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오르는 향의 시간

집콕생활에 쌓이는 생활의 흔적을, 이국의 향기와 함께 사르는 마음

by 혜림

아마도 향을 태우기 시작한 건 작년 여름쯤이었던 것 같다. 차를 마시거나 다기를 만드는 사람들이 향 취미도 겸하는 흐름이 있었고, 그러다 친구에게 향을 선물받게 되었다.


향을 좋아하게 된 이유는 그다지 거창하지 않았다. 감염병 시국 2년차, 외출을 지긋지긋하게 조심해가며 여름에 하루 종일 집에 있다 보면 땀냄새나 김치냄새같은 생활의 냄새들과 뒤엉키게 된다. 향을 태우니 그 냄새를 조금 밀어낼 수 있었다. 내가 아는 향이라고는 명절 때나 제사 때 피우는 초록색 향과, 가정집과 절을 겸했던 외할머니댁 불당의 향뿐이었다. 한국에서 유교와 불교는 연결되어 있는지, 불당에는 부처님상과 함께 거한 사찰스타일 음식들이 차려져 있었다. 유교의 향은 좀 괴로운 기억으로, 불교의 향은 약간 그리운 기억으로 남아있다. 이 향은 내가 기억하는 불교의 향이라, 다른 것들도 조금 더 체험해보고 싶었다.


처음 선물받았던 향은 국산으로, 한국 고유의 향 배합임을 강조하고 있다. 나만 외삼촌 절...! 을 외치는 줄 알았는데 자취하는 동생 집에 피워줬더니 똑같은 반응을 하는 걸 보면 이런 향 배합이 어렸을 때 맡았던 그것과 조금은 관련이 있을 지도 모르겠다.


카라영 인센스 스틱 부용향 - 황후의 나라 https://www.karayoung.kr/goods/goods_view.php?goodsNo=1000000001

OTAKU 커뮤니티가 좋은 점은, "나 이거 해봤는데 괜찮더라" 만 해도 떠먹여주는 온정의(...) 손길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차가 그렇듯 향도 한국보다는 일본 것이 접근성이 좋으면서 인기가 있지만, 이런 것들의 오리진과 가장 큰 시장은 당연히 중국에 있었다. 그래서 또 헤매인다 KWANGYA. 헤매인다 타오바오...

한국어 정보라고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향에 대해 가장 딥하게 설명된 트윗 타래 덕분에 실질적인 향 입문은 중국향으로 시작하게 되었다.

https://twitter.com/yinzhen2017/status/1318280677410795520

향의 종류

향이라는 것은 향이 나는 나무와 각종 향료를 조합해서 열을 가하거나 불을 붙이면 향이 퍼질 수 있는 형태의 제품이다. 이 제품의 제형은 여러 가지가 있다.

선향 线香 (인센스) - 내가 처음 접하기도 했으며, 막대기처럼 기다랗게 조형한 형태이다. 직접 불을 붙여서 태우는 타입. 한국에서는 '인센스'라는 말이 '향'보다 더 통용될 정도로 가장 대중적인 타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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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환 - 청심환처럼 동그랗게 뭉친 제형으로 열이 나는 향로에 올려서 향을 퍼뜨린다. 아무래도 태우는 것보다는 국지적으로 향이 퍼지는 편이고, 목재 태우는 냄새가 배제되어 좀 순수한 향료의 냄새를 맡을 수 있다.

가루향 - 향도라고 불릴 정도로 굉장히 복잡한 방법을 요한다. 가루라서 수입도 쉽지 않은 편.

근본적으로 이런 걸 할 리는 없는 에너지 적고 게으른 성격이다.

그 외에 향이 나는 나무(향목)을 직접 올려 데우거나, 태우기도 하고, 향유를 쓰기도 하는 등 다양한 형태가 있다. 나야 뭐 침대와 부엌의 냄새만 빼면 되는 게으른 사람이니 무조건 쓰기 편한 쪽이 좋았다.


중국향 입문의 장단점

네이버 블로그를 쫌쫌따리 보거나, 구회사동료... 등의 대부분 향 입문자들은 일본이나 한국의 인센스 스틱으로 입문하게 되는 것 같았다. 하지만 나는 타오바오에서 중국 당나라 시대.. 송나라 시대... 에 만들어진 레시피로 만든 것들부터 사기 시작했고(명나라면 거의 신상 수준) 이게 때로는 좋으면서도 피곤할 때도 있었다. 일단 좋았던 점부터 열거해본다.


향의 종류가 압도적으로 다양하다

일본 향들은 대부분 교토 제품으로 일본 사찰에서 나는 그 향에서 약간씩 변주를 준 것에 가깝고, 한국향은 아직 작은 규모의 유행이 시작한 단계인 반면 중국은 조합할 수 있는 향목과 향료 자체가 풍부하다. 불교 계통의 향도 있지만, 도교 계통의 향도 있고, 종교와 크게 상관없이 순수한 향목을 태우거나 옛 문인들이 만든 실용적인 향으로 만족할 수도 있다.


향도구가 싸다

일단 한국 오프라인 매장에서 향꽂이.. 인센스 홀더... 뭐 이런 걸 사려면 눈이 돌아가게 비싸다. 일단 작고 심플해보이는 것도 2만원부터 시작해서 기절할 뻔 했다. 타오바오... 천오백원부터 시작한다. 향을 사면 향꽂이를 공짜로 주는 경우도 많다.(쓰다 보니 이런 것들이 대부분 태우고 나면 지저분해지는 소모품이라 엄청 크게 비싼 걸 살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공예품 레벨이 되면 비싸지만 한국보다는 대체로 가격이 싸다. 인터넷에서만 찾을 수 있는 저렴한 향도구는 늘 그렇듯 타오바오 20~40위안정도(5천원~8천원) 제품이 한국에서 약간(...)의 이윤을 더 붙여 판매되는 경우가 많다.


