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치 각 음식점의 김치가 다 다른 것처럼
베트남 차에 관심갖게 된 계기가 판단잎차이긴 하지만, 이 차 몇 가지를 데려와 막상 데려와서 마셔 보니 놀랍게도 향은 비슷..?하되 맛이 다 제각각이었다. 어떤 건 버터 맛 같은 게 강했고 어떤 건 좀 마일드했고 어떤 건 묘하게 들쩍지근하고 어떤 건 커피 같다.
베트남에서 내국인에게는 ”짜 삼두아“ 외국인에게 팔 때는 Pandan Ginseng Tea라고 대충 소개되지만 인삼도 아니고 바나나나 파인애플 잎도 아니며 “판단”이라는 동남아시아에서만 사는 식물과 여러 가지 지역 향신료의 가향이라고 한다. 위키피디아에 의하면, 음식에도 널리 쓰인다고. https://ko.m.wikipedia.org/wiki/%ED%8C%90%EB%8B%A8_(%EC%8B%9D%EB%AC%BC)
문제는 여러 “향신료”의 가향이기 때문에… 각 음식점마다 김치 맛이 다른 것처럼 향은 비슷해도 특유의 맛이 조금씩 다 다른 것으로 보인다.
다만 공통적인 부분은 베이스가 되는 녹차 자체를 등급이 낮은 저렴한 것으로 쓴다는 것. 냉침을 하거나 낮은 온도의 물에 마시면 좀 이상한 잡맛이 난다. 우리네 90년대 결명자차처럼 주전자에 팔팔 끓여서 냉장고에 식혀 먹거나, 서양식 차 우림법으로 끓는 물 100ml당 1g을 2분 정도 우려 먹는 것이 나에게는 베스트였다.
내가 여행에서 산 판단잎차는 세 가지였다.
1. 탄 크엉 샤 500g 45000동(2500원 정도)
2. 특산품점에서 구매한 350g 티백 65000동 (3500원쯤…)
3. Tra Viet 100g 142000동 (7000원 언저리)
다낭이 판단잎차 산지임에도 불구하고 딱히 현미녹차나 율무차 결명자차 고급품이 없는 것처럼… 외국인에게 팔 생각 없이 구석에 대충 막 쌓여 있는 경우가 많다. 탄크엉샤는 대리점이 전국 단위로 있는 브랜드인데, 구글 맵을 찍어 찾아가봤더니 외국인 손님이 왔다고 허겁지겁 에어컨도 틀어주고 차판에 있는 주전자로 시음도 해주는 고마운 곳이었다. 하지만 로컬 베트남 사람 입장에서 녹차나 Lotus Tea(연자심차)는 외국인에게 자랑할만 해도 판단잎차는 이걸 왜…? 같은 느낌인 듯.
하지만 베트남인이여 외국인에게는 독한 향수 엎은 것 같은 꽃차 말고 판단잎차가… 구수하구… 달구…. 더 특이하고….. 아무튼 판단잎차를 좀 고급화해서…. 파시는 게 어떤지…. 뭐 그런 생각이다.
두 번째 차는 판단잎차가 “다낭의 특산품”으로 분류되어 미케 비치의 특산품점에 건어물과 새우젓 옆에 팔고 있다고 하여 가서 사본 것. 역시 외국인이 굳이 왜 이런 것을 찾아와 사는지..? 이런 리액션과 함께 구매했다. 뜯어보니 티백이었고 종이의 품질은 썩 좋아보이지 않아 조나단처럼 찢어서 넣어야 할 듯 했다. 서양 홍차로 따지면 CTC등급의 잘게 부순 찻잎을 사용하고 있다. 엄청 진하고 떫어서 물과 설탕.. 연유를 많이 넣어 먹어야 할 것 같다.
마지막으로 다낭 롯데마트에서 만난 Tra Viet의 판단잎차. 이곳만이 외국인에게 판단잎차 수요가 있다는 것을 아는 듯 했고 ㅋㅋ 하지만 그럼에도 기본적으로 이 차는 저가품이다. 왜냐면 여기서 차 네 통을 샀는데 안내지가 판단잎차만 그… 저렴한 종이였기 때문이다. 아무튼 팔팔 끓이지 않고 그냥 우려먹어도 저품질 차 특유의 잡맛이 없고 다른 차들보다 기본적으로 마일드한 편이다.
처음 차문화대전에서 사서 마셨던 그 차하고도 뭔가 다른 것 같은 것이… 쉽다고 생각했는데 예상보다 좀 어려운 차다. 다낭 지역의 음식점에 가면 기본으로 물 대신 이 차가 나오는데 그 맛도 당연히 각각 다르다.
다낭에 갈 때 반려인이 워낙 급한 스케쥴을 요구했던 지라 여행의 숙소 선택지가 별로 없었다. 그래서 도심의 일본계 리조트에 묵게 되었고, 여기는 매일 아침 조식에 커피나 차를 줬다. 커피를 못 마시니 당연히 차를 요청했는데, 세상에 이 아이스티가 너무 맛있어! 그래서 4일 내내 달라고 하고 리필해서 마시고 집에 와서 또 흉내내서 만들었다.
얼음컵에 판단잎차를 적당한 농도로 넣고, 라임을 1/8개 짜서 넣은 뒤 라임 조각을 넣어주면 되는 간단한 레시피다. 라임과 판단잎의 향이 너무 잘 어울린다! 희한하게도 이 레시피에 가장 적절한 차가 의외로 탄크엉샤에서 산 저렴한 잎차였다. 티백은 너무 진하고 떫게 우러나와 설탕을 넣어야 하고, 고급차는 너무 마일드하다는 느낌.
판단잎차(삼두아차)는 너무 큰 봉다리로만 파는 “내국인용” 상품이지만 베트남 사람들이 내세우는 차보다도 개인적 취향으로는 더 마음에 들었다. 크게 비싸지 않으니, 이 차의 신기하고 복잡하고 그윽한 향과 맛을 츄라이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한국인이 많이 가는 한 시장에도 많이 팔고 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