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강물이 흐르는 대로 – 중요성 그리고 지켜보는 자
ep-16. 선생님들과 인제 자작나무숲 견학
지난주 참 맑고 화창한 가을 날씨에 선생님, 학부모, 자녀들이 다 같이 인제 자작나무숲으로 견학을 다녀왔다. 회사 생활로 일상이 바쁠 땐 상상도 못 했던 일이다. 자녀들의 학교 행사에 참여할 수 있어 감사했다.
아침에 모두 학교 운동장에 모여 학교 버스를 타고 이동을 했다. 등교 길에는 조금 쌀쌀하고 안개도 자욱했었는데 버스로 이동하는 중에 햇살이 비치기 시작했다.
군 생활을 화천에서 한 덕에 화천이나 양구, 원통, 철원, 인제 이쪽으로는 마음이 가지 않았었다. 하지만 상황이 변하니 마음도 덩달아 변했다. 우리나라 곳곳에 멋진 곳이 많지만 특히나 강원도는 가는 곳곳이 절경이다. 인제도 참 아름다웠다. 자작나무 숲 초입부터 입구까지 도로가 계곡에 접한 덕에 드라이브를 제대로 즐겼다.
차에 내려서 본격적인 산행이 시작되었다. 학교 행사에 처음 참석한 엄마 아빠를 자녀들이 처음에는 어색해했지만 곧 적응하고는 좋아서 폴짝거리고 재잘거렸다. 자녀와 손을 잡고 선생님들과 일상을 공유하며 같이 걷는 산행이 참 행복했다. 가을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어 좋았고, 이런 행사를 마련해 준 학교에 고마웠으며, 무엇보다 이 시간에 이곳에서 자녀와 온전히 녹아들 수 있어 감사했다.
자작나무 숲을 향하는 길은 계곡 물이 시원하게 흘렀고, 단풍이 물들기 시작했다. 조금 숨이 차서 잠깐씩 고개를 들 때면 나뭇잎 사이로 햇살이 아른거려 얼굴이 간지러웠다. 한 시간 정도 완만한 산행 끝에 목적지에 도착했다. 시원스레 뻗은 회색의 자작나무숲이 참 인상적이었다.
며칠간 준비한 자녀들의 장기자랑을 시작으로 해설가의 숲 해설이 끝난 후에 학교에서 준비한 김밥을 다 같이 둘러앉아 먹었다. 맛있는 김밥을 배불리 다 먹을 무렵 교장 선생님께서 믹스 커피를 타주신다. 멋진 풍경의 산속에서 마시는 따듯한 믹스 커피 한잔이라. 준비해 오신 선생님들의 센스가 돋보였다.
행사를 끝내고 내려오는 길도 참 즐거웠다. 따듯한 햇살은 등을 적당히 달구었고, 맑은 가을 하늘에 산세의 경치까지 더해져 우리가 한 폭의 풍경화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것 같았다. 둘째의 손을 꼭 잡고 노래를 흥얼거리며 선생님들과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산을 했다.
자녀들을 따듯하게 품어주는 학교 선생님들의 온기를 확인하자 마음이 한결 놓였다. 펜션지기의 넉넉함과 학교의 아늑함에 조금 남아있던 마지막 불안까지 완전히 녹아내렸다.
산행 내내 ‘농촌유학’ 참 잘한 선택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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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강물이 흐르는 대로 – 중요성 그리고 지켜보는 자
대입에 실패했다. 대학에 입학한 친구들은 머리를 기르고, 멋있게 옷을 입고, 술을 마시며 미팅을 하고 다녔다. 같은 시간 나는 고등학교 때와 같이 등교 시간에 맞춰 도시락을 넣은 가방을 메고 학원으로 등교했다. 성인이 됨과 동시에 인생은 쓴맛을 안겨주었다. 내가 가장 좋아했던 4월이 가장 잔인한 달이 되어버렸다.
재수 시절 내도록 먼저 대학생 된 친구들과 비교되었고, 몸과 마음은 위축되었으며, 미래는 불안했고, 일상은 지루했다. 그리고 불안했던 미래는 역시나 불안한 결과로 자연스레 이어졌다. 재수 역시 실패한 것이다. 점수보다 학교를 낮추어 취직이 잘된다는 건축과에 입학했다. 학교에 원서를 넣으러 다녔던 그 해 겨울은 참 추웠던 기억이다.
군대를 전역하고는 언제나 술과 함께였던 나름 즐거웠던 대학 생활을 뒤로하고 취업 전선에 뛰어들었다. 넉넉지 못한 환경에 스스로를 다독이며 나름 독하게 준비했던 첫해 시험은 정말 아쉽게 떨어졌다. 두 문제 차이. 그것도 아는 문제. 몇 달을 방황하며 술과 담배에 빠져 살았던 기억이다. 방황하던 마음을 다잡고 준비해 다음 해에 서울로 입성했다.
재수를 한 덕에 건축과를 입학하고, 첫해 취업에 실패 한 덕에 서울살이가 시작되었다. 재수를 하지 않았더라면 건축이나 부동산에 흥미가 없었을 테고 자연스레 지금 같은 부동산 지식과 경험은 없었을 것이다. 첫해 취업에 성공했더라면 서울은 나와는 상관없는 도시가 되었을 테고 집사람을 만나지 못했으니 보석 같은 자녀들도 없겠다.
좋은 게 좋은 게 아니고 나쁜 게 나쁜 게 아니라는 것은 내 나이 즈음이면 알게 되는 것 같다. 기어코 애를 써서 내 마음대로 되는 게 긴 인생에서 보면 결코 좋지 않은 경우도 허다하다.
그럼에도 마음은 언제나 현실을 통제하고 계획하려 수작을 부린다. 그리고 마음은 언제나 두 팔과 두 눈에 힘이 잔뜩 들게 한다. 불필요한 힘 혹은 중요성이 들어 찬만큼 인생의 자연스러운 시나리오는 꼬이게 된다. 인생이 피곤해진다.
삶이라는 무대에서 매번 주연 배우는 피곤한 일. 그렇다고 감독은 너무 제삼자이니 객석의 관객이 좋겠다. 무대에서 객석으로 내려가자. 객석의 관객은 지켜보는 자이다. 지켜보는 자로 하여금 힘이 들어간 부분은 힘을 빼고, 지켜보는 자로 하여금 중요성이 가득 찬 부분은 중요성을 낮추자. 수시로 이를 깨우는 게 내가 할 일이다.
조금만 힘을 빼면 인생이 나를 위해 준비해 놓은 선물을 받을 여지가 생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