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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림 Sep 12. 2023

경기도 다낭시에서 베트남 차 찾기

비록 아는 베트남어는 trà xanh(녹차)밖에 없을 지라도

베트남이 있는 동남아시아에도 차가 생산되고 있다는 것을 인지한 건 작년의 차문화대전이었다.(지금 생각해보면 인도와 중국 사이에 있는 땅에 차를 재배하지 않을 리가 없겠으나..) 베트남인이 하는 부스에 가서 차를 마셔봤는데 특이하고 달큰한 풍미가 매력이 있었다. 그것과 각설탕처럼 생긴 특이한 과자를 먹어봤는데 이게 맛이 있네? 홀린 듯 한 봉지에 5천원이라는 충격적인 가격의 차를 한 봉지 달라고 하고 이 과자는 안팔아요? 하니까 재고가 다 떨어졌다고 했던 게 나름 관심의 시작이었다.


중국이나 일본, 서양 차는 직구라도 하지… 베트남까지 가서 차를 구해다 먹는 수요는 거의 없어서 한국에서 온라인으로 사다 먹는 건 불가능에 가까워보였다. 일단 파파고를 사용해봤을 때, 차 봉지의 베트남어를 인식하고 번역하는 품질도 형편없었다. 대체 이게 무슨 말이람? 이럴 줄 알았으면 5천원밖에 안하는 걸 많이 살 걸… 마치 스트리트 푸드 파이터의 백종원처럼 중얼거렸다.


그리고 이듬해인 올해. 왠지 가족들이 다 베트남 다낭에 한번씩 다녀왔다. 한국 사람들이 그렇게 많아서 경기도 다낭시 감각으로 다녀온다나? 그래서 올해 유독 야근이 많았던 반려인이 갑자기 3일 뒤에 해외 휴양지를 가고 싶다고 했을 때 “다낭 갈래?” 했는데 이례적으로 OK가 나왔다. 일본어, 영어가 통하는 곳이 아니면 패키지를 껴야 가겠다는 BOSU적 감각인 사람에게 무슨 바람이 분 것일까? 아무래도 한국사람 많이 가는 곳에서 저렴한 물가를 체험하고 싶다는 마음이 있었던 것 같다.(그래서 식물 서비스 개발을 의도치 않게 잠시 쉬게 되었다.)


하지만 나는 왠지 남들 다 가는 곳만 가면 여행간 기분이 들지 않아, 숙소와 항공을 예약하고는 로컬 찻집 찾을 궁리나 하고 있었다. trà xanh는 녹차고(짜 사이.. 정도로 읽는 모양인데 대충 나만의 이상한 발음기호 체계로 짜샤인가보구만… 이렇게 외움) hồng trà는 홍차였다.(홍쨔… 느낌으로 읽힌다.) 대만 정도를 제외하면 대부분의 아시아권 나라에서 녹차 > 홍차 > 우롱차 > 기타차 느낌으로 소비되기에 구글 맵에 tearoom, trà, hồng trà, trà xanh 등의 검색어로 숙소 근처에 뭔가 있나 검색해보았다. 와 없지는 않네! 티룸 몇 군데와 차 판매점 몇 군데를 저장했다. 베트남은 워낙 커피가 유명하기도 하고, 다낭 시내의 대부분 스팟을 구글 맵으로 찍어보면 늘 한국인 후기가 있다. 하지만 티룸이나 차 판매점 만큼은 그렇지 않았는데, 한국에서는 역시 차가 대중적이지 않아 그러려니 생각했다. 그리고, 그럼에도 용기있게(?) 하루 정도는 여행답게 실패를 감수하고 다녀보기로 마음먹었다. 하지만 가 보기 전에는 알 수 없었던 것들이 많았다.


