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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쉼스카 May 20. 2022

강릉행 야간열차와 강릉행 KTX

기차 타고 강릉집까지


<강원도의 힘> 홍상수 작


옛날 영화를 보면 강원도는 밤 기차를 타고 가는 곳이었다. 홍상수 감독의 초기 영화 <강원도의 힘>에서 본 게 그랬다. 강릉행 야간열차라니 한 번도 입에 올려본 적이 없는 단어였다. 야간열차를 타고 오던 강릉이 영동고속도로의 개통과 양양고속도로, KTX의 개통으로 이제는 2시간도 걸리지 않는 곳이 되었다.


강릉에 수차례 왔지만 기차를 타고 온건 처음이다. 청량리 역에서 기차를 탈 수 있었다. 청량리역은 대학교 시절 과 엠티나 동아리 엠티의 집합 장소이자 출발 장소였다. 그래서 그런지 청량리 역을 생각하며 대성리와 가평의 엠티촌이 떠오르고 그곳의 화려했던 이불 커버와 베개가 떠오른다. 건너편에선 지하철을 타고 우리 쪽 플랫폼에선 기차를 기다렸다. 출발 3분 전쯤 KTX의 날렵한 앞코가 승강장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이 열차는 양평, 횡성, 평창을 지나 동해에 도착할 것이다. 평일 아침 시간이었지만 기차 좌석은 만석이었다. 삼삼오오 모인 중년의 은퇴한 얼굴들도 보였고 같은 옷을 갖춰 입은 20대 커플들도 보였다.



기차를 타거나 비행기를 타기 전에 어떤 책을 고를지 고심한다. 아무래도 그런 공간에선 몰입이  되는 책을 읽는  좋다. 학술적인 책보다는 재미있고 흥미로운 책을 고른다. 이번엔 레이먼드 카버의 대성당을 꺼냈다. 심지어  단편집에는 기차를 배경으로 하는 소설이 2편이나 된다.  단편집 전반에 흐르는 분위기는 소파와 알콜이 지배한다. 그만큼 일상적인 순간들을 잡아내고 있다. 우리 집에는 소파를 두지 않았는데 처음엔 거실이 좁아서였지만, 소파와  몸이 되고 싶지 않아서라는 이유도 있었다. 그리고 소파 없는 삶은 나름 괜찮다. 그래서인지 미국 가정의 소파라는 사물이 상징하는 느껴졌다.



생각보다 기차에 흔들림이 있어서, 책을 손에 들었다 놓았다가 바깥 풍경을 사진을 찍었다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1시간 40분 만에 강릉에 도착할 수 있다니 이건 기적이야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중간에 평창에서도 사람들이 내리고 탔다. 지겨워질 새도 없이, 진득하게 눈을 감고 잠을 청할 새도 없이 강릉에 도착했다. 사람들은 차례대로 내려 익숙하게 역사로 나갔다. 강릉역 앞에서 인증샷을 찍는 중년 여성 무리의 목소리가 컸다. ‘내가 강릉이 얼마만인지 몰라'


2022년의 강릉역

강릉 시내엔 회전 교차로가 많다. 서울에선 보기 힘든 교차로다. 신호등이 없다 보니 눈치를 잘 보며 들어가야 한다. 서울에서 출발한 KTX에서 내린 젊은이들 무리와 같은 방향으로 걷다가 강릉역 앞 회전 교차로에 멈춰 섰다. 신호등에 익숙한 사람들에게 회전 교차로의 횡단보도는 조금 당황스럽다. 이번엔 보행자와 운전자의 눈치보기가 시작된다. 처음에 강릉에서 운전을 할 때 길을 건너는 보행자들이 무모하다고 생각했었는데 그것이 회전교차로의 룰이었다. 도로 중간의 섬에 건널 타이밍을 잡지 못한 여행자들이 고립되었다.


이왕 기차를 타고 온 거 끝까지 걷고 버스를 타기로 마음먹었다. 짐을 가볍게 챙긴다고 했는데도 걷다 보니 어깨가 무거워진다. 강릉 시내에서 점심을 먹고 집으로 들어가기로 했다. 맛있는 집들은 다 강릉 시내에 있다. 시내에서 버스로 20분 정도 들어가는 곳에 집이 있기 때문에 나 같은 시골 사람에게 강릉 시내는 별천지다.


강릉 시내에선 지방선거를 앞두고 시내 여기저기 빨간 파란 현수막들이 바람에 날리고 있었다. 강원도를 그리고 강릉을 어떻게 경쟁력 있게 만들 것인지, 내가 왜 강릉의 아들과 딸인지를 서로 홍보하고 있었다.



오래된 상가가 많은 구도심을 천천히 걸어 언젠가 가봐야지 하고 저장해두었던 이탈리아 레스토랑에 도착했다. 평일 점심이라 여유로울 것이라 생각했던 것은 착각, 두 번째로 웨이팅 리스트에 이름을 올렸다. 딱히 갈 곳도 없어서 짐을 놓고 식당 앞 의자에 앉아 다시 책을 들었다. 친절한 식당 주인분의 안내를 받아 자리를 잡았다. 오늘의 추천 메뉴는 문어 샐러드와 해산물 오일 파스타였다. 음식을 꽤 잘하는 집이란 생각을 하며 맥주를 한 잔 마셨다.


기분 좋게 점심도 먹었고 이제는 강릉집에 들어갈 시간이다. 시내버스 정류장이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강릉 북쪽을 향하는 배차 간격이 꽤 긴 버스가 몇 대 있었다. 주문진행 버스가 얼마 되지 않아 도착했다. 즈므, 미노, 구라미 마을 시내버스를 타고 지나가며 마주친 동네 이름이다. 강릉의 옛 이름인 하슬라에도 푹 빠져 하슬라, 하슬라 부르면 그 바다가 눈앞에 보이는 것 같았는데 그 하슬라에 집을 구했으니 이곳과의 인연이 만들어진 느낌이다. 하슬라를 그렇게 좋아하더니만 저 멀리 수평선을 보며 글을 쓰는 오늘 아침 같은 일이 생겼다.


해뜨는 오늘 아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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