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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쉼스카 May 08. 2022

사실 읽을까 말까 했던 책이었다.

Raymond Carver의 <Cathedral> 읽기

그렇다. 읽을까 말까 고민한 책이었다. 확 끌림이 없었던 책이었다.


레이먼드 카버의 <대성당>은 책 좋아하는 사람들 사이에선 이미 읽었거나 다들 알만한 책이고, 작가들이 좋아하는 책으로도 유명하다. 김연수 작가는 직접 이 책을 번역했고, 무라카미 하루키도 이 책을 좋아한다고 여러 번 들었다. 그런 책일수록 내가 직접 발견하는 재미가 덜 해서 그런지 지금까지 이 책을 읽을 기회를 만들지 않았다. 이상한 심리지만 같은 이유로 아직 읽지 않은 책들도 꽤 된다.


그래서 5월에 리북스(원서 모임)에서 현대문학으로 <대성당>이 선정되었을 때 아주 끌리지는 않았었다. 그러다 저녁 9시에 낭독을 하며 책을 읽는 야간낭독방에서 5월에 <대성당>을 읽기로 했길래 겸사겸사 야간낭독과 현대문학방에서 1석2조로 책 읽기를 해볼까 했다. 그렇게 레이먼드 카버를 처음 만났다.



이 책에는 딱 12편의 단편 소설이 실려있고, 지금 이 글을 쓰는 시점엔 그중 절반을 읽은 상태다. 순서대로 읽고 있는데 나는 이미 첫 번째 단편인 <Feathers>를 읽고 작가가 그려낸 약간은 기괴스러운 분위기와 짧으면서도 명확한 문장들 그리고 끝날 때마다 여운을 남기는 이야기에 흠뻑 빠지게 됐다. 한 커플이 다른 커플을 바라보는 시각을 꽤 예민하게 드러낸 것 같았다. 분명 작가가 그린 이미지들은 내가 본 적이 없는데 내 머릿속에는 공작새를 키우는 그 집의 마당과 나무가 생생했고, 망가진 냉장고와 소파와 한 몸이 된 남편을 바라보는 아내의 모습, 자신의 열차칸을 잃고 오히려 안도하는 중년 남자의 모습이 어딘가에서 영상으로 본 듯하게 남아있다. 단어의 나열과 문장만으로 이런 이미지를 각인시킬 수 있다니 이 작가의 글쓰기에는 무언가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런 이미지들은 일상 중에 문득 문득 떠오르는데 어느 소설에서 봤던 이미지였는지 혼자 오래 고민한다. 이번에도 벌써 이 소설집에서 다양한 장면이 남았다.


<A Small, Good Thing>이라는 제목의 단편은 앞의 소설과는 조금 다른 분위기를 풍긴다. 소설을 다 끝내고 나니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초반에는 여전히 등장인물들이 상태가 불안하고 다른 등장인물처럼 조금씩 어딘가가 맞아떨어지지 않는 게 아닐까 생각했다. 이야기의 설정 자체도 대놓고 안타까운 상황이기도 했다. 약간은 불안한 상태로 전개를 따라가게 된다. 그러나 다 읽고 나니 <A Small, Good Thing>의 인물들은 좀 다르단 생각이 들었다. 다른 단편들에서 받은 인상은 인간은 어쩔 수 없이 관성에 의해 살아간다와 비슷했다. 벗어나려는 의지가 없지는 않지만 자석처럼 다시 그 삶으로 돌아오는, 그런 힘에 의해 무기력해지는 인생. 하지만 이 단편에서는 사실 사람을 잘 이해하고 나면 사람에는 여전히 희망이 있다는 기분이 들게 만든다. '작고 좋은 것'이라는 이 제목이 소설 속 인물의 대사에서 언급되었을 때 마음이 살짝 따스해진 기분이 들기도 했다. 아직 레이먼드 카버가 말하고자 하는 인간상에 대해 확실히 알 수는 없지만 다른 다섯 편의 소설과는 다른 분위기다.  


이 소설 몇 편을 읽으며 인생엔 큰 반전이 없다는 생각을 했다. 아주 오랜만에 단편집을 읽어서 그런지 이야기 하나가  끝날 때마다 책을 덮고 그 분위기를 생각하는 게 이렇게 좋았던가 생각한다. 단편 소설은 마치 인생의 특정 구간, 특정 장면만 잘라내서 보여주는 것 같아서 앞뒤 배경에 대한 상세한 설명이 없어 그 뒤에 숨은 인물과 맥락을 상상해야 해서 독자들이 종종 당황스러운 경우가 많다. 하지만 다시 말해 그것은 독자가 상상할 ‘여지’가 많다는 점에서 좀 더 적극적인 책 읽기를 할 수 있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이 단편집은 '작고 좋은 것'들을 모았기에 어느 하나 빠지지 않는데 비슷한 듯 다른 듯 좋아서 소설 하나를 끝내고 바로 다음으로 넘어가기가 싫어진다. 혼자서 소설가가 만들어낸 세상을 조금 더 그려본다. 오늘은 봄비가 흩뿌리듯 내리는 강릉에서 레이먼드 카버의 책을 읽다가 적었다. 저 멀리 수평선은 물안개에 가려 하늘과 바다의 경계가 희미해진 데다가 도로는 축축하게 젖어있고, 한껏 차분해진 날이다. 오늘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은 어쩌면 남들이 좋다고 말하는 것들은 나에게도 좋을 확률이 높다, 남들과 너무 다른 길을 가려고 하지 말자일지도.


레이먼드 카버씨, 당신 소설 참 매력있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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