윗지름 30cm, 10L가 넘으면 그때부터 문제
식집사가 된 지도 어느덧 1년 8개월, 처음에는 죽을까 걱정이었던 식물들도 어느새 무럭무럭 자라 부동산비를 청구하고 싶을 정도의 사이즈가 되었다. 토분은 제법 무겁기에 좋지 않은 허리 건강을 생각하여 화분 지름이 20센티가 넘으면 으레 가벼우면서도 옆구리에 긴 구멍이 뚫려 있어서 통풍이 상대적으로 되는 플라스틱 슬릿분을 사용하곤 했었다.
그러나 지름 24센티를 넘어가면 더 신나게 뿌리가 성장하였고… 슬릿분 크기는 24호(윗지름 24cm, 높이 25cm)까지밖에 없다. 제조사에서 밝히고 있는, 이 화분이 담을 수 있는 흙 용량은 7.5L이다. 아마 식물의 뿌리를 포함하지 않고 흙만 담았을 때 그 정도를 담을 수 있다는 뜻일 것 같다.
이 사이즈를 넘으면 야마토사의 슬릿분 가장 큰 사이즈- 10호였던가… (12,500원)를 쓸 수 있다. 색상이 완전 흰색은 아니지만 다른 슬릿분/토분들과 잘 어울리는 색상이다. 윗지름은 30cm, 높이는 28cm, 제조사 오피셜 흙 용량은 10L이다.
이 사이즈를 넘으면 1만원 언저리로 사서 막 쓸 수 있으면서, 옆구리에 구멍이 뚫려 있는 플라스틱 화분(통칭 슬릿분)은 없게 된다. 윗지름 40cm에 30리터를 담을 수 있는 슬릿분은 3만원이 넘어 막 쓰기엔 좀 부담스러운 가격이다. 하지만 없으면 수제로 만들면 되죠? 그래서 만들어 보았다.
다이소에서 5천원짜리 인두기를 사면 비교적 저렴한 중국산 플라스틱 화분의 옆구리에 수제 슬릿을 만들 수 있다. 이렇게 커버할 수 있는 용량은 30L까지이다.
하지만 식물들은 어느 이상으로 커지면 뿌리가 깊어지기도 하고, 좀 더 저렴하게 깊은 화분을 사용해보고 싶어서 그럴싸한 사이즈의 쓰레기통을 사서 바닥까지 구멍을 직접 뚫어보았다.
바닥과 옆구리에 전부 직접 구멍을 뚫다보니 나중에 옆구리에 긴 라인을 뚫을 쯤에는 내가 지쳐서 비뚤게 뚫고 있고, 너무 많은 구멍을 뚫다 보니 플라스틱 녹는 냄새에 인간이 질식할 것 같다. 그리고 맞는 사이즈의 화분받침이 없어서 물받기가 좀 애매하다.
큰 플라스틱 화분은 슬릿이 아니라도 비싼 경우가 많다. 그래서 검색을 해보면 다이소 리빙박스나 쓰레기통을 활용해 화분을 만들어 쓰는 경우가 많은데, 실제로 만들어 써보니 화분으로 만들어진 것보다 물마름 속도가 약간은 느린 인상이 있다. 아무래도 화분으로 만들어진 것들은 화분 바닥에 굽이 있거나 안쪽이 움푹 들어가 있어 바닥 통풍을 노려볼 수 있지만, 아무래도 수제 화분은 그런 게 없어서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많이 쓰는 저렴한 플라스틱 화분 중 GARDENING이라는 글자가 띠 형태로 인쇄된 것과, 카네야의 EU 슬릿분과 동일한 디자인으로 흰색 필기체의 제조처가 인쇄된 화분이 있다. 화분에 글자가 인쇄된 건 싫다는 건 취향입니다. 존중해주세요.
옆구리에 구멍이 뚫린 마술화분 또한 고민하기만 하고 써보지는 못하고 있다. 시각적 테러를 감안하고 겨울만 아니면 써보고 싶지만, 가정의 실내에서 물과 흙이 옆구리로 터져나오지 않게 쓰기는 좀 어렵지 않나 하는 중이다. 봄이 되면 베란다에서는 쓸 수 있을테니 한 번쯤은 시도해볼 것 같다.
도 존재한다. 하지만 윗지름 31cm를 넘어가면 가격도 3만원을 넘고 내가 들 수 없는 무게가 되고 만약에 버리게 되면 대형 폐기물이 되니 그것도 일이라서 못 사고 있다.
식물을 크게 키워보니 윗지름 30cm, 용량 10리터를 초과하는 대형화분을 찾는 여정은 마음에 드는 완벽한 것을 찾는 게 아니라, 내가 가지고 있는 모든 기준을 버리고 최대한 식물과 식집사가 덜 괴로울 수 있는 타협점을 찾는 것이었다.
1. 덜 무거울 것
2. 덜 못생길 것
3. 최대한 통풍이 되면서 실내에서 곰팡이가 생기지 않을 것 (부직포 화분은 여기서 탈락이다.)
4. 가격이 개당 2만원 이하일 것 (화분은 소모품이고 이 이상 돈을 쓰기엔 너무 많은 식물을 기르고 있다.)
뿌리에 관대한 게으른 홈가드너는 윗지름 40cm, 50L까지만 해볼 셈이지만, 나도 잘 모르겠다. 모르겠고, 얘들아 이제 월세내라.
칼라데아는 덩치가 커지면 잎도 잘 안 탄다. 다만 뿌리가 잎과 거의 1:1이라고 할 정도로 커질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