늘 더운 나라에서의 차 문화

다낭의 9월은 덥고 습해서 도무지 야외에 오래 있을 수 없었던 데다 한국 사람이 몰리는 관광 스폿 말고는 대체로 냉방이 없었다. 더운데 냉방이 없을 수 있다니… 심지어 냉방이 있는 곳도 한국처럼 시원하다 못해 춥다는 느낌이 드는 온도가 아니었다. 아무리 넓은 실내라도 그만큼을 커버하는 큰 에어컨이 존재하지 않는다. 냉방을 한다고 해서 애써 찾아가면, 어디든 작은 원룸에 있는 벽걸이 에어컨을 사용하고 있다. 아무리 냉방을 해도 27도 밑으로는 내려가지 않는 느낌?

알고보니 베트남은 전기 공급이 안정적이지 않은 데다 전기료가 임금/물가 대비 너무 비싸기 때문에 에어컨 차지를 받을 수 있는 한국인 유명 식당 정도를 제외하면 전기를 막 쓸 수가 없다고 한다.


따라서 이 나라에서 다도 어쩌구… 차를 우려낸 따뜻한 물에서 나오는 섬세한 맛과 향… 이 모든 것은 사치의 영역이다. 이 도시에서 제일 시원한 리조트 안에서도 따뜻하게 차를 마시기엔 더웠다. 그래서 애써 찾아둔 티룸에 가는 것을 생존을 위해 포기하고 말았다.


석회질의 물

리조트 수돗물의 TDS를 측정해보았다.이런저런 물 외의 성분이 한국 수돗물의 두 배 이상 포함되어 있다.

심지어 이동네는 수돗물도 석회질이 포함되어 있아 한국 일본 대만과 달리 그냥 마시면 안된다. 차를 일반적인 방식으로 마시려면 웬만하면 정수한 물이나 생수를 사용해야 한다고.


90년대 한국의 보리차처럼

그래서 베트남에서는 저렴한 차를 많이 구매해서 많이 끓여, 냉장고에 보관하거나 얼음을 넣어 식혀 뜨겁지 않은 온도로 마신다.(그 와중 한국인의 아이스아메리카노처럼 차갑지는 않음) 90년대 각 가정에서 보리차를 끓여 한김 식혀 델몬트병에 넣고 냉장고에 두었던 것을 생각하면 된다.


그래서 어느 음식점에 가든 물 대신 끓여서 식힌 차가 나오지만, 비싼 고급차를 어떤 다구에 몇그람 넣고 몇도의 물로 우리면 맛과 향이 레이어드돼서 풍부해지고… 이런 방향의 소비는 거의 전개되지 않는 것으로 보였다. 애써 찾아간 차 전문점에서도 kg당 얼마짜리 차로 커뮤니케이션이 되는 식인데, 그럼 베트남 사람들은 차를 kg단위로 사…?(동공지진) 하지만 이런 기후에 에어컨 안못틀고 살다 보면 나라도 고급 차 어쩌구를 다 끊고 10리터씩 차를 끓여 물 대신 마시게 될 것만 같다. 이해한다.


베트남 차의 매력

대만 차를 이야기할 때 떡볶이 같은 차와 파인 다이닝같은 차에 대해 이야기한 적이 있다. 저렴하면서 매력있는 단순 강렬한 풍미가 확 치고 들어오는 차, 그리고 섬세하게 우려서 하나하나 켜켜이 쌓이고 시간차로 왔다 가는 맛과 향을 음미해야 하는 비싼 차들이 있다. 보통 중국, 타이완, 일본에는 이 보급품으로서의 차와 고급품으로서의 차 소비가 전부 두텁다. 한국은 그렇지 못하기에 나는 사대주의자(?)가 되어 전세계의 차를 탐험하게 되었다.


베트남 차는 마라엽기떡볶이같다. 어디에서도 쓰지 않는 독특한 가향과 이색적인 풍미가 매력적이다. 우리는 데 크게 생각하지 않고 훌훌 넘겨도 괜찮다. 나름 아시아권 차의 퀄리티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다른 지역의 차에 비해 가격이 싼 것도 매력적이다. 더울 때 달다구리랑 마시기 궁합도 괜찮다.

