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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림 Jun 01. 2021

아끼던 개완이 깨졌다면? 킨츠기로 수선해보자

깨진 그릇을 이어붙일 수 있다면

깨진 그릇을 예술적으로 이어붙일 수 있다는 킨츠기라는 기법에 관심이 간 계기에 대해 말하자면, 이제는 아득한 비포 코로나 시대로 돌아가야 한다. 대만 타이중까지 가서 예쁜 찻잔을 적지 않은 가격으로 샀는데, 집에까지 잘 모셔와 랩으로 꽁꽁 싸여있던 포장을 벗기다가 내 손 바깥으로 튀어나갔고 탁자 다리에 부딪혀서 그만... 깨져버렸다.

ㅇ ㅏ... 안돼.....

대만 업체들은 대부분 라인 id를 가지고 있고 영어로 응대를 잘 해주는 편이다. 그래서 라인으로 “않이 제가 집에 잘 가지고 와서 뿌셔버렸는데 같은 제품을 주문할 수 있을까요?” 요청까지 해서 애써 개인주문창까지 열어 배송을 받았으나, 커뮤니케이션 실패로 한 사이즈 작은 제품이 와 버렸다. Aㅏ....


그러다가 킨츠기 金継ぎ 라는 일본식 수선이라면, 그릇을 이어붙이거나 이가 나간 부분을 때울 수 있다는 정보를 어느 책에서 접하게 되었다.

바로 킨츠기 수첩이라는 책이다.

하지만 책을 읽어보니 대분의 재료가 한국인에게는 낯선 제품들이었기 때문에 수급이 보통 일이 아닐 것 같았다. 또 그 정도로 섬세한 손이 많이 가는 기술이라면 원데이클래스든 뭐든 선생님한테 배우는 게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인스타그램으로 검색해봤더니 전문적으로 가르쳐주는 선생님이 있었고 소규모로 킨츠기 클래스를 열고 있었다. 하지만 인스타 가게들이 그러하듯 인스타로 모집한다는 뭔가를 시간과 기한을 맞춰서 신청하는 자체가 너무 어려웠다.

심지어 한 달도 되지 않아 더 이상 해외로 갈 수조차 없는 시대가 열려버렸고, 킨츠기를 해준다는 국내 업체에 문의를 해보니 찻잔보다 킨츠기 비용이 더 나올 판이었다. 깨진 찻잔을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한 채 그 상태로 보관만 하며 몇 달의 시간이 흘렀다.


그러다 네 다음... 또 깨진 찻잔이 생기게 된다. 이번엔 개완이었다.

나는 개완을 쓰면서 늘 찻물을 줄줄 흘리는 편인데, 흘린 찻물 때문에 받침 접시와 몸체가 살짝 달라붙을 때가 있다. 그 상태에서 아무 생각없이 휙 들다보니 작고 가벼운 접시가 쓱 딸려올라오다가 차판 위로 떨어지면서 받침 접시에 엄지손톱 절반만한 크기의 빅사이즈로 이가 나가게 된 것이다. 토림도예의 빈티지블루는 손에 가장 익은 돌잡이... 아니 첫 개완이었으므로 이것만은 어떻게든 실용적 이유로 고쳐보고자 했다. 언제까지나 자리가 나지 않는 원데이 클래스를 기다려볼 수는 없었다. 오타쿠 경력 20년, 일본어 해봐야 뭐하겠노 유튜브가 해결해주겠지 하는 마음으로 재료부터 사기로 했다.


킨츠기 방법 : 혼킨츠기와 간이 킨츠기

킨츠기를 하는 방법은 두 가지로, 혼킨츠기本金継ぎ와 간이 킨츠기簡易金継ぎ가 있다. 혼킨츠기는 진짜 합성 옻으로 붙여서 천연 재료만으로 작업을 한다. 다만 이 방법은 그릇이 붙는 데 시간이 많이 걸리기 때문에, 간이 킨츠기라는 좀 편하게 접착제로 붙여서 공업용 퍼티로 틈을 메운 다음 위에 옻과 금분을 섞은 물감을 칠하는 방식도 있다. 유튜브에서 소개하는 방식은 대부분 혼킨츠기이고, 킨츠기 수첩에서는 간이 킨츠기 방법을 소개하고 있다. (그래서 좀 더 헷갈린 점도 있다)

심지어 내 경우엔 일본에서 재료가 도착하고 나서야 느긋하게 유튜브로 金継ぎ를 검색해 보았는데, 옻으로 붙이려면 습기가 많고 더운 환경의 상자에 몇 일씩 둬야 한다는 거다. 와씨 한국인 성질 급해서 이거 못한다... 하고 급하게 간이 킨츠기로 방향을 선회, 로켓배송으로 와랄랄라 나머지 재료들을 받았다. 막상 해보고 나니 이 방법이라면 킨츠기 수첩에 안내된 방법을 따라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해, 굳이 유튜브를 볼 필요가 없었다.


