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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0. 강원도 농촌유학 한 학기를 마치며..

행복은 지금

by Timeless

ep-20. 강원도 농촌유학 한 학기를 마치며..


오늘은 자녀들이 학교에서 스키캠프를 가는 날이다. 며칠 전부터 기대를 하고 있었지만 둘째가 목감기로 아쉽게 참여를 못했다. 첫째는 스키 캠프에 참석을 하고 오늘 내일은 둘째와 산골 펜션에 보일러 온도를 높여놓고 귤도 까먹고 책도 보고 편히 보낼 예정이다.

2학기에 참가 신청을 하고 8월에 올라왔으니 벌써 5개월 차다. 2주 뒤면 방학이니 한 학기가 금방이다. 농촌유학을 1학기에 참여하는 게 좋지 않을까 조금 걱정도 했는데, 2학기부터 시작을 해도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인원이 적은 시골학교라 자녀들은 주목을 받았고, 그리 뛰어난 실력이 아님에도 학예회에서 피아노를 연주했으며, 전교 회장도 준비 중이다.

인원이 많은 도시 학교였다면 이런 성취와 관심의 경험은 다소부족 했을 것 같다. 맑은 공기와 청정한 환경을 기본으로 이웃 어른들과 학교 선생님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으며 몸도 마음도 무럭무럭 자랄 수 있었다.

산골 펜션이라 여름부터 겨울을 걱정했던 터였지만 추위에 조금씩 적응이 된 건지, 아니면 혹한이 아직 닥치지 않은 타인이 오히려 겨울 햇살을 즐기는 요즘이다. 아무리 추워도 매일 밤 잠들기 직전 펜션 한 바퀴 코스는 빼놓을 수 없는 일과이다. 자녀들이 이렇게 추위에 온전히 떨어본 적이 언제 있었던가? 겨울밤 차가운 별을 보고 부리나케 집으로 달려와 이불속을 파고들면 그 따듯함에 서로 마주 보며 웃게 된다. 우리는 이렇게 온몸으로 모든 계절을 즐기는 중이다. 밝음을 알고자 하면 어둠을 겪어야 한다. 방학 때 집에 가면 그곳의 따듯함과 밝음에 감사할 것이다.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이 당연한 것이 아니었음을 이곳에서 몸으로 체득하는 요즘이다.

나는 나대로 꾸준한 루틴을 이어가고 있다. 아침마다 오솔길을 산책한다. 햇살이 얼굴을 비추면 한겨울에도 몸과 마음이 따듯해지고 절로 미소를 띠게 된다. 맑은 공기를 깊이 들이켜면 이 산이 나를 살리는 듯한 기분까지 든다.

사람이 바뀌는 세 가지가 시간, 공간, 사람을 바꾸는 방법이라고 했던가? 시공간과 사람이 모두 바뀌니 나도 날로 새로워진다. 펜션 지기와 그를 통해 알게 된 여러분들과의 관계가 참 즐겁고 감사하다. 회사 생활에서는 접점이 있을 수 없었던 관계들에 호기심이 가고 자극을 받는다. 그간 참 좁은 우물 안에서 아웅다웅거렸다. 세상은 넓고 넓다.

내년 한학기도 기대가 된다. 산골에 꽃 피는 봄이 벌써부터 기다려진다.

행복은 지금

요즘 화두가 호흡을 알아차리기, 수시로 깨어있기이다. 실은 명상과 단전호흡을 한 지 5년 정도가 되었던 터다. 다만 명상과 일상생활이 접목되지 않아 따로 굴러가던 느낌이었는데 이제야 일상이 명상이었음을 절감한다. 각 분야 고수들이 설거지 명상을 추천해 준 이유가 이해된다. 설거지 하나에도 물은 사방으로 튀고 다음 할 일을 걱정하기 때문이다.

머릿속 생각이 종횡무진 마구 굴러다니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라 한다. 하나는 생존이고, 또 다른 하나는 외부 환경과 나의 내면에 완충재 역할이 그것이다. 과거에는 인류가 생육번성하기 위해서 지속적으로 미래에 대한 두려운 감정이 필요했을 것이다. 두려움으로 준비하고, 비축하고, 도망치며, 생존을 대비했을 것이다. 다만 지금이 원시시대는 아니니 요즘 시대에 필수적인 감정은 아닐 것 같다. 인류의 발전이 진화를 한참 앞지르니 불가피한 결과 같다

또 하나, 외부의 사건을 내부에서 필요에 따라 인지하기 위해서 ‘나’라고 믿는 생각들이 중간에서 끊임없이 그리고 가차 없이 해석을 가한다. 선악과 호불호 그리고 각종 시시비비를 개개인의 업식 혹은 카르마라는 칼로 재단한다. 내면으로의 완충 작용은 성공했을지언정 분별하고 필터링한 만큼 나라는 고정관념에 반복적으로 사로 잡힌다.

애초에 ‘나’라는 ‘주의’가 ‘외부’의 ‘사건’이나 내 ‘생각’에 합쳐지려는 순간에 이를 알아차리는 것이 최선이지만 나 같이 평범한 사람에게는 합쳐진 초반에라도 이를 인지하면 다행이다. 주의가 내외부와 합쳐져 다소간 시간이 흐르면 이는 콩고물이 듬뿍 묻은 떡 같이 따로 떼기가 참 힘들어진다. 이를 알아차렸을 시간이면 이미 상황은 끝났다. 망상과 감정에 한바탕 휘둘린 터라 몸과 정신은 너덜거릴 뿐이다.

지금 깨어있기, 현재에 존재하기, 과정에 몰입하기, 그렇기에 지금 당장 행복하기는 한 묶음이다. 지금 깨어있는 힘이 의식에 과반을 차지 못하면 곧 현실이라는 잠에 빠져버린다. 과거에 후회하고, 결과에 집착하며, 미래를 두려워한다. 따라서 불행해진다. 여행지에 도착해서 짐을 풀자마자 그다음을 계획하는 머릿속 덕에 여행을 오감으로 온전히 느끼고 줄기가 아쉬워지는과 같다.

이 나이즈음 되니 최소한 이것 하나는 확실하게 알 것 같다. 미래에 그 언젠가부터의 행복이라는 것은 애초에 없었다는 것을. 이 일만 끝나면, 진급만 하면, 평수만 넓히면, 병만 낳으면, 얼마만 몸이면, 성적만 좋으면... 무엇이 이루어지고 나면 행복할 것이라는 것은 완벽한 망상이었다. 움푹 파인 나라는 그릇에 이것이 지나가면 저것이 들어차고, 저것이 지나가면 그것이 들어찬다. 내가 관리해야 할 것은 나라는 ‘그릇’이지 ‘이것’ ‘저것’이 아니었다. 하루에도 수십 번 변하는 상황에 내 맡겼던 행복을 되찾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당장 행복하자. 지금 행복해야 행복한 지금이 계속된다. 부족한 내공 탓에 수시로 ‘주의’를 놓치겠지만 그럼에도 알아차리자는 원을 품어야겠다.

영하 10도가 넘어가는 산골에서도 보일러덕에 방이 따듯하니 지금 이 순간 참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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