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호이안에서 티룸을 가다

이유 : 재작년에 산 차가 내가 우리면 너무 써요

by 혜림

23년 가을에 베트남에 가서 호기심에 현지 차 브랜드를 찾아다니며 샀던 얘기를 브런치에도 썼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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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두아 차(저렴한 판단잎 가향차)는 일찌감치 다 마셨고 녹차의 쓴맛까지도 어떻게… 견디고 다 마셨다. 베트남 차는 희한하게 떫은 게 아니고 쓴 약처럼 쓰다. 그래서 설탕을 치는 걸로는 해결되지 않는다. 우유랑도 잘 어울리지 않는다.

모든 차가 한국 물을 만나면 약간 떫은 맛이 도드라져서 그건 어느 정도 감수하고 약간의 떫음도 나름 즐기는 경지에 왔지만 쓴 맛은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심지어 tuyet차랑 co thu차는 냉침을 해도 썼다. 이럴 수가 있나!!! 그래서 커피를 못마셔 찻잎 한 조각도 낙엽으로 보낼 수 없는 나에게 차 400g을 묵히는 사상 초유의 위기가 찾아왔다.


반려인의 이직으로 휴일 텀이 생겨서 2.5년만에 다낭에 다시 갈 수 있게 되었다. 현지인이 이렇게 미친듯 쓴 맛을 먹고 있을 리 없으므로(롯데마트에서 샘플로 마신 차도 이정도 쓰진 않았고) 겨울에 간 김에 어디 티하우스라도 가서 물어볼 마음을 먹게 되었다. 사실 다낭은 경기도 다낭시라고 할 만큼 한국인에 최적화된 관광지이지만(내가 베트남에서 준코를 다 봤다…) 30km정도 떨어진 호이안이라는 도시는 분위기는 교토인데 야시장에서는 짝퉁 패션제품을 팔고있는(….) 뭐 그런 곳이다. 그렇다 보니 다낭보다는 티하우스도 많았고 1월 초다보니 꼭 에어컨 차지 내는 가게에만 갈 필요가 없게 되어 구글 지도에서 티하우스를 물색하다가 괜찮아보이는 곳을 찾게 되었다. 물론 혹시나 해서 두군데 후보를 더 찾아놨지만 여기가 1순위라 자동차 없는 거리 초입에 내려서 아묻따 여기부터 찾아갔다. 그만큼 집에 2년 묵은 차가 몇백그람 있다는 건 나에게는 심각한 문제였다.

https://maps.app.goo.gl/WhjSPhW2JHWw7RU49?g_st=ic

분위기 좋은 찻집에 젊은 주인장이 맞아주셔서 바에 앉아 일단 집에 있는 shan tuyet 아이스티를 하나 시키고 홀짝홀짝 마시면서 번역기를 통해 이것저것 물어보았다.

대략 이런 분위기.. 따뜻한 남쪽나라 좋아.

나 : 내가 2년 전에 co thu차랑 shan tuyet차를 잔뜩 샀는데 어떻게 우려먹어도 쓰다. 어떻게 해야되나?


우리는 서로 안되는 각자의 언어로 열심히 내가 산 차가 무엇이고 이집의 어떤 차와 대응하는 지 한참 찾았다.


주인장 : shan tuyet 차는 녹차고, co thu차는 백차다. 양쪽 다 80도 정도로 낮은 온도의 물에 우려야 한다.

나 : (그러고보니 뭔지도 모르고 샀네…) 냉침도 쓰다. 1리터에 몇g 넣고 몇시간 둬야 되나?

주인장 : 1리터에 7g 넣고 8시간이다.

나 : ….!

