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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림 Sep 10. 2021

자사호 2호 영입 및 한국인 인기 품목 체험

루틴으로 자리잡은 소소한 차생활

자사호는 중국차를 마시는 사람에게 늘 호기심가는 간지템이지만 쉽게 구매하기 힘들다는 얘기를 여기서도 몇 번 쓴 적이 있다. 들여도 손이 많이 가는 친구라 하나로 끝날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정산당이 싼 가격(99$, 89$)에 팔아줘서 진짜 무이암차를 내릴 용도로 하나 더 들이게 되었다. 내가 원하는 자사호는 적당한 가격과 조형에 자사에서 어떤 성분이 우러나오든 인체에 무해한 것이므로, 현지의 대기업에서 믿을만한 재료와 직인을 수배, 제작해서 15만원 이하로 파는 걸 안 살 이유가 없었다.

https://lapsangstore.com/products/purple-clay-teapot-dabingquanniu

내가 산 건 이 제품이고 인스타그램 계정을 보면 일단 10개가 제작되었다는 것 같다. 단추처럼 생긴 뚜껑 손잡이가 포인트로 제법 귀엽다.


요즘 정산당은 무척 바쁜데, 차가 아니라 월병이 품절대란을 일으킬 정도로 많이 팔리고 있기 때문. 아무래도 과노동이 일상화된 한국인은 카페인과 당이 필요한 민족이라서 잎차를 많이 사는 사람은 나같은 몇몇 매니아 정도고 대부분은 외계인을 갈아 만들었다고 전해지는(…) 물에 쉽게 풀어지는 홍차 파우더와 월병만 무지하게들 사는 것 같다. 월병이 너무 많이 팔려서 해외 담당자가 승진은 했되 물류창고에서 못 나오고 있다는데 이거 좋아해야 하는지 슬퍼해야 하는지… 하도 입소문이 나서 나도 뒤늦게 좀 구매했는데 자사호만이 분리배송되어 부랴부랴 삶아 개시했다는 얘기.

자사호 1호와 2호

사진으로 보면 비슷해보이는데 자사호 2호는 덩치도 크고 두께도 좀 있고 둔둔한 인상이다. 그래도 차를 몇번 우렸다고 1호는 약간 표면이 반짝반짝해진 것 같다.(기분탓일 수도 있다.) 자사호 2호에는 대홍포나 수선 같은 걸 우려서 구수하고 부드러운 맛으로 마시고, 날카롭고 풍부한 맛과 향을 가진 육계는 개완에 1회분(8.5g)을 반띵해서 9번 우려먹는 것으로 정착할 것 같다. 자사호 2호는 170ml이고, 4번 우리면 1리터를 다 쓴다. 작은 개완에 9번 우려마시는 것과 같다. 중국차 마시면서 어째 물배만 늘어난 느낌이… 그래도 자사호가 찻물을 꽤 흡수하므로 실제로 마시는 양은 좀 적을 것이다. 아무래도 차라는 게 좀 마이너한 취미니 혼자 마실 때가 많은데 자사호가 같이 차를 마셔주는 느낌이 들어 기묘하게 위안을 받을 때가 있다.


그리고 트위터 차덕후들 사이에 외계인을 갈아서 만들었다는 썰이 도는 홍차 파우더를 결국 호기심에 못이겨 사고야 말았다. 확실히 진짜 아무데나 잘 녹는다.

얼음을 탄 우유에 파우더를 끼얹고 저었을 때도 잘 녹아서 당황스러울 정도다. 카누보다 더 잘 녹는다. 기술력이 맛의 호불호를 뛰어넘어버린다. 온라인에서 줍줍한 정보로는 홍차 농축액을 급속냉동 후 건조시키는 기술을 쓴다던데… 그럼 더 여러가지 종류의 고급차 파우더도 개발될 여지가 있을 것이다. 홍차 파우더가 찬 우유나 물에도 빠르게 잘 녹는다면, 굉장히 무한한 레시피를 상상해볼 수 있다. 밀크티 빙수라든지, 칵테일 같은… 물론 기력이 없어서 아직 못 해봤지만.


오히려 맛과 향은 엄청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은 아니다. 정산소종은 가공 방식에 따라 전통적인 훈연향과 최근 들어서의 비훈연향으로 나뉘는데, 외국인인 나는 당연히 신식을 좋아하지만 이 홍차 파우더에는 한국 사람에게 익숙치 않은 훈연향이 조금 들어가 있다. 그래도 처음 맛봤던 본색처럼 아버지 재떨이 레벨은 아니다. 그게 100이라면 얘는 8정도. 하지만 이런 향이 익숙하지 않은 반려인은 편리함에 이끌려 한 모금 마셔봤다가 이건 취향 아니라며 나가떨어졌다.


커피를 못 마시는 나에게도 연속되는 회의가 끝나면 정신차리는 용도로 찬 카페인 음료가 땡길 때가 있다. 그럴 때 이 홍차 파우더를 정수기 찬물에 타마시면 훌륭한 아아메 대용이 될 수 있다. 종종 만나는 맛없는 아아메보다는 낫다.(지금은 그것도 배탈이 심하게 나서 못 마시지만) 의외로 우유에 타마시는 건 꽤 상성이 좋은데 내 장이 커피보다는 덜해도 우유랑도 약간 내외를 하기 때문에 매일은 못 마시고 있다. cdp에서 아이폰으로 넘어갔을 때처럼, 고가의 이어폰에서 에어팟으로 넘어갔을 때처럼 편리함이 취향이나 절대 퀄리티를 이겨버릴 때가 있다. 결국 다 마시면 계속 생각나는 아이템이 되긴 할 듯.


