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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쉼스카 Jun 23. 2022

집이 휴가가 되는 순간들

5도2촌에서 5촌2도로, 강릉에서 휴가 보내기   

이른 여름휴가. 6월 장마 전, 타이밍이 나쁘지 않았다. 아직 아주 붐비지 않으면서 비도 피했다.


휴가에 특별한 계획이 있냐는 질문을 받았다.


아뇨, 무계획이 제 계획이에요.


휴가는 어디로 가냐는 질문을 받았다.


강릉요.



그렇다. 자연스럽게 휴가는 강릉으로 정했다. 강릉에 집을 두고 있는 동안은 이곳을 최대한 애용하기로 했다. 휴가 기간에 숙소를 따로 고민할 필요도 없고, 예약이 가능한지 인기 있는 숙소를 예약할 때처럼    전부터 숙소를 신경  필요가 없었다. 강릉집을 베이스로 평소 가지 않았던 곳을 가는 , 원래 좋아하던 곳을 가는  휴가였다. 익숙한 곳에서 놀다 보면 다시 새로운 곳에 가고 싶어 진다. 그러면 그때 가보지 않은 길로 걸어가면 된다.


원하는 만큼 묵을  있는 숙소가 있겠다, 회사에선 메신저와 모바일 오피스 알람도 끄라고 했다. 그런 이야기는 누구보다  따르기 때문에, 월요일 아침부터 알람이 울리기 시작하자 아이폰 설정에 들어가서 알람을 과감하게 꺼버렸다. 온라인으로  연결되어 있는  좋지만은 않다. 이렇게 끊어버릴  있는 시간이 찾아왔다. 특히 요즘 하고 있는 일은 긴급하게 처리해야  일들이 아닌지라  편하게 알람을   있었다. 그리고 정말 급하면 전화를 하게 마련이다.  


캠핑장 뷰


평소 예약하기 어렵기로 유명한 강릉의 해변 앞 캠핑장을 예약했다. 덕분에 이틀간 데크에 야외 거실을 하나 만들었다. 사람이 거의 없는 긴 해변에 파라솔, 돗자리를 가지고 자리를 잡았다. 바다는 푸르르고 아직은 찼다. 시간이 지나자 아이들이 나타나더니 물에 풍덩풍덩 들어갔다. 어른들은 다 물이 차다며 발만 담그고 말았다. 아이들의 저 뜨거움은 어디서 오는 걸까 싶었다. 발만 담그기엔 아쉬워서 파도가 부서지는 얕은 바다에 앉아 수평선을 보았다. 쉼 없이 다가오는 바닷물이 다리를 감싼다. 10분이고 20분이고 그렇게 앉아서 가만히 있다 보면 이곳을 잊는 순간이 있었다. 여기가 어디인지, 나는 누구인지. 물속에 반짝이는 물체가 보였다. 손가락 길이 정도 되는 물고기들이 떼를 지어 헤엄치고 있었다. 파도에 가까이 헤엄을 치는 그들은 파도가 출렁일 때 같이 파도를 타며 출렁였다. 미역이나 이름을 모르는 해조류들도 둥둥 떠다녔다. 파도를 따라 모래사장까지 왔다가 가기를 반복했다. 쉬폰 커튼 같은 모습을 한 해파리 한 마리도 파도에 몸을 맡긴 채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바다의 생명체들과 내가 모두 파도 에너지를 즐기고 있었다.



소나무 숲 안에 있는 캠핑장은 뜨거운 햇볕을 가려주는 곳이었고, 널찍한 사이트 간격 덕분에 모두 내 것인 양 숲 속을 즐길 수 있었다. 그러나 냄새는 그렇지 않았다. 어느 집의 고기 굽는 냄새가 가장 먼저 코를 찌른다. 그 냄새를 맡자면 고기를 굽지 않을 수 없다. 오징어 철이라 캠핑장 앞에서 오징어 회를 사 와서 차가운 화이트 와인을 마시며 먹었다. 짜파게티를 끓여서 파김치에 같이 먹었다. 캠핑장에서 먹는 것은 무엇이든 맛있다. 눈앞엔 파란 동해 바다가 그리고 머리 위엔 키가 큰 소나무들이 자리 잡고 있었으니 무엇이든 좋은 곳이다.

갑자기 라벤더에 놀라셨죠?


휴가로 시간이 많이 생겼으니  동네를 가보기로 한다.  동네는 동해시다.  가본 길을 가고,  가본 동네를 구경하는  여행이니까. 동해시는 우리나라 근대화의 기초가 되었던 시멘트 산업이 번성한 곳이다. 석회석을 캐서 시멘트로 만들었고  시멘트들은 열차 길을 따라 운반되었다. 유명한 시멘트 회사의 이름이  보인다. 공장의 규모도 상상 이상이었다. 최근(2017)까지  50년간 채굴을 했던 채석장이 새로운 문화공간으로 재탄생한 곳이 있었다. 시멘트 공장을 전시장과 카페로 바꾸고, 여러 가지 즐길거리를 만들어두었다. 라벤더를 심고, 도로에는 라벤더와 같은 색으로 안내선 표시를 했다. 석회질 성분 때문인지 에메랄드 빛을 품은 커다란 호수가 2있었다. 가장 높은 곳엔 전망대를 만들어서 그늘도 없는 곳을 올라가느라 땀을 흘렸다.  저기까지 올라가야 하는가 스스로에게 묻지만 여행은 평소와 다른 행동을 하게 만든다.  위에서 바라본 폐광산은 과거 누군가의 삶의 현장이었을 테고, 이 지역의 이야기가 담겨 있었을 거다. 복구한 모습을 보니 기묘한 생각들이 든다.  반대편에는 지금도 채굴 중인 채석장이 보인다. 우리가 살고 있는 편리함 뒤에는  어떤 장면들이 있을 텐데 우린 그걸 자주 잊고 사는  같다.


동해 무릉별유천지


무계획으로 떠나온 휴가로 5촌2도를 살아보는 중이다. 강릉집을 베이스캠프로 삼아 지내본 며칠의 여름날들의 순간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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