킨츠기 재료 구입하기

킨츠기는 재료 구매가 절반이다. 다행히 일본 아마존은 (나에게) 익숙한 플랫폼이고, 해외 직배를 해주는 샵이 있어서... 이때까지만 해도 타오바오에서 몰테일과 함께 생쇼를 하게 될 줄은 몰랐던 상태로 배송대행은 귀찮으니까 직배가 되는 스토어에서 주문했다. 아마존은 직접 재고를 관리하고 배송하는 중앙집중형(?) 쇼핑몰이지만 개인 판매자들도 일부 입점해 있다. 개인 판매자들의 해외배송비가 좀 비싸긴 하지만 꼭 일본에서만 사야 하는 재료만 따로 주문했다. 지금 생각하면 그냥 배대지 써서 풀 세트를 사도 상관은 없었을텐데 싶기도 하고 그렇다.


풀세트로 사는 경우 (혼킨츠기)

Tsugukit - 아마존

이전에는 낱개 제품으로도 한국에 배송을 해줬는데, 요즘은 전체 키트만 배송해준다. 아마존으로 사도 배송료는 5천엔. 유튜브 영상들을 여러 개 보니 공통적으로 혼킨츠기를 할 땐 보릿가루 및 여러가지 한국에서는 안 파는 가루들이 필요한 모양이므로, 혼킨츠기를 하고 싶다면 풀 키트를 사는 게 유리하겠다.

Tsugukit - 공식 사이트 https://shop-kintsugi.com/kit/ 

공식 사이트에서 사도 해외로도 배송해주긴 하는 모양인데, 배송료 5천엔은 역시 좀 무시무시하다....

킨츠기 용품은 세트로 비싸게 파는 경우가 많지만, 이 업체에서는 해외향으로도 팔고 있고 영어 자막이 지원되는 유튜브 영상을 제공하고 있다. https://youtu.be/VmNc5I1ozj0


낱개로 사는 경우 - 꼭 일본에서 사야 하는 재료

킨츠기 수첩에 설명된 간이 킨츠기 방법으로 한다면 금가루 이외에는 모두 한국에서 사도 무방하다. 처음에는 이게 엄청 헷갈려서 애를 먹었다.

금가루 金粉

킨츠기의 킨은 금이므로 진짜 금이 필요하다. 금가루만 0.3g에 3980엔에 샀었지만... 내가 샀던 데선 지금은 풀 세트로만 팔고 있다.

金継ぎ 金粉 으로 아마존에 검색하면 몇 가지 제품이 나오는데, 30g에 1400엔 하는 건 금분 느낌을 내는 합성 가루이고 진짜 금가루는 1g에 1만 엔쯤 하는 듯. 제품 상세설명에, 合金比率:4号色 純金94.43% 純銀4.90% 純銅0.66% 이런 식으로 합금 비율을 표시해주는 게 진짜 금이다.

【工芸・模型・絵画に】金粉(消粉)4号色 1g【日本製】 https://www.amazon.co.jp/dp/B008O0MZ6A/ref=cm_sw_r_cp_api_glt_i_YVKF8G8F6A2XGY8273SS


낱개로 사는 경우 - 한국에서 사도 상관없는 재료

우루시 (합성 옻)

시간이 많이 드는 혼킨츠기, 간단한 간이 킨츠기 어떤 방법을 사용하든 꼭 필요하다. 혼킨츠기에서는 접착제 용도로, 간이킨츠기에서는 물감 용도로 사용된다. 낚시용으로 많이 쓰이므로 한국에서도 팔고 있다. (앗 나는 아마존에서 비싸게 샀는데..!)

우루시 희석제

간이킨츠기에서는 금과 우루시와 이 용액을 물감처럼 섞어 붓으로 발라준다.

퍼티

간이킨츠기에서 깨진 조각이나, 이가 나간 부분의 틈을 메우는 데 사용된다.

사포

킨츠기에서 메우거나 붙이고 칠한 부분을 긁어낼 때 사용한다. 어떤 방법의 킨츠기를 하든 여러 가지 굵기의 사포가 필요하므로, 세트를 사면 편리하다.

순간접착제

간이킨츠기에서 합성 옻 대신 사용하는 접착제. 손이 야물지 못해 엄청 잘 흘리는 편인데, 작은 것을 사용하니 편했다.

스포이드

어항 청소용 큰 걸 사고 망한 뒤 전자담배 제조용 스포이드를 빌려 썼다.

세필

0-1호로 무엇을 사든 무방하다.


