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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쉼스카 May 02. 2022

로망 실현, 바닷가에서 아침 산책을

내가 산책길에서 생각한 것들

5도 2촌의 하루는 아침에 5km 정도 해변을 따라 걷는 것으로 시작한다. 강릉집은 주문진에서 멀지 않은데, 근처에 가장 유명한 장소로는 드라마 도깨비 촬영지가 있다. 공유와 김고은이 주연을 했던 드라마 <도깨비>에서 그들이 처음 만나는 그 방파제 장면을 바로 이 근처에서 촬영을 해서 종영한 지가 몇 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사람들은 그곳을 찾아 서로를 마주보고 사진을 찍는다. 주변엔 ‘도깨비’ 이름을 단 식당이나 상점도 몇 개 존재한다. 도깨비의 명장면이 바로 이 곳에서 촬영되었으니 동네 주민으로서 자랑스러워 하지 않을 수 없다. 아무튼 산책의 방향은 강릉집에서 북쪽인 주문진을 향하는데, 그쪽 길이 곧은길로 되어 있고 바다 산책로라고 데크로 만들어진 길과 도로를 적절히 오가며 편히 걸을 수 있어서 선호하는 방향이다.


바로 이 장면이 강릉이었다

사실 해안가 산책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전까지 내가 생각한 이미지는 이러했다. 파도가 치는 해변을 혼자서 걷다가 뛰는 한 여자의 이미지. 근데 난 뛰지는 않으니 걷는 여자의 이미지겠다. 그러나 사실상 해안가를 느릿느릿 걸을 때야 상관없지만 아침 산책이라는 이름 하에 파워 워킹처럼 씩씩하게 걸어야 하는 경우 모래사장은 적절하지 않은 산책길이었다. 한발 한발 성큼성큼 걸어 나갈 수 없을 뿐더러, 그렇게 걷다간 해수욕장의 모래가 신발 속으로 모두 다이빙해서 들어올 기세였으니까. 모래의 촉감은 누워 있거나, 아주 천천히 걸을 때만 즐기기로 했다. 아침 산책은 데크길이 최고였다.



눈이 일찍 떠지는 날은 6시쯤, 늦게 떠지는 날은 7시가 넘어서 나가기도 했다. 운동복으로 갈아 입고 에어팟을 챙겨 나선다. 바다 쪽으로 난 아파트 입구에서 정말 2분이면 이미 환해진 아침 풍경을 만날 수 있다. 전날까지는 해안 도로 옆을 채우고 있던 자동차들도 아침엔 사라지고 해안 도로가 한적하게 넓어져있다. 오늘도 고민 없이 주문진을 향해 걷는다. 실제로 3km만 걸으면 주문진 건어물 시장 거리가 나온다. 하지만 돌아올 길을 생각하면, 주문진으로 넘어가는 다리 전에서 반환점을 찍고 돌아오는 편이다. 날씨가 풀리고 해안가에 캠핑차나 차박하는 차량들이 부쩍 늘었다. 이쪽 바다는 아무래도 낚시꾼들에게 유명한 것 같다. 낚시라는 것은 물고기도 낚지만 시간도 낚아 올리는 행위 같아서, 그들은 낚시대의 끄트머리를 바다에 툭 던져 놓았다는걸 잊은채, 낚시의자에 앉아 멍하니 수평선을 바라보는 것 같다.


내가 걷는 도로에 바로 캠핑차들이 있다 보니, 가끔은 차 밖에 무심히 벗어 놓은 신발 한 켤레, 두 켤레를 보기도 한다. 캠핑자에서 차박은 두어번 해봤지만, 이런 ‘노지’ 차박은 경험해본 적이 없는데 밖에 나와 있는 신발이 그 차 안에 사람이 있음을 표시하는 것 같다. 그런 차 옆을 지나갈 때는 시선의 방향을 더 조심한다. 자칫하다간 차 안에서 일어난 주인과 눈을 마주칠 수도 있다는 생각에. 하지만 다행히 아직까지 그런 일은 없었다.



가끔은 이 길에서 나처럼 바다 구경을 하는 동네 고양이를 만나기도 한다. 동네 주민들로 보이는 사람들이 간간히 나와 같은 루트로 산책을 한다. 두 발을 사용해서 걷는 행위에 대해 굉장한 예찬을 가지고 있는 나로서는, 건너편에서 나와 같이 두 발을 움직이며 걸어오는 한 인간이 추구할 수 있는 살아 있음에 대해 생각했다. 이렇게 걸을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행운인가. 오늘 해안도로를 걸을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축복인가. 몸을 움직이는 일은, 어쩌면 단순하게 발을 내딛어 걷는 일이라도 걷는 과정의 근육의 움직임을 느끼는 과정은 한 인간 존재의 인식과 긍정을 가능하게 한다. 이 인식과 긍정의 과정이 하루의 가장 첫 시간, 오롯이 자신만의 시간에 이루어진다. 나는 혼자만의 세계에서 충만한 에너지를 채우고 왔다.


내가 생각하는 걷는 행위는 혼자 해야 최고의 정수를 맛볼 수 있다. 세상엔 혼자 했을 때 좋은 것들이 많지만, 산책은 그 리스트에 필히 들어가야 하는 항목이다. 평일엔 한강 근처에서, 주말엔 해안가에서 산책을 하는 사람으로서 ‘같이’ 산책을 하는 사람들을 종종 만나기는 하지만 산책은 아무래도 혼자 하는게 최고란 생각을 한다. 같이 걷는 사람과 산책의 목적과 걷는 속도와 산책의 양이 합치되지 않았을 때는 즐거운 산책 시간이 누군가는 실망스러운 시간으로 변질 될 수가 있다. 어쩔 수 없이 한 사람은 불편해지기 마련이다. 내가 걷고 싶은만큼, 나의 속도로 걷는 일은 얼마나 편안하고 자립할 수 있는 시간인지 모른다. 내뜻대로 되는 일이 많지 않은 세상에서 산책은 나의 확실한 시간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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