정산당의 홍차 파우더는 세 가지 종류가 있는데 2019년에 생산된 구제품이 가장 저렴하다.

https://lapsangstore.com/products/lapsang-souchong-black-tea-powder

내가 산 건 2021년에 생산된 신제품. 사실 이게 더 비싸서 혹시 훈연향이 없을까 하고 이걸 샀지만 뻘짓이었고 단순 생산 연도 차이다.

https://lapsangstore.com/products/lapsang-souchong-tea-powder

여러가지 종류를 맛볼 수 있지만 한봉지당 단가가 제일 비싼 세트도 있다. 사서 마셔보니 편리함에 구애되고 장기보관이 되는 종류의 제품이라 그냥 싸고 양 많은게 제일 아닌가 생각된다.

https://lapsangstore.com/products/junmei-china-tea-powder-combination-pack


그리고 문제의 월병. 한국인이 디저트에 대해 하는 최고의 칭찬이란 모름지기 안달고 맛있다는 것이며 뚱카롱도 같은 맥락으로 유행했을 정도이다. 이 월병은 트위터에 그 말이 엄청 돌면서 사재기 하는 사람 및 중독자가 속출하고 있다. 주문이 몇백 박스 단위를 이미 넘어서서 스타트업처럼 시작된 해외 판매 팀이 엄청 고생하고 있는 모양이다. 갑자기 월병 유행 무엇? 중국 사람들은 장사에 물 들어오면 노 젓는 기술이 엄청나서인지 계속 뭔가 업데이트 되고 있고, 월병이 현지에서 가장 많이 유통되는 추석 시즌 지나서도 팔 예정인 듯. 나는 월병은 좀 기름지고 느끼하다는 인식도 있고 단 건 잘 안 먹긴 하는데 호기심에 구매해 보았다.주문이 너무 밀린 나머지 심지어 내가 시킨 것도 몇 주째 아직 안 오긴 했다(…) 아무래도 차 말고 디저트 업체로 업종 변경해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말을 농담삼아 하고 있다.

https://lapsangstore.com/products/2021-jun-mei-mooncake


월병과 별개로 온갖 서양식 차 브랜드를 다 버리고 정산당에 장기 정착해버린 이유는 다양한 차를 주기적으로 계속 업데이트하면서 호기심을 자극하기 때문인데, 이 차들은 정산당에서 직접 생산하지는 않지만(여긴 정산소종 홍차 전문 업체니까) 대체로 퀄리티들이 괜찮다. 대만차 대비 단가도 싼 편이다. 다만 내가 사랑하는 냉침과 궁합이 별로인 걸 빼면…. 그래도 냉침할 때 넣는 찻잎 양을 절반으로 했더니 좀 덜 맛없어졌다.


아무튼 요즘 사서 좋아하는 차는 자스민차로, 자스민차는 나름 사연이 있는 차다. 때는 20 , 중학생때 온라인으로 만났던 친구가 자스민차를 보내줬는데  차를 마시는 방법도 모르면서 결명자차처럼 팔팔 끓여  알차게 마시며 차를 처음 접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비록  사람과는 좋지 않게 끝났지만 오뚜기 자른미역같이 생긴  봉지에 들어 있던 자스민 향이 들어간 차만큼은 인생에 오래 남았다.  차만큼은 평생 좋아할  없었던 치매에 걸린 할머니와도 나눠마셨다.  뒤로 인터넷이며 마트 여기저기서 따로 구해서 마시기도 했다. 가격이 아주 비싸지는 않아 학생 재력으로도 그럭저럭 사마실 수는 있었지만  미역봉다리 차보다도 맛이 없었다. 그런데 중국 회사에서 직판하는 고급 자스민 차를   있게  것이다. 통칭 자스민차라고 하지만, 녹차에 자스민 향을 입힌 일종의 중국식 가향녹차라고 한다.

뭐야 얜 꽃잎까지 들어있고 그래 무서워…. 자스민차는 상대적으로 저렴한 차이긴 한가보다. 이렇게 고급스러운 맛이 나는데 개별포장된 차가 100g에 24$라니. 심지어 개완에 네 번 우려먹어도 맛이 괜찮은데? 꽃향이 너무 아름다운데? 이 분야 갑이었던 왕덕전의 말리우롱보다 단가도 조금 싸다.

https://lapsangstore.com/collections/jasmine-qinggan/products/jasmine-big-pekoe

2021년이 되니 원산지에서 직판하는 고급 자스민차도 마셔보고.. 생지옥을 살아냈던 그 시절보다 좋아진 건 그런 걸까 생각하며 새삼 인생을 돌이켜보게 되었다. 괴로운 일이 많은 삶을 견디게 해주는 건 이런 소소한 기호품, 예술에서 느끼는 아름다움과 안정감, 삶의 루틴 같은 것이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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