있어보이기...보다는 실용과 편리함을 추구하는 문화

최근 백화점에 갔다가 향 파는 데가 있어서 가보니, 불 붙이는 도구로 예쁜 성냥갑들을 팔고 있었다. 하지만 중국사람들은 향 태우는 것도 일상문화라 그런지 성냥보다는 걍 라이터 쓰면 그만이고... 막 국수 소면같은 대용량으로 사서 태우기도 하고... 그러더라. 차와 비슷하게 판매 업자의 향도 클래스 및 인스타그래머블한 샷 위주로 흘러가는 면이 있는 한국과는 대조적이다.

선향을 태우다보면 재가 막 떨어지고 날리게 되는데 사실 귀찮으니까 향합 香炉 이라고 부르는 나무곽도 싸게 판다. 불붙지 않는 천이 들어있어 재가 날리지 않고 그냥 깍대기채로 버리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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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무엇보다도 좋아하는 실용 제품은 역시 전자향로 电子香炉 로, 그냥 청심환같이 생긴 거 하나 올린다음에 온도조절만 하면 쏴 퍼지는 향을 맡을 수 있다. 개인적으로는 침대 머리맡에 놓고 잡생각을 없애는 용도로 쓰고 있다.

IMG_6760.jpeg 사용중인 전자향로. 전원 어답터는 돼지코를 끼우면 호환이 된다.

샘플을 많이 판다

성수동에 향 제품을 파는 가게에 들어가서, 여러 가지 종류가 조금씩 든 세트는 없냐 이렇게 큰 단위로만 구매해야 하냐고 물어봤었다. 안되는 것이 당연했다. 하지만 의외로 향은 개인이 가지고 있는 문화적 배경이나 취향이 퀄리티에 비해 영향을 많이 미치는 제품군이므로, 25~40대쯤 들어있는 박스를 샀다가 안 맞으면 그것도 또 낭패다. 중국 향 스토어들은 어지간해서는 주력 제품이 종류별로 한두대씩 들어간 샘플 세트를 팔고 있어서 실패를 걱정하지 않고 넉넉하게 취향 탐색을 해볼 수 있었다. 타오바오에서 샘플 试用装 을 검색해보면 많은 향집에서 파는 샘플 세트들을 접해볼 수 있다.

EA8A2C9E-6727-4548-ACF8-4025D395B81D.jpg 처음 구매했던 향들. 대부분 1~2대정도 소분되어 있는 샘플과 5천원 이내의 향도구들이다.


반면 좀 어려웠던 점들도 당연히 있다.


향의 종류가 압도적으로 다양하다

요즘 같이 정보가 과다하고 각자 바쁜 세상에 선택지가 압도적으로 다양한 것이 꼭 좋다고 할 수만은 없다. ~차라리 5대 향 이것만 태워보면 너의 경험은 클리어~ 나 ~이 브랜드 하나만 잡으면 가성비 원탑~ 같은 걸 원할 때도 있게 된다. 타오바오라는 플랫폼도 오픈마켓 + 중국어 장벽이 있어서, 어떤 제품부터 시작해보라고 추천을 받지 않았더라면 영원히 시작하지 않았을 수도 있겠다.


인간의 코는 생각 외로 BOSU적이다

나는 중국 체류는 커녕 여행 경험도 없는 사람이라, 새롭거나 낯선 느낌의 향이 기껍게만 받아들여지지는 않았다. 한국향은 익숙한 절의 기억을, 일본향도 교토의 정원에 꽂혀 20군데를 넘게 돌았던 도른 경험으로(...) 인지하고 해석하고 사유할 수 있었지만 중국향은 그렇지 못했다. 처음 가는 외국에서도 음식 잘 먹고 국내에서도 손이 많이 가는 한식보다 좀 낯선 외국 음식을 좋아하는 편이지만, 향에서는 너무나 한국인이었던 것이다. 한편 한국인에게는 근본적으로 여러가지 향을 구분해서 즐기는 문화가 그다지 없어서 그런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게다가 나는 비염인이라서 그렇게 디테일하게 향이 구분되는 것도 아니고.. 그 와중에 너무 복잡 다단하거나, 낯설음이 기준치를 초과하면 머리를 찌르는 피곤한 경험이 되기도 했다. 결국 현재의 나는 조금 단순하고 좀 달달한 냄새가 나면서 가벼운 향 위주의 취향을 가지게 되었다. 그나마 샘플 위주로 써보고 사게 하는 구성이 아니었으면 금방 포기했을 지도 모르겠다.


처음에는 낯설었던 향도 한 반 년 좀 넘게 태우다보니 일상의 루틴으로 진입할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향이 타는 걸 보면서 복잡한 생각을 잊기도 하고, 몸 상태가 좀 나쁠 때에는 특정 향을 태우기도 했다. 연기를 들이마시는 일이 폐 건강상 좋다고는 할 수 없겠지만, 알코올도 카페인도 섭취하지 못하고 담배도 안 태우는데 하루 한 대 정도는 용서하기로 했다. 갇힌 실내 안에서 퍼지는 향료와 함께 다른 세상을 추억하거나 마음을 비울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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