리조트에서 땀을 뻘뻘 흘리며 뜨거운 차와 월병을 먹었다.

그래서 가장 대중적인 판단잎 가향한 녹차와 베트남식 타이 응우옌(베트남의 차 산지 이름이다) 녹차, 보이차로 유명한 중국 운남성 바로 밑의 고산지대에서 생산되는 고수차를 중심으로 집에 데려와 가챠(…)를 돌려보기로 했다. 왜 가챠인가? 시음을 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외국인 입장에서는 비싼 차가 좋은지 차이가 있는지 없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아직 외국인에게 자기네 차를 팔 생각이 별로 없어서 그런 듯.


롯데마트에서 시작되는 남의 나라 차 탐구생활

베트남은 구글 지도 정보나 좌표가 정확하지 않아 로컬 판매점을 찾아다니기 생각보다 어려웠다. 어디 가보면 없는 경우도 부지기수였다. 그렇게나 애써서 베트남 차 가게들을 찾아가 봤더니 에어컨이 안 틀어져있는 가게도 있을 뿐더러 공통적으로 시음을 안 시켜준다. 하긴 결명자차 보리차 현미녹차를 누가 시음시켜주겠나 하하하하하하하(….)

남북이 긴 베트남은 북쪽의 하노이 및 차 생산지들이 있는 지역들 말고는 차보다 커피가 대중적이라고 한다. 그래서 내가 사온 차들의 생산 회사도 하노이를 중점으로 한 경우가 많았다.

다낭에서 유일하게 차 시음을 시켜주는 곳은 공교롭게도 온세상 한국인이 모두 모이는 롯데마트였다.(한국에도 있는 그 롯데마트 맞다.) 롯데마트에 일반적인 마트 차 코너 이외에, 차를 다루는 브랜드가 두 군데 입점해 있다. 첫 번째는 유기농을 강조하는 달랏 지역 중심의 Langfarm이라는 브랜드이고, 두 번째는 이 나라에서 드물게도 제대로 된 다구에 뜨거운 물로 우리는 고급 차를 팔아보자는 생각을 갖고 있는 듯한 Tra Viet이라는 브랜드다. 시음해보니 차는 괜찮은데, Tra Viet이라는 이름과 패키지가 너무 한국관광공사 같은 데서 외국인한테 기념품으로 팔라고 만든 네이밍 같아서 한 번 의심을 하고 다른 데도 쭉 돌아보고, 나머지 일정 동안 구입한 샘플러를 리조트에서 열심히 시음해본 뒤 여기서도 차를 400g 샀다. 유일하게 차 샘플러라는 것도 판매하고 있어서 외국인은 그저 감사할 뿐이다. 한국어로 된 베트남 차 안내 팜플렛도 배포하고 있어서 이 동네 차를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한국어 팜플렛을 배포해준다.
샘플러라는 것을 팔고 있다니 외국인은 감동했다…!

다만 가격적으로 현지인이 적극 소비할 수 있는 브랜드는 아닌데, 빨간 패키지 포함해서 베트남에서는 왕덕전 포지션인 느낌이랄까…? 그래도 한국 돈으로는 100g에 2.5만원 정도라서 못살 가격까진 아니다. 한편 Langfarm도 브랜딩을 한국의 오설록처럼 “유기농” 중심의 팬시한 디자인 위주로 전개하고 있었는데 내가 마실 수 있는 차 양에 한계가 있어 특산품인 아티초크차 말고는 사오지 못했다. 아티초크 차는 카멜리아 시넨시스 아니고 슈퍼푸드계통의 건강을 지향하는 유사차라고 한다.

약 1.5kg을 구매했다

그래서 일단 차떼기부터 먼저 했고 체험은 이제 막 시작했다는 얘기를 구구절절 써보았다. 충분히 마셔보고 난 뒤 이 차들에 대한 느낌적 느낌을 올려볼 수도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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