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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쉼스카 May 07. 2022

5도2촌 라이프엔 운전이 필수

나는 목적지향적인 운전자로 밝혀졌다

작년 10 사당에 있는 운전면허 학원에 등록하지 않았더라면, 12월에 운전면허를 따고 바로 중고차를 사지 않았더라면, 지금 강릉에 있지 않을 수도 있었다. 운전할  있는 자격을 갖췄다는 사실과 혼자서도 어딘가를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는 것은 세상을  다른 시각으로   있게  줬다. 이것이야 말로 ‘기동력 자체구나. 도로  세계는 갖가지 규칙과 약속 그리고 눈치로 이뤄진 곳이었고 세상의 다양한 인간들의 성격이 드러나는 곳이었으며,  거친 곳이었다. 거칠다고만 생각하기엔  양보도 있고 배려도 있는  도로 위의 세상이었다. 지금껏  세상을 모른  외면해왔다면  이상 외면하지 않기로 마음을 먹고 나서는 완전히 직진  직진이었다. 면허증을 실물로 받은  바로 중고차 매장에 가서 차를 골라 바로 타고 집으로 돌아왔으니 말이다. 중고차 매장이 있던 성수동에서 집까지 오는  저녁 시간에 어찌나 옆이  보이고 뒤가 안보이던지 '새는 날아가면서 뒤돌아 보지 않는다'라고 했던 어떤 책의 제목이 떠오른다. 옆과 뒤를 보기 싫어서가 아니다. 보이지 않아서 앞만 봐야 했던 초보 운전자의 도로  첫날이었다.


생각보다 빠르게 장거리 운전 경험을 했던 것도 강원도를 자주 다니면서였다. 운전에도 1만 시간의 법칙이 적용된다면 당연히 누적된 운전 시간이 큰 영향을 줄 것이다. 강원도를 오가는 경험은 적어도 고속도로 위에서만 왕복 6시간을 의미했으니 강원도 왕복 운전은 경험치를 한층 올려주었다. 장류진 작가의 소설  <연수>에서 운전 연수 강사분이 외제차에 붙인 잘 보이지도 않는 'New Driver'라는 스티커를 떼어 버리고 A4 용지에 가득 차게 궁서체로 '초보'를 붙이라고 했던 장면을 참 좋아한다. 어디서 본건 있어서 중고차 매장에서 나에게 차를 판 딜러에게 마지막으로 하나를 부탁했다. '저... A4 용지에 제일 큰 글씨로 초보라고 인쇄 좀 부탁드릴게요' 중고차 매장의 업무 마감 시간이 살짝 지난 시간이었지만 친절하신 분은 가능한 가장 크게 궁서체 글씨가 인쇄된 A4 용지를 얇은 반투명 셀로판테이프로 네 귀퉁이에 꼼꼼하게 붙여주었다. 떼고 싶을 때 금방 뗄 수 있게 테이프 끝은 반을 접어서 살려두었다. 섬세한 배려, 이런 친절을 받은 날은 기분이 말랑해진다.


사이즈도 가격도 초보운전자에게 부담스럽지 않았던 9만 km를 달린 기아의 빨간 프라이드, 1월에 처음으로 강원도를 직접 운전해서 갔다

운전을 하게 되면서 5도 2촌이 구체화된 건지, 강원도에 가고 싶어서 운전면허를 따게 된 건지 그 전후관계는 확실치 않지만 운전을 할 수 있고, 누군가에게 의존하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이 자신감을 불어넣은 것은 사실이다. 중고차를 사고 영동고속도로를 타서 강릉으로 향했다. 집을 구하고 나서는 거의 서울양양고속도로를 타지만 그 전엔 영동고속도로도 종종 이용했다. 차를 사고 서울 근교 여주, 양평 등을 몇 번 다녀보긴 했지만 이런 장거리는 처음이었다. 해본 적이 없기 때문에 운전에 있어서 아직 습관도 없었고, 운전 성향에 대해서도 알 수가 없었다. 운전에 있어서 나를 새롭게 발견하는 기분이었다. 그리고 나는...