간이 킨츠기 해보기

개완 접시 이 나간 부분 메우기

이가 빠진 부분을 공업용 퍼티로 메우고, 물을 묻힌 사포로 사포질을 해서 모양을 맞춘다. 그리고 그 위에 옻과 옻 희석용액, 금가루를 섞은 물감을 쓱쓱 칠해주면 완성된다. 식용유를 묻혀 살살 문지르고 이틀쯤 건조해주면 완성된다.

사실 좀 금이라고 하기에는 결과물이 좀 누런데, 내가 산 우루시는 혼킨츠기용으로 보릿가루라도 섞어 만들어진 것인지, 우루시 액체 색깔이 애초에 갈색이었다. 원래 옻 색이 이런가 했더니... 책에는 안 그렇다. 그래서 색에 영향을 미친 것일 지도 모르겠다. 아 좀 망한 듯.... 하지만 딱히 입에 닿는 부분도 아니고, 원래 기물의 톤앤 매너와 잘 맞았기 때문에 그래도 나름 성공적으로 작업을 완성할 수 있었다.


깨진 찻잔 조각 이어붙이기

결론부터 말하면, 이건 좀 실패라고 할 수 있다. 깨진 조각을 맞춘 뒤 사이사이의 틈에 퍼티로 메운 뒤 퍼티에다가 색을 입혀야 하는데, 찻잔의 깨진 부분이 온전하게 남아 있어서 틈이랄 게 없었고 따라서 퍼티로 메울 수가 없었다. 손톱 절반만한 부분보다 이어붙인 그릇의 금 사이사이를 칠하는 것도 당연히 난이도가 훨씬 높았다.

비싼 금분을 쓴 티가 전혀 안 나는 결과물.

결국 비싼 금분을 쓴 티가 영 안 나는 애매한 결과물이 되었고... 처음에는 금분을 팍 부었지만 두 번째 작업물이 되니 금분이 아깝다고 살살 넣어서 이렇게 된 것 같기도 하다. 어쩔 수 없이 뜨거운 찻물이 직접 들어가는 부분이다보니 접착제 및 퍼티를 쓴 걸 실사하기도 기분이 좀 그랬다. 결국 그래서 찻잔의 모양을 살렸다는 데 의의를 두고 진열장에서 감상만 하고 있다. 그래도 금분 조금 남았으니 화이팅!


유튜브를 보니 일본인들도 금분은 워낙 비싸다보니 은분으로 대체하기도 하고, 그냥 옻으로 붙이고, 그 자리에 색깔이 나는 뭔가를 칠하는 것으로 만족하기도 하는 모양이다.(1g에 10만원이라니...) 실제로 야매로 해보니 여전히 전문가에게 배우면 더 좋을 것 같기도 한 영역이지만, 인스타 수강신청을 할 자신은 없다. 그래서 다음에 또 불상사가 발생하면 남아있는 재료로 내가 산 우루시 제조사에서 권장하는 혼킨츠기 방법으로 힘내보기로 했다. 아니 그냥 4천원 주고 한국에서 투명 우루시를 사는 게 나을 지도 모르겠다. 물론 힘낼 일이 없도록 조심조심 잘 쓰는 게 최선일 것이다.


차를 우리고 마시며 함께 시간을 보내다보면, 다기가 단순한 그릇 이상의 의미를 가지게 될 때가 있다. 그래서 어떻게 해서든 버릴 수 없는 함께했던 시간을 살릴 수 있는 방법이 있고, 그래서 공을 들여 재생된 상태로 그 기물과의 시간을 이어나갈 수 있는 방법이 있다는 자체가 너무 멋진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편으로 아무리 좋은 걸 사도 깨지면 완전 끝인 그릇덕질에 - 캐주얼 게임에 비유하면, 마시고 캐릭터 라이프 게이지 하나 복구되는 드링크를 가지고 시작하는 느낌으로, 익혀 두면 든든해 좋은 기술이고, 생각보다 어렵지 않았다. 재료가 웬만한 찻잔 및 차호/개완보다 비싸긴 하지만 정말 소중한 기물이라면, 깨진 기물에 킨츠기를 한번쯤 시도해 보는 것도 좋은 경험이 되지 않을까.


+) 추가 : 킨츠기 클래스 소개

완전 마이너 취미라고 생각했는데, 최근 킨츠기 수요가 좀 늘었는지 무려 클래스101에 킨츠기 클래스가 개설되었다. https://class101.net/products/IayxRHxMEmswnM3gxO3H 총 35만원인데, 이 글에도 소개되었듯 풀세트 재료가 15만원이 넘고 배송비도 있기 때문에 그 가격을 감안하면 10만원대 후반대 정도로, 그 가격에 배우고 싶은지에 따라 결정하면 될 것 같다. 인스타 계정들을 통해 진행되는 원데이클래스 같은 경우 재료비 포함 10~15만원, 2회 이상인 경우 20만원 이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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