식이 안정적인 제작 환경과 수익을 제공하지만 수익성까지 기대하긴 어려운 측면이 있다. 미디어 산업의 넷플릭스 종속화가 대두되는 배경이다. 일면 타당하다. 



그러나 한 발 더 들어가 보면 비대칭적 수익구조에 관해 넷플릭스도 할 말은 있다. 빛나는 창의력과 연출로 주목받는‘오징어 게임’의 황동혁 감독이 시나리오를 완성한 것은 무려 10년 전으로 알려졌다. 그는 국내 투자자를 찾지 못하다 넷플릭스 투자를 받고 비로소 오래도록 묵혔던 작품 ‘오징어 게임’을 세상에 내놓을 수 있었다. 이유야 어찌 되었든 창작자가 작품 활동에 투자를 받기란 여간해서 쉽지 않은 일이다. 국내 투자자가 없는 상황에서 넷플릭스는 도전적 투자였을 것이다. 여기에 더해 ‘오징어 개임’의 세계적 흥행에는 넷플릭스라는 플랫폼이 크게 작동했을 것이다. 



‘오징어 게임’의 혹독한 수익 배분에 화가 나지만 OTT 특화 콘텐츠 지원을 담당하는 우리 공공기관의 올 한해 14억 원의 콘텐츠 제작 지원비를 직시하는 것이 필요하다. 반면 넷플릭스는 올해 국내 콘텐츠에 투자한 제작지원금은 5천500억 원이다.  넷플릭스 제작지원금의 0.3% 수준에 머문 콘텐츠 지원 현실을 모른 체하며 수익 배분을 이야기하는 것은 참담하다.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을 굳이 거론하지 않아도“왜 수익이 이것뿐이냐”라는 몰멘 소리가 부끄러운 배경이다.    



한국은 자타 공인 IT 선진국이지만 플랫폼을 장악하고 있는 것은 없다. 항간에 우물 안 개구리로 비난받는 카카오와 네이버도 글로벌화된 플랫폼이라고 칭하기엔 턱없이 부족하다. 의료 선진국이라고 자부하지만 각종 규제와 투자여력 부족으로 선진국의 의료기기 수준을 따라가기 힘든 의료기기 제조환경도 매한가지이다. 그릇이 작은 것이 아니라 큰 그릇을 만들 여건이 채비되지 않은 것이다. 



미디어 산업의 넷플릭스 종속화를 우려한다면 플랫폼 구축이 먼저이다. 우물에서 숭늉을 찾을 순 없다. 국내 토종 플랫폼의 경쟁력 강화라는 관점도 견지해야 할 것이다. “오징어 게임의 주인은 누구입니까?”를 외치기 전에‘오징어 게임을’누구도 만들 수 있는 제작 환경과 플랫폼 구축이 선결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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