장거리 운전에 적합한 초보운전자임이 밝혀졌다.


나는 3시간 미만의 거리는 한 번도 쉴 필요 없는 장거리에 적합한 운전자였다. 삼십여 년간 왜 운전을 안 했을까 싶을 정도로 운전하는 과정에서의 긴장감과 집중과 몰입을 즐겼다. 오랜 시간 앉아서 책을 읽는 습관 때문인지, 운전석에 오래 앉아 있는 일도 크게 힘들지 않았다. 물론 강릉을 가던 첫 고속도로에선 주행도로에서 100km를 밟는 것도 덜덜 떨면서 했지만 말이다. 운전석에 앉아서 옆도 안 보이고 네비도 안 보이고 앞만 보이던 그 기억이 또렷한데, 그랬던 게 약 5개월 전이라는 게 믿을 수가 없을 정도로 강원도 한번 갈 때는 휴게소도 들르지 않고 목적지향적으로 운전을 한다. 목적지향적인 운전은 결국 그 사람의 성격과 깊은 관련이 있다. 예를 들어 나는 온라인 쇼핑을 할 때도 일정 시간이 지나면 그 집중력을 잃는다. 온라인 쇼핑에서 나의 목적은 생각했던 물건을 주문하는 일인데, 그게 너무 길어지면 차라리 그걸 사지 않기로 해버린다. 이런 급한 성격 덕분에 가끔은 돈을 아끼기도 한다. 회원가입이나 결제가 조금이라도 복잡한 곳이면 그때 나의 의지는 순식간에 바사삭 말라버린다. 잘 맞는 연결 일지는 모르겠지만 내 생각엔 이게 운전이랑도 어느 정도 비슷한 것 같은데, 목적지가 있을 때 그 목적지까지 가장 효율적으로 가는 걸 선호한다.


3시간 정도의 거리라면 휴게소에 들르는 일 없이 무조건 달린다. 운전에 있어서 목적지향적인 성격은 아무래도 아빠의 운전 스타일을 닮은 듯하다. 어릴 때 아빠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장거리를 가면 아빠는 휴게소에서 쉬는 법이 없었다. 엄마가 아이들 휴게소에서 간식도 사 먹고 싶어 한다고 이야기를 해도 운전대를 잡은 아빠는 웬만해서는 휴게소에 들어가는 법이 없었다. 어린 나는 그게 너무나 서운했는데, 그런 성격을 똑 닮았는지 목적지까지 엉덩이 한 번 떼지 않는 운전을 즐기는 편이다. 그리고 운전대를 잡은 사람이 그 차의 의사결정권을 갖는다. 그래서 지난번엔 4시간 동안 물 한 모금도 마시지 않았다. 휴게소 들어가는 순간 도착 시간은 적어도 20분이 늘어난다.


이런 목적지향적인 운전 습관이 강릉에 와서는 다시 180도 바뀐다. 과속을 하지 않기 위해서 아는 길도 네비를 꼭 켜고 다녀야 하는데 네비가 안내하는 가장 짧은 길을 선택하지 않고 늘 해안도로를 통해 간다. 날이 맑은 날도, 날이 궂은날도, 돌아가는 길이어도 해안도로를 향한다. 익숙하지 않은 동네에서 길을 잘못 들어도 급할 일이 하나 없다. 다시 크게 돌거나 가다가 네비 안내를 받아 유턴을 해서 오면 어느새 목적지에 도착한다. 아무래도 내가 고속도로에서 목적지향적인 운전을 하는 것은 이곳, 강릉에 가장 빠르게 도달하고 싶은 마음인 것 같다.


사천진 해변을 지나는 길을 좋아해서 강릉 시내를 갈 때 늘 이쪽 길을 선택한다



그래요 그러니까 우리 강릉으로 가요


강릉에서 운전을 하다 발견한 글귀다. 검색을 해보니 강릉이 고향인 심재휘 시인의 시구절인가보다.

그래요, 그러니까, 우리, 강릉으로, 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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