(서양차 중국차 가리지 않고 100ml당 1g이 국룰이라 전혀 의심하지 못했음)

그리고 따뜻한 차로 co thu차를 시킨 뒤 어떤 기물로 어떻게 우리는 지 열심히 봤다. 말린 생강을 티푸드로 주셨고 정갈한 다기에 우려주심.

co thu차

약간의 삽미가 있지만 그렇게 힘들지 않았다. 약간의 향긋한 내음도 돌았다. 중화권 우롱차를 마시다보면 점점 진한 맛을 좋아하게 돼서 찻잎을 많이 넣고 찻물을 적게 넣은 다음 점점 뜨거운 물을 넣고 짧게 우려마시게 되는데…. 베트남 차는 그렇게 마시면 고삼차 된다. 그래도 설명서 따라 90도는 맞췄던 것 같은데.


아무튼 설명을 들어보니 200ml정도의 찻주전자에 3-4g 넣고 80도의 물에 20초, 40초, 1분… 이런 식으로 우려서 마시면 되는 것 같았다.


물은 특별한 걸 쓰지는 않는 것 같아서 딱히 물어보지는 않았고… 중국 가서도 그렇고 요즘은 늘 찻집 가면 번역기로 말이 많아진다. 아무튼 외국에서 남들이 멀쩡히 마시는 현지 고급차를 사왔는데 맛이 너무 떫거나 쓰면 99.8% 우림법 문제라는 것을 이미 잘 알고 있기에….


그리고 집에 와서 산설차shan tuyet부터 빨리 먹어야 한다는 생각에 미쳤다. 녹차는 신선도가 생명이라 아무리 밀봉했어도 2년 반 지난 녹차는 냉침으로 빨리 먹어 없애야 하는 것이다.

대충 10g을 1.5리터 넣었더니 비슷한 농도의 맛이 났다. 좀 오래 둬서 색상이 진하다 싶으면 물을 좀 더 부어 맞췄다.

co thu차를 냉침해보았다

얼죽아의 민족이라 나도 식후 물 대신 냉침차를 먹는 습관이 있는데 co thu차도 shan tuyet차도 그럭저럭 마실만 했다. 그리고 2년이 지났으니 요즘 한국인 여행자가 모두 사오는 다낭템에 약간 변화가 생겼는데, 사진 왼쪽의 망고와 패션프루트 청을 사오는 게 유행이다. 옆을 잘 살펴보니 얼음 2/3컵, 청 두숟갈…? 정도에 녹차를 부어 섞는 레시피가 있어서 따라해봤더니 제법 베트남 카페음료같고 맛있었다. 단순한 맛에 약간의 레이어가 생겨서 그런 듯 하다. 하지만 먹짱 반려인이 탄산수에 타먹는 걸 좋아해서 망고는 한컵 타먹으니 있었는데 없었습니다. 패션프룻보다는 망고가 좀더 차와의 궁합이 좋은 듯 하다.

이… 이제 shan tuyet을 다 비우는 길 뿐이야! (백차는 뭐… 좀 둬도 먹는 데는 문제 없음이다.)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녹두고와
시장과 마트표 저렴이차를 샀다. 삼두아차는 마트에서도 안팔아서 현지인이 주로 가는 전통시장 꼰 시장에 가야 했다.

말레이시아도 그렇지만, 동남아시아 차는 찻잎 그 자체보다는 생활차 가성비가 좋고 향신료 가향이 절묘함이 있는 것 같다. 물론 어… 말레이시아도 베트남도 차밭이 있기 때문에 녹차나 홍차도 최상위 등급… 한국에서 100g 2만원 정도 하는 거 사면 에지간한 미국/유럽 브랜드보다 가성비가 낫다. 입문이야 유럽/미국차로 하게 되지만 자꾸 마시다보면 그들의 차가 제국주의 식민지의 산물이라는 걸 알게되고 가향을 안한 차를 마시고자 한다면 차 산지의 로컬 브랜드를 찾는 게 가격 대비 200-300% 좋은 차를 구할 수 있는 듯 하다. 중화권, 스리랑카, 말레이시아, 베트남, 인도의 차를 마시며 하게 되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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